비나리의 초록세상 만들기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프랑스 집회, 왜 고등학생들이 나왔을까?
연금개혁법 반대 파업·시위, "저건 바로 내 일이다" 의식 강해
 
우석훈   기사입력  2010/10/21 [01:25]
전통적으로 프랑스의 집회의 하일라이트는 고등학생들이다. 고등학생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제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보는 전통은 계속되고 있다.

좀 위로 올라가면 레지스탕스까지 분석이 올라가기도 한다. 나찌 치하에서 실제로 파리 근교의 대규모 집회 같은 것들은 주로 고등학생들이 했다. 초기에는 나찌도 "애들이쟎아" 하고 그냥 풀어주었는데, 점차적으로 탄압의 수위를 높혔다.

고등학생들의 결정적 승리는 68 때이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프랑스 68의 성공은 대학생이 움직여서가 아니라 10대들이 움직여서 그렇다. 대학생들은 대충 하고 마무리지을려고 했었는데, "웃기지 마라. 이건 우리의 미래다" 이런 구호로 고등학생들이 움직이면서 결국 대학 국유화까지 드골 정부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최근의 생애최초고용법 때에도 10대들이 움직이기는 했는데, 이 때는 외국인 2세로 그 주체가 조금 바뀌는 양상을 가졌었다. 생애최초고용법은 간단히 말하면 처음 직업을 가진 사람은 회사에서 그냥 짤라도 된다는 법이다.

초기에는 대학생과 노조의 연대가 유독 두 집단이 끊어져 있던 프랑스의 단절 구조를 연결시킨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집회가 장기화되면서 우파 정부 속에서 한계집단으로 몰락하게 된 대도시 근교의 외국인 2세들이 적극 집회에 참가하면서 우리가 TV에서 보던 유리창 깨고 워크맨 집어가고, 차에 불지르는 대혼란이 발생하였다. 그 때의 내무부 장관이 바로 지금 대통령인 사르코지인데, 정치적으로는 우파들이 재집권에 성공을 하였다.

지금 문제가 된 것은 국민연금 구조에서 문제가 생겼으니 은퇴 시기를 2년 연장해서 62살까지 일을 하라는 것이다. 사르코지가 내건 명분은 그래도 유럽 국가 중에서는 은퇴가 가장 빠르다는 것이다.

이 법안은 하원은 이미 통과하였고 상원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서 온 국민이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여기에 고등학생들이 학교별로 파업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일단 상원 통과는 연기되었다.

12일 집회에 대학교의 파업 결정은 12개인데, 고등학교는 800여개쯤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 파업을 결정한 고등학교에 경찰들이 블록이라고 하는 차단이 아주 중요한 일이 되었다.

프랑스 고등학생들의 특징은 "저건 바로 내 일이다"라고 하는 경향과 또 그렇게 참여를 했던 전통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이유도 좀 있다.

고등학교 때 한 판 엎었던 세대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세대도 있는데, 대체적으로 한 판 엎은 세대들이 대학 진학을 비롯해서 취업 그리고 복지까지 정부에서 두려워하니까 후한 양보를 이끌어낸 전례들이 있다.

장 폴 뒤부아의 <프랑스적인 삶>에는 별 생각 없이 고등학교 때 집회에 참가했던 주인공이 이후 대학에서 얼마나 편하게 지냈는지에 대해서 좀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프랑스는 중학교 때부터 학교 자치에 관한 훈련을 받고 또 70% 정도의 국민들이 고등학교 교육 즉 중등교육을 마지막으로 사회에 진출하게 되니까, 대학에 가지 않을 사람들은 자신의 마지막 학창시절인 셈이고 마지막 교육단계에 있는 셈이다.

지금 프랑스 노조들의 입장을 살펴보면, 연금구조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어쨌든 누군가는 감당해야 할 사회적 부채인 셈이니까.

그러나 지금의 사르코지의 개혁법안이 기업이나 공공의 노력 대신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게 앞으로 내건 1차 명분이다.

그렇지만 지금 71%의 국민들이 이 파업과 시위를 지지하는 것은 nego라고 부를 수 있는 협상 과정 자체가 노동자와는 진행되지 않았다는,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불통 대통령'에 대한 불만인 것 같다.

정치 절차를 강조하는 사르코지가 취임 시기부터 노조와의 대화는 대충 스킵, 그렇게 한 게 지금 터져나온 것처럼 보인다.

한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정치 절차도 대충 스킵하고 행정 절차만으로 중요한 사안들을 결정하면서 지금까지 왔다만...

하여간 12일 사태를 경계로 노조 지도부에서 고등학생들의 동맹휴학 결의 쪽으로 사태의 중심 추이가 살짝 이동해 나가는 것 같다.

reformist라고 부르는,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대충 '민주개혁 세력' 정도 될려나, 하여간 여기에서는 파업에서 그만 빠지자는 의견과 거리에서 끝장을 보자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것 같다. 대충 우리나라의 민주당 정도로 중도개혁을 표방하는 집단이 얼마까지 이 파업에 동참할 것인지, 그리고 고등학생들이 지금의 상황을 얼마나 더 밀고 나갈 것인지 그런 게 분수령이다.

11월이 되면 지역별로 만신절 휴가가 시작되는데, 정부는 만신절까지만 버티면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이렇게 내부무를 중심으로 버티기 전략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급한 게 주유소 문제인데, 다른 건 파업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버티는 것 같은데 차량을 운행할 휘발유를 구할 길이 없다는 게 국민들의 불편으로 대두되는 상황이라 파업 주최 측에서는 신경이 쓰이는 모양새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0/10/21 [01:25]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