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취임식에 맞추어 미국과 유럽 여러 도시에서 대규모 반 트럼프 시위가 있었다. 이에 관련된 좌파 그룹들의 변질에 관한 폴 크레이그 로버츠 박사의 최근 사설을 번역 소개한다-역
좌파의 몰락 (The Demise of the Left) / 폴 크레이그 로버츠
2차 대전이 끝난 후 유럽과 미국에는 좌파가 있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노동자나 서민에 기반을 둔 노동당이나 민주당 혹은 사회당 같은 정당들과 연대하여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위해 싸웠고, 노조는 그들을 대변해주는 정당들을 지원했다. 이랬던 진보 혹은 좌파라고 불렸던 정치 세력들은 요즘 어떻게 되었는가? 나는 여기에 대하여 답해 보겠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듯이 서양의 좌파세력은 전통적으로 노동자와 평화(빵과 평화)를 위해 싸워왔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좌파’나 진보가 이런 명분을 옹호하며 싸우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여러분이 상상하는 좌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좌파라 여겨지는 사람들이 옹호하는 명분은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이다. 정체성 정치란 한 집단이나 개인들이 모여 그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기준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문제를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는 정치를 말한다. ‘좌파’는 더 이상 노동자 계급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노조나 노동자 계급은 힐러리 클린턴과 그 지지자들이 ‘인종차별주의 및 여성혐오주의, 동성애혐오와 총기소유에 미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개탄할만한 트럼프 지지자들’과 더불어 이상 ‘좌파’가 옹호하는 대상이 아니다. 대신에 ‘좌파’는 희생해 왔고 무시를 당해왔다고 주장하는 집단들- 여성, 흑인, 동성애자 그리고 성전환자(transgender)를 옹호한다. 그리고 다수의 미국인들을 집결 시킬 것 같지 않은 성전환자들 용 화장실 같은 주제가 ‘좌파’들에게는 노동자 계급에 관한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되었다.
자신들은 희생 당해 왔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을 포함하여 ‘좌파’ 쪽에 선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나머지 백인들은 이제 그 자체로 인종주의자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차별과 인종주의로 인한 희생은 모든 역사, 모든 제도, 심지어 미국 헌법을 포함한 그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좌파’들의 이러한 설정은 양 당으로부터 버림받은 노동자 계급과 ‘좌파’와의 관계를 단절시켰는데, 이로서 서민 대중과 ‘좌파’와 의 연결도 끊겨 버리고 말았다.
실질적인 힘을 가진 좌파정치의 몰락은 소련이 붕괴가 된 영향이 컸다. 칼 마르크스가 1867년 자본론을 발표하기 전에도 하층민들은 그들이 당하고 있던 착취에 저항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노동 착취를 투쟁의 명분으로 발전시켰고 이 저항은 역사를 만들었다. 러시아의 볼세비키 혁명은 기존 질서를 전복시켜 마르크스의 정당성을 세웠으며 소비에트 공산주의를 선포하게 된다.
그런데 소비에트가 그 이후에 보여준 모습은 좌파의 기대와 희망을 고갈시켜 버렸다. 그렇지만 좌파세력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자본주의체제의 착취를 비판하고 그 대안 체제를 제시했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이 붕괴되자 신보수주의(네오콘, neoconservatives)와 신자유주의자(neoliberals)들은 역사는 노동자 계급이 아닌 자본주의를 최종적으로 선택했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마르크스가 예언한 노동자 계급의 승리란 역사에 의해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말했다.
같은 공산국가의 처지였던 중국과 인도는 소련의 붕괴를 목격하고 그들의 경제 정책을 바꾸게 되었다. 이들은 나라의 문호를 열어 해외자본을 받아 들인다. 경쟁 체제가 없어진 자본주의는 더 이상 조심하거나 자제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소득과 부의 대규모 성장을 본격적으로 추구하게 되었다. 자본가들은 서로 합쳐 몸집을 불리게 된다. 이제 생산과 시장은 거대 자본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소득과 부를 집중하도록 만드는 통로는 바로 경제 금융화였다(이는 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이 강조했고, 마르크스 자본론 3권에서 나온 이야기다). 금융분야는 노동자 계급이 자유재량으로 쓸 수 있는 여분의 소득을 이자와 주택담보 대출, 자동차 대출, 신용카드 빚, 학비 융자 같은 은행 빚으로 전환시켰다.
소득과 부가 집중되도록 만든 또 다른 통로는 미국 내 일자리의 해외 이전(Offshoring)이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겠지만 일자리의 해외 이전은 도널드 트럼프가 강력히 반대해온 것으로 지난 대선의 주요 쟁점이기도 했다. 이제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도록 하자:
월 스트리트는 미국 제조업에게 더 싼 인건비와 규제비용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을 위해 중국으로 생산라인을 옮기라고 명한다. 만약 제조업자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월 스트리트는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인수 시키겠다고 압박한다. 그리고 새로운 소유자가 생산을 해외로 옮겨 월 스트리트에게 수익을 올려준다. 월마트 같은 대규모 소매업도 공급자들에게 “중국 가격에 맞춰 달라”고 요구한다.
일자리가 미국에 있었을 때는 생산에서 얻은 소득의 대부분은 노동자들에게 갔다. 따라서 중위가계의 실질 소득이 시간이 가면서 늘어나고, 소비자의 구매력도 수입 증가와 함께 늘어나 미국 경제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런데 일자리가 아시아로 옮겨지자, 미국 중위가계의 실질 수입은 성장을 멈추거나 줄어들었다. 아시아의 거대한 노동력 공급시장과 낮은 임금으로 인해 노동자가 생산해낸 물품의 가치에 기여하는 만큼의 임금을 노동자에게 주지 않아도 일하겠다는 노동자들은 넘쳐난다. 미국 임금과 아시아 임금의 격차는 크며 이 차이는 기업의 이익이 되거나, 경영자들의 “성과 보너스”와 올라간 주식에 대한 양도 소득 같은 자본이익으로 주주들에게 돌아간다. 나의 책 <제1세계 중산층의 몰락>(The Failure of Laissez Faire Capitalism) 에서 당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계산한 바, 만약 1,000개의 일자리가 중국으로 옮겨 갈 때마다, 미국 회사는 시간당 32,000달러의 인건비를 절약 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절약한 시간당 인건비는 그렇다고 미국 소비자들을 위한 물가안정에 기여하지 않는다. 절약한 인건비는 기업의 이사들이나 주주들에게 곧장 옮겨 간다. 따라서 일자리의 해외이전은 생산으로 얻은 이익을 기업 소유자와 경영진들이 독차지하게 만든다.
트럼프는 노동자 계급을 지지하며 그의 공약도 그러한 점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취임한 첫 주에 다자간의 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 협정(TPP)을 탈퇴했다. 그는 자동차 제조 회사들에게 미국으로 생산라인을 다시 가져 오라고 요구했다. 그러는 사이 ‘좌파’는 희생된 사람들(즉 불법 이민자들)을 위하여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좌파’들은 심지어 미국의 노동자 계급보다 외국인(non-US citizens)을 더 위에 두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의 노동자 계급에 의해 선출되었다. 만약 좌파가 역사적 전통에 따라 노동자 계급을 옹호한다면, 그렇다면 오히려 좌파들은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해야 하며 지금의 ‘좌파’라 불리는 사람들은 진짜 좌파에게 적이 되어야 한다.
공화당 대통령 지명전 내내 그리고 대통령 선거 캠페인 내내, ‘좌파’는 기득권과 거대 자본 지배자들 그리고 전쟁 광 군사 안보 복합체들과 연대하여 트럼프를 반대했다. 트럼프의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었는데, ‘좌파’들은 이제 트럼프를 탄핵하여 그가 대통령의 지위에서 물러나기를 원하고 있다. 이거야 말로 정확히 전쟁광과 거대 재벌 등 그리고 이들에게 기사를 파는 주류 매춘 언론의 목표이다.
민주당은 클린턴 시절에 변질되었다. 민주당은 80년대 이후 공화당의 성공을 보고 더 이상 풀 뿌리 민주주의나 진보주의로 정권을 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클린턴 정권은 민주당지도자회의(DLC)와 연대했다. 알 프롬(Al From)이 1985년에 설립한 민주당지도자회의는 1930년대 이후 민주당의 전통적 성격을 나타내는 뉴딜진보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소위 '제3의 길’을 가도록 민주당을 변질 시켰다. 그 대표적인 특성이 바로 신자유주의적 성장을 지지한 것이었다. 민주당은 작은 정부와 시장친화주의 그리고 규제완화의 편에 섰으며 대외정책 면에서 군사력을 강조하는 강한 외교를 앞세웠다. 민주당은 2001년 911 테러사태 이후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는 입장이었고, 부시의 대외 정책에 관한 비판을 자제해 왔다. 힐러리 클린턴이 이라크 전쟁과 부시-오바마 정권의 중동정책을 지지하고 연장하겠다는 것은 이런 민주당을 배경으로 한다.
나는 누가 민주당지도자회의(DLC)에 자금을 댔는지 간혹 궁금해 진다. DLC는 민주당을 공화당 2중대로 만들었다. 민주당지도자회의는 민주당 사람들에게 조지 맥거번과 월터 먼데일 같은 후보들이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것으로 보건대 더 이상 반 엘리트주의적 경제 대중주의(populism)를 표방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점을 확신시켰다. 그리고 좌파노선에서 탈피하여 ‘주류 가치관’과 ‘시장에 기반한 해결’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지도자회의(DLC)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강력히 지지했다. 민주당을 보수적으로 이끈 주도적 인사로서 DLC의 싱크탱크인 진보정책연구소(Progressive Policy Institute) 회장인 윌 마셜(Will Marshall)은 반전주의자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반미주의자로 여겨 민주당 인사들에게 거리를 두라는 충고를 했다고 한다.
이 말은 그는 민주당이 대기업과 금융업 분야가 제공할 수 있는 돈에 대해서 공화당과 경쟁하라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민주당 전체가 변질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클린턴 부부에게 영향을 미쳤다.
‘시장에 기반한 해결’은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를 해외로 옮기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되자 그 동안 민주당을 지원 해온 노조가 위축되고 따라서 민주당의 자금 기반도 줄게 되었다. 그리고 노조의 영향력도 사라졌다. 결국 민주당과 노동자계급간의 관계가 끊겨 버린 것이다. 오늘날 민주당과 공화당의 선거 자금은 똑같은 이익집단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이제 공화당과 민주당 그리고 대학, 사법부, 매춘언론, 싱크탱크, 환경단체, 군산복합체와 월 스트리트가 저버린 노동자계급을 트럼프가 지지할 수 있을 것인가?
트럼프가 노동자 계급을 돕도록 누가 트럼프를 도울 것인가?
▲ 대안언론인 폴 크레이그 로버츠 교수가 신자유주의 및 국제정세를 분석한 역저 ©초록비책공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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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칼럼을 쓴 폴 크레이그 로버츠 박사는 미 재무부 차관보를 지낸 경제학자이며 독립언론인이다. 조지타운대학의 정치경제학 교수와 월 스트리트저널 및 비즈니스 위크의 부 편집장과 논설위원을 지냈다. 그의 칼럼은 정치 경제 사회전반에 걸친 국제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복잡한 이론이나 문제를 정확하면서도 간결하게 설명하는 장점이 있다. <세계질서에 대한 신보수주의의 위협><어떻게 경제를 잃어 버렸나><미국은 어떻게 패배하였다>를 비롯한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국내에는 <제1세계 중산층의 몰락, 초록비책공방>(The Failure of Laissez Faire Capitalism)이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