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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찾아 방콕도심 헤맸지만 모두 문을 닫고..."
[버마 난민촌을 가다 18] 무장투쟁 중 부상당한 부디와 심야 나들이
 
최방식   기사입력  2006/11/18 [13:04]
술이 좀 됐다. 새벽 1시나 됐을까? 살라이 박사는 쉬겠다며 우리더런 더 즐기란다. 그리곤 침실로 들지 않고 그냥 앉아있다. 왜 그러시냐고 물으니 당신이 거실에서 잘 거니까 우리 둘 더러 안방(?)에서 자란다. 마음씨도 고우시지. 우린 거실만해도 고맙다며 들어가 쉬라고 박사 등을 떠밀었다. 술도 더 마셔야 하니 사실 박사가 안으로 들어가는 게 우린 편했던 것. 침대를 우리에게 내주겠다던 박사가 안으로 들어가고 셋만 남았다.

그런데 문제는 술이다. 부디가 도중에 한 번 더 사오긴 했는데 다 떨어진 것. 우린 지리를 잘 모르니 사러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부디에게 또 심부름을 시키는 것도 미안하다는 생각에, 셋은 일어섰다. 박사가 사는 곳이 도시 어디쯤인지 알 길은 없으나 '동양의 베네치아'인 방콕의 밤거리도 구경해줘야 하는 것 아니겠나. 
 
피곤한 박사 등 떠밀어 침실로 보내놓고선...
 
열대 기후의 도심에도 한밤에는 시원한 바람이 분다. 박사와 함께 마신 술이 꽤 됐는지 어지럽던 머리가 개운해진다. 부디를 따라 도로변 이쪽저쪽을 샅샅이 살핀다. 술집을 찾아야 하니 말이다. 부디가 인도한 곳을 가 봐도 술집은 없다. 12시가 넘으면 시내 대부분의 술집들은 문을 닫는단다. 이 친구 나오기 전에 말할 것이지 이렇게 헤매게 해놓고서 이제야 귀띔하다니. 착한 이 친구 술을 별로 안 해 잘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당연히 그렇겠지. 난민 처지에 생계를 꾸리기도 힘들 터인데 무슨 술을 먹고 다니겠나.
 
우린 그래도 좀 더 찾아보자고 했다. 오랜만에 그 좋은 술맛을 봤겠다, 그 것도 방콕의 도심인데 어찌 그냥 포기할 수 있겠는가. 화장실에서 일처리 하다 만 느낌으로 되돌아갈 순 없지, 암. 셋은 한참을 헤맸다. 저 앞에 관광호텔이 보인다. 분명 거긴 있을 것이라며 한참을 걸어 들어갔다. 웬 걸 호텔 바도 문을 닫았다고 안내인이 졸린 눈을 치켜뜨며 말한다.

이런 낭패가 어딨나. 헌데 저만치 자그마한 포장마차가 몇 개 보인다. 한걸음에 가보니 거긴 술을 파는 곳이 아니다. 맛 좋은 태국의 쌀국수를 팔고 있다. 덮기는 하지만 여럿이 먹고 있다. 한입 떠 넣고 싶긴 한데 밤새 술에 안주를 먹었으니 배가 불러 어찌 할 수 없다. 천하의 방콕 도심에서 심야에 술 한 잔 못 마시고 철수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부디가 자길 따라오란다.

골목을 몇 개 지나 택시 정류장처럼 생긴 한 구석으로 가는데, 포장마차가 하나 보인다. 부디가 다가가 몇 마디 던지니 포차 맨 밑 한 귀퉁이에서 태국산 쌀 위스키를 한 병 꺼낸다. 불법이라며 몰래 판다고 그랬다. 법을 잘은 모르겠으나 그 자가 눈치를 살피는 걸 보니 그런 모양이다. 포장마차 중 일부만 그런 것인지, 아님 전부가 그렇다는 건지, 아님 12시 넘어서 그런 건지 알 길이 없다. 부디도 잘 모른다.
 
바는 문 닫았고, 포장마차에선 술을 안 팔고...
 
▲방콕의 한 시장 풍경.     © 최방식
 
우린 시원한 열대 바람을 즐기며 밖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 잔 하려던 낭만을 접고 위스키 한 병과 안주 몇 개를 사들고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안주는 꼬치구이 비슷하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거리에는 아직도 꽤 많은 사람이 오간다. 술집도 문을 닫았는데 웬 사람들이 이렇게 심야에 나돌아 다니나 궁금했다. 잘 살펴보니 병원 인근이다. 아픈 사람이 있으니 가족들이 깨어있어야 하는 게 맞을 테다. 또 젊은 남녀도 꽤 눈에 띈다. 연인들도 시원한 시간대에 데이트를 즐기는 모양이다.

다시 술을 따라놓고 마주 앉으니 조용할리 만무하다. 언어 따윈 장벽이 안 된다. 서로 좋은 사람들이 그 것도 술을 한 잔 했으니 쑥스러움 따윈 없다. 의사소통도 물론 자연스럽다. 술을 마시기 전엔 말이 잘 안 통해 서로 웃기만 하던 종순 형과 부디가 죽마고우나 된 듯싶다. 평소엔 안 되던 영어가 능숙하다. 참 희한한 일이다.

부디는 '8888민중항쟁' 때 양곤에서 시위를 하다 검거령을 피해 동부 정글로 들어갔다. 그리고 학생 무장투쟁그룹에 소속됐다. 그는 통신병으로 기여를 했다. 정글 전투에서 그는 많은 동지들이 희생당하는 걸 지켜봤다. 자신도 한쪽 손가락에 총을 맞아 부상을 입었다며 그 '영광의 상처'를 보여준다.

90년대 말 무장투쟁군이 정부군에 밀리다 평화협상이 진행되고 결국 전투중단을 선언하자, 그는 정글을 빠져나왔다. 많은 동지들이 그랬듯이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동지들이 있는 메솟과 메사량을 거쳐 이곳 방콕으로 내려왔다. 무장투쟁을 주도한 ABSDF(전버마학생민주전선)의 방콕 연락담당을 하며 파트타임으로 간신히 생계를 꾸린다. 살라이 박사가 방콕에 머물게 되자 그의 뒷바라지를 하는 일도 부디가 맡았다.
 
▲살라이 박사와 부디.     © 최방식
 
위스키 사들고 돌아와... 취중 부디에게 '한방' 먹어
 
그는 술자리에서도 간절하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흥이 호른 종순 형 당연히 다 돕겠다고 공약을 해댄다. 한국에서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모르나 마음만이라도 곱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술 취한 부디에게 둘은 한방 먹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을 인권기관 어쩌고 하다 들통이 난 것이다. 그는 방콕의 UNHCR에서 받은 난민증을 들고 오더니 읽어보라고 준다. 물론 알고 있었지만 취중에 '유엔인권위' 어쩌고 해대다 그리된 것이었다. 취기가 올라오니 수치지심도 없다. <다음호 계속>

/최방식(국제전문기자, 본지 편집위원) sbchoice@yahoo.com
 
[난민돕기 캠페인]  "한국 영화(드라마) CD·비디오테이프·DVD 모아요."
 
 국경지역 정글 캠프 안에 갇혀 사는 20여만명의 버마 난민들은 TV도, 영화도 볼 수 없습니다. 캠프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요. 내부 발전시설로 전기를 생산해 비디오나 컴퓨터(온라인은 불가)는 사용할 수 있답니다. 이게 캠프 밖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죠.
 
 버마 난민캠프에도 한류 바람이 불었는지 한국의 영화, 드라마, 공연비디오(가수) 등을 좋아한답니다. 보는 이마다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뜻이 있는 분들이 먼저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자기 또는 친구 집, 사무실 등을 뒤져 영상자료를 모아 보자고요. 일정한 양을 모으면 현지로 보내겠습니다.
 
 △버마 민주화를 지원하는 한국인모임(공동대표 림효림, 유종순)
  -문의 011-797-7645(평화사랑, 이메일은 bschoi5@naver.com)
  -한국NLD를 후원하실 분도 찾습니다.(매달 1만원 계좌이체)
  -후원계좌(국민 034502-04-115534 예금주 유종순)
*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인터넷저널> (www.injournal.net) 편집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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