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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흙 같은 어둠을 뚫고 자유를 찾아..."
[버마 난민촌을 가다 9] '8888 혁명가' 부르며 전사들과 이별 만찬가져
 
최방식   기사입력  2006/10/13 [11:37]
곱상한 얼굴의 질리아는 우리를 마루 한쪽으로 안내하더니 과거 캠프관리소에서 찍어 보관하고 있던 사진을 꺼내 보여줬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살해사건, 처음 캠프를 건설할 때 울력하던 모습, 학교에서 교육받는 아이들 사진, 한국의 선교단체와 학생봉사대가 와서 함께 했던 행사 사진들을 구경했다.

1박2일을 보낸 난민캠프에서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좀 나았다. 가는 길은 가파른 오르막이고 도로가 진흙탕이어서 힘들었는데 올 때는 진흙탕이라도 차 무게가 있어 미끄러지듯이 내려오니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물론 서너 군데서 차가 수렁에 빠져 애를 쓰기는 했지만 그래도 수월한 편이었다. 다섯 시간 만에 메사량에 있는 ABSDF(버마학생민주전선) 본부에 도착했다.
 
▲'8888민중항쟁' 주역들. 버마학생민주전선 조직원들로 88년 항쟁이후 대부분 정글에서 독재정권과 무장투쟁을 벌였던 이들이다. 일행과 헤어지기가 아쉽다며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다.     © 최방식
 
소박한 마음씨, 어디가나 "어서 타세요"
 
소박한 버마인들의 인심은 어디서든 확인됐다. 캠프로 갈 때 그렇게 힘들어했지만 길을 가다 만난 이들 중 누구든 태워달라고 하면 다 태웠다. 내 눈에는 부탁하고 허락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그냥 태워달라는 말 한마디하고 올라타는 정도였다. 떠나올 올 때도 캠프 안에서 누군가 태워달라는 이가 있어 차를 세워놓고 기다렸다. 말한 이가 집으로 들어가고 한참을 지나도 나오지 않자, 그냥 가도 될 텐데 운전자가 그 집에 찾아가 "안 간다"는 말을 듣고 출발한 적이 있다.

석양녘에 메사량에 도착했다. 다시 짐을 풀고 작은 도시에서의 마지막 밤을 준비했다. ABSDF 식구들과 가옥이 며칠 사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우리 일행도 한국의 독재정권시절 민주화운동을 경험했으니 이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도심 한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태국 전통 위스키 한 병과 맥주 몇 병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열 댓 명의 식구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술 한 잔 기울이며 밤새워 하고픈 이야기가 많았다. 술을 안 먹는 이들이 있어 예닐곱의 '8888민중항쟁' 주역과 술을 몇 잔 주고받았다. 그들 중 라 한을 빼고는 영어가 서툴렀지만 술 때문인지 의사소통에 그리 지장이 없었다. 술기운이 조금 오르자 제일 나이 들어 보이는 한 친구가 기타를 들고 온다. '8888항쟁' 때 불렀던 혁명가 하나를 부르겠단다.
 
▲술기운이 좀 오르자 일행중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이가 88년 항쟁 때 불렀던 혁명가 하나를 하겠다고 기타를 들고 왔다. 로드 스튜어트의 '세일링'에 가사를 붙여 만든 것이었다.     © 최방식

알만한 이는 다 안다.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가 부른 'Sailing'이라고. 이 노래의 가사만 바꿔 버마에서 혁명가로 불렀다고 했다. 버마어로 부르니 노랫말이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본 가사의 의미를 곱씹어보니, 민주화운동 가요로 손색은 없어 보인다.

"항해 중입니다, 항해중입니다.../바다를 건너.../격랑을 뚫고/너에게로 가까이/자유를 찾아.../ 내 얘기가 들리나요... /칠흙같은 어둠을 뚫고 저 멀리.../죽을 때까지 영원히 노력하렵니다/너와 함께 하기 위해... /오, 주여! 당신 곁으로, 자유를 향하여..."
 
버마전사들, 스튜어트의 '세일링' 노가바
 
몇 시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이들과 술을 주고받고, 노래하고, 잡담하며 밤을 보냈다. 취기가 오른 종순 형도 우리 민중가요를 함께 불러보자고 한다. 술이 취했는지 한 두 곡 부른 기억만 아스라하다. 그들과 함께 어깨를 걸고 함께 외쳤던 기억도 난다. "버마 민주주의를 위하여..."

▲메사량에서 사흘을 보내고 아쉬워 한자리에 모였다. 가운데 있는 이가 우리 여행을 안내한 라한. 30대 중반의 총각이다. 왼쪽이 유종순 버마민주화 지원모임 공동대표, 오른쪽은 김천직 시민방송 프로듀서.     © 최방식

취중이었지만 그들 모두의 아픈 기억들을 엿봤다. 무장 투쟁 중 총에 맞아 팔이 아픈 이, 눈이 아픈 이,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 가족을 잃어 마음이 아픈 이들을 보며 20여 년 전 어깨걸고 길거리에서 함께 싸웠던 친구들과 슬픔만 남긴 채 역사 뒤안길로 스러져 간 운동열사들이 떠올랐다.

메솟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늦게 일어났는데도 취기가 남아있는지 어지럽다. 치앙마이에서 우리를 태우고 이곳으로 데려왔던 그 치가 다시 차를 몬다. 며칠 간 우리를 안내했던 라 한과는 이별했다. 꼭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며. 그리고 밤새 함께 했던 동지들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재촉했다.

라 한은 ABSDF 재정담당이다. 까무잡잡하면서 잘생긴 얼굴, 그리고 늘씬한 근육질의 몸매를 가진 매력남이다. 멜라웅 캠프에서 KYLMTC에 들렸을 때 호주인 교사 마크를 기다리며 잠시 잡담을 할 때였다. 내가 "중매라도 서줘야 할텐데..."라고 했더니, 종순 형이 "이렇게 섹시하게 잘 생긴 남자가..." 농을 던진다. 일행들이 맞장구를 쳤고, 순진한 라 한은 얼굴이 불거져 "제발 그만..."이라며 돌아섰다. 꼬치꼬치 캐물은 결과 애인이 있나보다. 내년쯤에 결혼할 예정이란다.
 
라한, "잘생긴 남자..." 찬사에 얼굴 붉혀
 
▲메사량에서 메솟으로 가는 길에 볼일이 급해 잠깐 들른 태국 경찰 검문소. 경찰 한명이 있었으나 집 안쪽에서 신문을 읽으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최방식

멜라웅 캠프가 가까운 메사량이 태국 중부 북서부 버마 국경지대에 있다면 메솟은 태국 북서쪽 끝에 자리한 버마와 국경도시다. 버마와 태국의 교역도시이다 보니 꽤 많은 버마인들이 살고 있다. 안내인의 말에 따르면, 20만명 정도가 버마인들인데 전체 인구의 2/3쯤 된다고 한다.

이 도시가 버마와의 교역도시이다 보니 버마 관련 각종 사회단체의 본부가 대부분 이 곳에 몰려있다. 단체 수만 수백개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는 단체들을 잘 몰라 일단 라 한이 알려준 ABSDF 메솟 지부로 향했다. 물론 NLD-LA 본부에는 들르겠다고 사전에 연락해뒀다.

자동차로 네시간여를 달렸다. 검문소를 서너군데 지났지만 그냥 통과시켜 줬다. <다음 호 계속>
 
최방식(국제전문기자, 편집위원) sbchoice@yahoo.com
 
[연재를 시작하며] 기자는 지난 7월 16일부터 일주일간 태국과 버마 국경지대를 다녀왔다. 군부정권의 폭정을 피해 40여만명의 버마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양국 사람들이 그냥 뒤섞여 사는 여느 국경 도시와는 처지가 사뭇 다르다.
특히 9개 정글 속 캠프에 모여 사는 30여만명의 버마인들은 수용소 포로와 같은 삶을 강요받고 있다. 버마에서 민주화운동을 했거나 소수인종이라는 이유로 폭정을 피해 국경을 넘었건만 태국정부마저 이들을 범죄인 취급하며 정글 속에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어서 그렇다.
48년 독립과 소수인종 탄압, 45년여의 군부독재, '버마의 5·18'이랄 수 있는 '8888민중항쟁'과 정글 속 학생들의 무장투쟁, 90년 총선과 10년 넘게 거듭되는 아웅산 수지여사의 가택연금 및 세계 속의 NLD, 그리고 버마인들의 오랜 침묵과 저항을 이 번 기행을 통해 다뤄보려 한다. /편집자

 
[난민돕기 캠페인]
"한국 영화·드라마 담긴 CD·비디오테이프·DVD 모아요. "
 
국경 정글 캠프 안에 갇혀 사는 20여만명의 버마 난민들은 TV도, 영화도 볼 수 없습니다. 텔레비전이 나오질 않고, 영화관이 없으니까요. 캠프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요.
하지만 내부 발전시설로 전기를 생산해 비디오나 컴퓨터(온라인은 불가)는 사용할 수 있답니다. 이게 캠프 밖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미디어인 셈이죠.
버마 난민캠프에도 한류 바람이 불었는지 남녀노소 한국의 영화, 드라마, 공연비디오(가수) 등을 좋아한답니다. 자치기구 대표를 비롯해 보는 이 마다 보내주면 고맙겠다고 했습니다.
뜻이 있는 분들이 먼저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자기 집, 친구 집, 사무실 등을 뒤져 먼지 쌓인 영상자료들을 모아 저에게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일정한 양이 모이면 현지로 보내겠습니다.
 
버마 민주화를 지원하는 한국인모임(공동대표 림효림, 유종순)
-문의 011-797-7645(평화사랑, 이메일은
bschoi5@naver.com)
-한국NLD를 후원하실 분도 찾습니다.(매달 1만원 계좌이체)
*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인터넷저널> (www.injournal.net) 편집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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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10/13 [11:3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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