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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버마' 시민단체, ‘민주화 전파’ 쏘겠다
[버마 난민촌을 가다 17] 호주·미국·일본 NLD와 라디오방송 사업협의
 
최방식   기사입력  2006/11/10 [17:41]
살라이 박사와 한담은 밤늦도록 계속됐다. 노구임에도 심야까지 끄덕 않고 앉아서 방문자와 대화를 나눈다. 걱정스러워 여러 차례 먼저 잠자리에 드시라고 했지만 괜찮단다. 다만 날씨가 좀 덥다며 박사는 버마전통 옷인 '론지'로 갈아입었다. 바지보다 훨씬 시원하다고 그랬다.

남은 것 없냐고 해 나도 하나 얻어 입었다. 평생 바지(반바지)만 입었으니 치마처럼 생긴 옷을 입는 게 좀 불편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더울 때 바지는 무릎이나 사타구니에 들어붙어 끼는데, 론지는 그런 불편이 전혀 없다. 치맛자락을 무릎 위로 젖히고 앉아 있으니 얼마나 시원한지 모르겠다. 주머니, 혁대, 매듭 등 몸을 불편하게 할 만한 게 아무것도 붙어있지 않아 앉든, 누워 뒹굴든 편하기만 하다. 입는 법을 잘 몰라 허리 쪽을 갈무리하는 게 서툴기는 했지만, 남자들끼리 앉아서 술 먹는데 무슨 상관이랴.
 
'론지'를 빌려 입으니 얼마나 편한지 몰라...
 
▲사원의 한 우물에 피어난 연꽃. 마치 버마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의 고운 마음을 표현하는 듯 하다.     © 최방식

 버마인들을 보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게 이 독특한 의상이다. 남녀노소가 애용하는 '론지'는 그냥 아래 위가 터진 자루와 같이 생겼다. 남녀 구분도 없다. 남자는 허리 쪽 양끝을 손으로 당겨서 묶되 매듭을 배꼽 쪽으로 만들고, 여자는 옆구리 쪽으로 만드는 것만 다를 뿐이다.

종순 형은 지난번 버마 여행 때 론지의 편함을 알았는지 방콕 시내를 다니다 론지 하나씩 사자고 한다. 전통의상이니 하나쯤 기념으로 사면 나쁠 것 없을 거라 생각하며 시원찮게 그러자고 했었다. 헌데 하룻밤 입어봤지만 너무 편하고 좋다. 그래서 꼭 하나씩 구입하자고 다짐했다. 살라이 박사를 돌보는 부디가 아는 옷가게가 있으니 안내하겠단다.

▲버마 전통의상인 '론지'를 입은 한 외국인.
박사는 농담도 참 잘했다. 지난 번 귀국투쟁 할 때 종순 형한테 배운 한국 농 하나를 기억하고 있다. 어쩌다 영어 이야기가 나왔는데, 대뜸 '미 쓰리'라고 그러면서 웃어댄다. 뭔 말인고 했더니, 청와대의 전직 한 영부인께서 대통령인 남편을 따라 미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영어를 몰라 빚었다던 해프닝. 왜, "음료수 뭐 마시겠습니까?"고 물으니, 미국 대통령이 "커피", 남편이 "미 투" 하니 다음 차례로 "미 쓰리"(다른 의미로는 자신의 이름)라고 했다던... 믿거나 말거나.

그 날 살라이 박사와 부디, 그리고 우리 방문자들은 별의별 얘기를 다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부터, 한국과 버마&태국의 정세와 문화 등... 우리 방문단이 가장 관심을 가진 건 당연히 버마 민주화와 관련한 이들의 전망이었다. 이것저것 캐물었다. 특히 살라이 박사의 생각이 어떤지를 알고 싶었다.
 
"내 남은 인생 이제 조국에 모두 바치겠다"
 
박사의 의지는 확고했다. 지난번 '유서'를 써놓고 귀국투쟁을 벌였을 때 밝혔듯이 자신은 이제 일흔여덟이니 "남은 인생 개인적으로 더 할 게 뭐 있겠냐"며 버마민주화를 위해 모든 걸 바치겠다고 했다. 입국을 못해 태국에 머물고 있는데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거냐"고 물으니 많은 계획들을 구상하고 있었다.

박사는 아직 완성이 덜 된 구상에 불과해 밝혀봐야 별 것 아니라면서도 방콕에 버마민주화를 위한 단체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테면 '자유 버마'(가칭)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그를 위해 미대사관과 협의 중이며 일이 잘 풀리면 곧 미국, 호주 등 해외를 순방하며 사업을 구체화할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살라이 박사는 다음날 아침에 미대사관 공무원과 약속이 잡혀있다고 그랬다. 자신의 구상을 구체화하려고 그쪽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젊은 시절 미국에서 유학을 했으며, 버마 정부가 그를 미국으로 추방했었으니, 나름대로 미국 쪽과는 대화가 되는 편이었다.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미국의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한 정당성 시비에 대해 물으니 찬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군부의 농업관련연구소 제안 거부해 미움사
 
▲서로 만나 반가운 동지. 버마 민주화운동을 벌이고 있는 살라이 박사와 이 운동을 돕기 위해 한국에서 '버마 민주화를 위한 모임'을 결성한 유종순씨. 그도 한국 민주화운동에 오랜 세월 헌신해 왔다.     © 최방식

 
살라이 박사가 군부정권의 미움을 산건 '8888민중항쟁' 이후 거리시위를 한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농업정책 전문가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양곤대에서 교수직을 가졌다. 당시 군부는 그의 능력을 알고 있어, 박사더러 버마 최고의 농업관련 정책연구소를 만들어 국가의 기간정책을 수립하는데 앞장서 달라고 요청했었단다. 하지만 살라이 박사는 군부에 협조할 수 없다며 단호히 거절했고, 결국 군부의 미움을 샀던 것이다.

왜 우리도 군부 독재시절 정권이 개발독재를 위해 유능한 교수(학자)를 찍어 국책(정부 출투자기관) 연구소를 만들었던 그런 경험이 있잖은가. 학자들은 "정치가 아니고, 학문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라며 대부분 고마워하거나 아니면 별 고민 없이 제안을 받았을 성싶다. 하지만 살라이 박사는 독재정권에게 정당성을 부여할 어떤 부끄러운 행위도 하지 않겠다며 비타협적으로 나왔으니 그 정신은 참으로 곧고 본받아야 할 만하다. <다음 호 계속>
 
/최방식(국제전문기자, 본지 편집위원) sbchoice@yahoo.com
 
[난민돕기 캠페인]

 
"한국 영화·드라마 담긴 CD·비디오테이프·DVD 모아요."
 
 국경지역 정글 캠프 안에 갇혀 사는 20여만명의 버마 난민들은 TV도, 영화도 볼 수 없습니다. 텔레비전이 나오질 않고, 영화관이 없으니까요. 캠프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요. 하지만 내부 발전시설로 전기를 생산해 비디오나 컴퓨터(온라인은 불가)는 사용할 수 있답니다. 이게 캠프 밖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셈이죠.

 
 버마 난민캠프에도 한류 바람이 불었는지 남녀노소 한국의 영화, 드라마, 공연비디오(가수) 등을 좋아한답니다. 자치기구 대표를 비롯해 보는 이 마다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뜻이 있는 분들이 먼저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자기 또는 친구 집, 사무실 등을 뒤져 먼지 쌓인 영상자료들을 모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일정한 양을 모으면 현지로 보내겠습니다.
 
 △버마 민주화를 지원하는 한국인모임(공동대표 림효림, 유종순)
  -문의 011-797-7645(평화사랑, 이메일은
bschoi5@naver.com)
  -한국NLD를 후원하실 분도 찾습니다.(매달 1만원 계좌이체)
  -후원계좌(국민 034502-04-115534 예금주 유종순)
*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인터넷저널> (www.injournal.net) 편집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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