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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말을 살려 쓴 참사람, 다석 유영모
[이대로의 우리말살리기] 이제 우리말로 학문하고 토박이말 찾아 쓸 때
 
이대로   기사입력  2005/10/17 [17:13]
지금부터 10년 전에 한글과 한자문제로 서영훈 선생님과 내가 단 둘이 말씨름(논쟁)을 한 일이 있다. 서 선생님이 한글전용법을 없애고 한자혼용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청원을 한자파 유정기, 제헌국회의원 이상돈, 전 성균관대 총장 장을병 들과 1993년 3월 29일자로 ‘한글, 漢字混用에 관한 法律制定등에 관한 請願’을 김길홍(민자:경북 안동), 황윤기, 장영철의원이 소개해 국회에 낸 일이 있다. 그 때 나는 청원자와 소개 의원 모두에게 사실 확인과 공개토론을 하자고 내용 증명을 보냈는데 아무도 반응이 없고 서 선생님만 만나자는 연락이 왔었다.
 
종로 기독교여전도회관에서 서 선생님을 만나 두 시간 정도 말씨름을 한 일이 있다. 처음에  나를 설득하려 하셨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서 선생님은 “한자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그 일을 함께 했는데 네 말을 들으니 잘못한 거 같다. 앞으로는 그 일에 나서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주면서 ‘씨알<원래 표기는 아 밑에 아래한글, 방점이 있는 글자>의 메아리(다석 유영모 말씀집, 홍익재)’, ‘씨알 다석의 생애와 사상’이란 책과 당신이 쓴 책을 주셨다. 다석은 함석헌, 류달영 선생의 스승이고 ‘씨알’이라는 말을 처음 쓴 분이었다. 그리고 대단한 사상가요 종교가로서 매우 훌륭한 분이었다. 
 
▲한국 현대사에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다석 유영모 선생 초상화     © 인터넷 이미지
처음에 나는 서영훈 님이 흥사단 대표도 한 일이 있어 도산 안창호 선생을 우러러 모신다고 말씀할 줄 알았는데 다석을 가장 존경한다고 해서 뜻밖이었다. 나는 다석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 때 서 선생님이 나를 좋게 보셨는지 함께 사회 운동을 하자고 하시기에 “저는 공병우 박사님을 모시고 한글운동 하나 하기도 벅차서 안 됩니다.”라고 말한 일이 있다. 그리고 다석 말씀집(語錄)을 집에 와서 읽어보니 그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한자가 섞였지만 높고 깊은 철학과 삶이 배인 다석의 말씀과 토박이말이 내 가슴을 뛰게 해서다. 다석을 만나게 해 준, 젊은이와 말씨름을 하고 당신의 뜻을 굽힌 서영훈 선생님이 고맙고 우러러 보였다. 이상돈, 장을병 들은 내게 할 말이 없었는지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들은 쭉정이로 보이고 서 선생님은 알밤으로 보였다.
 
우리는 5000년 역사를 가진 나라이면서 세계에 내놓을만한 우리 학문이 없고 우리 사상가, 철학자가 없다. 율곡이나 퇴계가 있다고 하나 그는 중국 공자나 맹자의 학문과 사상의 곁 가지이다. 오늘날 철학자들도 공자와 석가, 예수나 칸트 사상이나 철학을 맴도는 사람들뿐이다. 그런데 다석은 그들의 종교와 사상을 모두 알고 우리 삶과 정신을 우리말로 말하고 있었다. 참된 배달사람, 참된 우리 스승이었다. 그런데 요즘 젊은 학자들이 ‘우리말로 학문하기모임(회장 이기상교수)을 만들고 다석의 사상과 정신을 이어서 우리말로 학술 책을 쓰고 우리 학문을 꽃피자가 나서고 있어 반갑고 고마웠다.
 
다석 말씀집을 낸 박영호님은 다석 유영모 선생은 ‘한국의 공자, 예수, 석가’라고 말했다. 다석 말씀집을 읽으며 나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말씀집에 나온 우리 배달말을 여러분에게 옮겨 다석의 얼누리(정신 세계)를 함께 더듬어 보고 싶었다. 학자나 정치가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다석의 정신과 사람 됨됨이를 본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석을 소개하며 다석의 말씀집에 나온 토박이말과 그 뜻풀이한 것을 그대로 옮긴다.
 
1. 씨알 : 씨알이란 말은 옛부터 쓰던 우리말이다. 씨알이란 말은 종자(種子)란 말이다. 씨알은 하나 하나 낱개(個體)이면서 제각기 생명을 지녔다. 다른 생명을 살리는 먹이가 되면서 한편으로는 제 종족을 보존한다. 한마디로 남도 살리고 나도 사는 것이 씨알이다. 유명모는 民(백성)이란 우리말이 없자 이 씨?로 民을 나타내었다. 유영모가 백성이란 뜻으로 이 씨알을 쓰자 이 말을 듣고 함석헌이 감동하여 씨알이란 말을 즐겨 썼고 뒤에 함석헌이 내는 잡지 이름도 ‘씨알의소리’라 하게 되었다.
 
2.  얼줄 : 우리 앞에는 영원한 생명인 정신의 줄(絲) 곧 얼(靈)줄이 늘 늘여져 있다. 이 우주에는 도(道)라 해도 좋고, 법(法)이라 해도 좋은 얼(靈)줄이 백년이 가도 천년이 가도 드리워져 있다. 우리는 이 얼줄을 버릴 수도 없고 떠날 수도 없다. 이 한 얼줄을 잡고 좇아 살아야 한다.
 
3. 끄니: 먹는 것은 끄니(끊이)로 먹어야 한다. 한참 끊었다가 먹으라고 끄니(끊이) 또는 끼니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줄곧 이어 달아서 먹으려는 것은 잘못이다. 먹음에 실컷 먹겠다는 생각을 버린 사람은 일부러 금식도 하고 단식도 한다. 먹을 것이 모자라서 먹기를 끊을 때(굶을 때)는 오히려 이것을 하늘이 주는 은혜로 알고 감사의 뜻으로 받는다. ‘말씀’을 바로 아는 집안에서는 “나쁘듯 먹어라”는 말을 한다. 온당한 말이다.
 
4. 고맙다 : 우리말에 “고맙다”는 말에도 뜻이 있다. 고만한다. 고만이라는 뜻이다. 자꾸 더 받아서 될 일이 아니라 고만하라는 뜻이다.
 
5. 말미암아 : ‘말미암아’라는 말은 ‘따라서’라는 뜻인데 본 뜻은 그만두라는 것, 그만하고 마는 것, 그만하면이라는 뜻이다.
 
6. 하나 : 천가지 만 가지의 말을 만들어보아도 결국은 하나(절대)밖에 없다. 하나밖에 없다는 데는 심판도 아무것도 없다. 깨는(覺) 것이다. 깨는 것, 이것은 하나이다. 한(天) 나(我)가 하나이다.
 
7. 죽음 : 죽음이란 줄 것을 다 주고 꼭 마감을 하고 끝내는 것이다. 줄 것을 다 주고 위로 올라가는 것이 죽음이다. 돈이 있는 사람은 모은 돈을 주고, 아는 것이 있는 사람은 지식을 주고 그래서 줄 것을 다 주면 끝을 꽉 맺는다. 비바람 부는 날 빌고 이 세상에 나온 것은 모을 것을 모으고 알 것은 알아서 이웃에 주고 가려고 나왔다.
 
8. 얼굴 : 인간의 주인은 얼이다. 영혼이다.  얼을 들어내는 골자기가 얼굴이다. 누구나 얼굴을 쳐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 아마 얼굴만이 영원히 들어 날 것이라는 상징인지도 모른다. 얼굴만은 누구나 번듯하게 들어 내 놓고 보이려고 함은 그것이 몸보다 훨씬 중요한 마음이 들어 나서 그런가 보다. 몸은 옷이요, 얼이 임자다. 몸 위에 얼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얼 밀에 몸이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얼굴이 주인이요 몸은 종이다.
 
9. 속알 : 내 몸은 수레지만 내 정신은 속알이다. ‘속알’이란 덕(德)이란 한자 옮김인데 창조적 지성이란 말이다. 솟구쳐 올라 앞으로 나아가는 지성(知性)이 속알이다. 마치 구슬처럼 계속 굴러가는 것이다. 우리말에 “속알머리가 없다”느니 “속알딱지가 없다”라는 말을 썼다. 속알(眞理), 속알(靈)이란 뜻으로도 썼다.
 
10. 글 : 글이라는 것은 어떻게 하면 될까다. 그것은 영원을 그리는 것이라면 글이 된다. 글이 그리웁다고 글이 된다. 외국어나 자꾸 쓰고 되지 않는 소리 마구 쓰는 것은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다. 영원을 이어온 예(今)의 수(能)를 받는 그 수를 영원히 살리는 것을 말한다. 글이라는 것은 절대자 그이로 통한다. 그이(한아님)를 그리워하여 그리는 글이라야 한다.
 
11. 모름지기: 나는 ‘모름지기’란 우리말을 좋아한다. ‘모름지기’란 반드시 또는 ‘꼭’이란 말이다. 사람은 모름을 꼭 지켜야 한다. 한아님아버지를 다 알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아무리 아들이 위대해도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12:  까막눈: 까막눈이란 눈으로 글자를 보는데 글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을 말한다. 까마귀 눈은 있긴 있는데 그림으로 그리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에 대해 까막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눈이 밝아진다. 못 보면서 본다고 하면 영원히 까막눈이 된다.
 
13. 매임, 맴(拘束).  모음, 몸(致富).  글월(文章).  빈탕,한데(虛空),  바탈(性), 맘놓이(解脫),  곧이(貞), 몸성히(健康), 맷감량(飽和量), 염통(心), 긋(點), 금(線), 참나(眞我), 아멘(아무럼 그렇지), 금새(값을 매기는 것), 빈맘(空心), 몬(物), 몸뚱이(肉體), 깨달음(覺),  참(眞理), 밑바탈(眞理), 공글차기(完成), 그이(君子), 참말(眞言), 슬기(智), 어짐(德), 여름질터(農場), 키질(審判), 그나니(聖者. 先知者), 얼(靈), 임자(主人), 따름(從), 올(國是), 홇아이(孤兒), 낱사람(個人),  마음돌림(轉機),  몸피(體軀), 터무니(根據), 남새(채소), 빎(祈禱), 한?님(하나님). 참이,참사?(眞人),  잘몸(萬物), 싶뜻(慾心). 
 
하이금(使命), 맨참(순수), 글월(문화), 알맞이(철학), 마침보람(卒業),알짬(精), 짓수(예술), 살알(細胞), 환빛, 빛월(榮光), 제계(天國), 힘입(恩惠), 받알(天性), 바람울림(風樂), 몬(物), 고디(貞操), 는지름(淫亂), 짬쨈(組織), 맞긋(終末), 덛(시간), 덜(惡魔), 조임살(罪), 읊이(詩), 예(상대계), 숨줄(生命), 다세움(民主), 외누리(獨裁), 님(主), 좋싫(好惡), 올(義), 굳잊기(健忌), 사람새(人間), 나위힘(能力), 땅구슬(지구), 몸돌(坤), 성큼(乾), 김(氣), 가온데쓸(中庸), 낸감(制度), 뭉킴(協同), 밑일(기본공사), 떼몸(조합), 맨듬(창조), 씨볼맞이(因緣), 등걸(檀君),
 
다석의 말을 듣다보면 말(語)속에 삶이 있고 철학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총 결산은 그 사람이 한 말로서 한다고 했다. 함석헌의 스승인 다석 유영모 선생은 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다석은 중국 한문책, 논어나 맹자 등은 말할 거 없고, 불경과 성경에 대해서도 능통한 분이다. 예수, 석가, 공자, 노자의 사상을 모두 익히고 스스로 사상을 만들어 품고 산 큰 사상가요 참 된 배달겨레였다.  이렇게 한문을 많이 아는 분이 될 수 있으면 우리 토박이말을 살려 쓰려고 애쓴 일은 우리 모두 본 받아야 할 일이다.
 
다석은 대한제국 때 태어나 자란 분이다. 이 분의 정신과 사상이 참된 우리 사상이라고 생각된다. 다석 정신에서 우리 학문과 문화가 꽃피고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 글꽃이 피어날 수 있다. 제 나라의 말글을 쓰자는 것을 국수주의니 쇄국주의니 지껄이는 문화 식민지, 문화 사대주의 근성을 가진 자들, 일제 미제 꼭두각시들에게 다석의 사상과 삶을 연구해보라고 말하고 싶어 글을 썼다.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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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10/17 [17:1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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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객 2006/01/26 [15:40] 수정 | 삭제
  • 세종대왕께서 왜 "훈민정자"라고 하지 않고 "훈민정음"이라고 했는가? 그 이유는 그것이 본질적으로 소리를 표현하기 위한 발음기호였기 때문이다. 말은 공중에 떠 있는 음파이거나 종이위에 그려진 발음기호이거나 간에 모두 본질적으로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종이위에 "모름지기"라고 써 놓고는 "우리말"이라고 하지 않는가?

    공중에 떠 있는 음파를 "말"이라 하고 종이위에 그려진 발음기호를 "글"이라고 하는 것은 서양 언어학적 시각이다. 그들에게는 "말"만 있지 "글"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 우리는 말과 글을 다 가지고 있었다. 말은 공중에 떠 있는 음파이거나 종이위에 그려진 발음기호이거나 컴퓨터속에 기억된 비트이거나 간에 모두 "말'이다. 이와 똑 같이 글은 종이 위에 그려져 있거나 컴퓨터속에 비트로 기억되어 있거나 간에 그것은 모두 "글"인 것이다.

    우리가 "한글"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한말"이라고 고쳐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발음기호, 즉 "말"이기 때문이다.

    "한글"은 따로 있다. 무엇이 우리 글 "한글"인가? 소위 말하는 "한자"가 우리 글이다. 이 문자는 말이 아닌 형상이나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우리 동이족의 발명품이다.

    이 문자의 유래는 갑골문에 있고, 그 갑골문은 은나라 사람이 남긴 것이며, 그 은나라 사람은 바로 우리 東夷족이다. 이는 이미 세계의 고고학계가 정설로 인정하는 것이며 이미 다 밝혀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말만 사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글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漢字"를 대신하여 "韓字"를 사용하기를 제안한다.
  • 過客 2005/10/18 [12:09] 수정 | 삭제
  • 좋은 글이어서 퍼나르면서 몇 자 남깁니다.

    국어 정서법에 대하여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되, 한글 운동가로서는 너무 많은 정서법 오류가 드러나 보이외다.

    곁가지, 꽃피우자, 예로부터, 얼을 드러내는 골짜기, 얼굴을 처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