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의 최대 피해자는 노무현 대통령인가? 그렇지 않다. 나는 이번 선거가 정부 평가에 무게를 실은 ‘회고선거’라는 규정에 선뜻 동의하지 못한다.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심판하기보다는 정리하려고 했던 것 같고, 야권의 수장으로 정권에 대항해 왔던 박근혜보다는 (뒤틀린) 미래지향을 가진 이명박을 선호했다. 노무현은 전임자들처럼 경제환란이나 비리스캔들을 말년에 맞이하지도 않았고, 지지도는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상승했다. 대통령연임이 보장되는 체제에서 그가 재출마해 이명박과 맞붙었다면? 아마 정동영처럼 참패하지는 않았을 성 싶고, 잘하면 신승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5년동안의 대통령직 수행 경험을 허투루 볼 일이 아니거니와 이명박의 정치기술은 노무현을 잡기엔 족탈불급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애초 약속했던 과세표준 1억원 이상 기업의 법인세 인하를 보류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권위주의와 금권정치를 청산했다며 찬사를 보냈고, 그러한 시각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의 기조에도 반영되고 있다. 대통령과 당선자의 청와대 회동에는 화기가 돌았다. 노무현으로서는 꽃놀이패를 쥔 셈이다. 신임 대통령은 전임자를 마냥 밟고 올라가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퇴임자는 묵묵히 한가한 노후를 보내면 그만이다. 나아가 후임자의 국정이 파탄나기라도 하면 그는 즉시 재조명될 것이다. 정작 패배의 아픔은 노무현이 아닌... 그럼 최고의 패자는 정동영이나 대통합민주신당의 당권파일까? 참여정부는 정동영 후보에게 양날의 칼이었지만, 정 후보는 ‘잘한 건 잇고, 못한 건 끊겠다’라는 상식적인 담론으로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지론을 펴봐야 지난 5년간 정동영의 행적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실정의 책임을 짊어지는 척하더니 얼마 안 지나 은근슬쩍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결과는 ‘잘한 건 끊고, 못한 건 잇는’ 이명박의 승리였다. 그럼에도 정동영 쪽에게는 기회가 남아 있고, 그것은 한국정치의 악화일로와도 엮여 있다. 이명박에 대항하는 대중정치인이 부상하지 않을 때, 그러니까 신야권이 계속해서 정동영, 손학규, 김한길 같은 사람의 수중에서 놀아날 때, 여야는 노회한 정치인들만을 대표자로 내세우거나 혹은 그들간의 협잡으로 내각제 개헌 같은 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다. 이명박 정권이 몰락해봤자 반사이득이 노무현 잔당이나 이회창 신당에게 돌아가리라는 불길한 예감은 최대 패자가 이번 대선을 맥없이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라는 결론에 닿게 된다. 내가 당장 떠올린 사람은 회계사 윤종훈이다. 민주노동당을 떠나 천정배 캠프로 간 이후 그의 소식이 뜸하다. 범여권 경선을 모바일투표로 치르자고 주장하면서 잠깐 등장하기는 했다. 하기야 그렇게 경선을 진행했다면 대중성은 떨어지면서 오로지 내부 조직만 다져놓은 이를 범여권이 후보로 내지는 않게 됐을 터이고, 득표율도 조금은 더 높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윤 회계사 같은 사람이 거기서 얼마나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었을까. 그건 민주노동당에서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말이다. 재작년 초여름, 유월항쟁 19주년을 맞아 그를 학교로 초청하였을 때, 윤종훈은 사회양극화를 방기한 민주화세력의 오만을 비판하며, 마치 샤워 한 번하듯 국가보안법폐지 등의 구호를 외치는 일에만 익숙해져 있다고 꼬집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이고 열린우리당이고 '헤쳐모여'를 한 후 사민주의를 지향하는 국회의원 20여명을 가진 정당이 10년동안 싸울 각오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뒤풀이 자리, 누군가의 입에서 “탈당하셨는데”라는 헛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부유세 입법안이 최고위원들의 반대로 꺾인 데 항의하여 당직을 사퇴했던 그는 그때도 "나 아직 당원이야!"였다. 그는 촉박하고 절실해 보였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굼떴다. 창조한국미래구상도 대통합민주신당도. 다음으로 생각나는 이는 정태인이다. 너무 빼어난 사람을 사랑하면 불행해진다며 <씨네21>에 마지막 칼럼을 남기고 참여정부에 합류한 정태인은 한미FTA광풍과 싸우다 허세욱 열사의 생전 권유를 받아들여 민주노동당에 들어갔다. 한미FTA 반대여론은 30~50퍼센트를 오갔으나, 민주노동당의 대선 득표율은 그 1할 수준이었다. 또 최장집의 경우는 어떠한가? 진보적 자유주의자에서 토착적 사민주의자로의 변화를 훌륭히 보여줬던 이 정치학자의 시선을 여권과 진보진영은 좀처럼 따라잡지 못했다. 패자의 목록에는 고종석도 빠질 수 없다. 그는 참여정부 원년 때부터 노 정권의 억약부강을 비판하면서 자세를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탄핵과 남북정상회담 정도를 제하면 노 정권은 옛 지지자들에게 두둔하거나 옹호할 기회를 좀처럼 주지 않았으니까. 그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김종철 후보를 찍지 않은 자신을 책망”하며 대선에서는 민주노동당에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통일근본주의와 세 번째 출마한 대통령 후보로 답변했다. 대통령선거 당일 밤, 고종석은 <한국일보> 인터넷판에 “민주노동당, 시간이 없다”는 글을 걸었다. 그런가 하면 민주노동당 당원인 홍세화는 종북세력과 결별해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할 것을 주문했다. 당의 이론가로 첫손가락에 꼽힐 만한 이재영도, 발랄한 반파쇼투사 진중권도, 그 둘을 한국사회의 희망이라고 일컬었던 우석훈도 분당을 촉구하고 있다. <연대투쟁가>의 한 소절을 흉내내자면 “너희에겐 요직과 당권이 있고 무뇌집단 조직과 종파있지만”, 이들은 정당정치적으로 거의 ‘Nothing to Lose'에 가깝다. 아니, 가장 불쌍한 건 그들이 아니다. 한평생 빈곤과 위험사회에 지쳐 있다 원인이 보수정치에 있음을 알고 민주노동당에 지지와 연대의식을 보냈던 이들 중, 그 당의 주류가 북조선의 핵실험을 감싸고 민주노총 상층 활동가에 휘둘린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실망하지 않고 단결에 응할 분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들이 “민주노동당 너마저!”를 외칠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그들이 그 다음에 선택할 대안과 정치세력의 여부인 것이다. 나의 꿈은 새로운 정당과 '서민의 집' 짓기 직업 정치인이나 활동가는 아니지만 시민으로서 나는 세가지 정치적 꿈을 갖고 있다. 첫 번째는 진정하고 진화된 진보정당이 건설되어 내가 죽은 뒤에라도 고놈이 스웨덴 사민당이나 프랑스 사회당 수준의 수권정당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그 당이 외곽에, 지역별 당원협의회의 주도로 (기존 ‘지구당’의 비효율성과 폐쇄성을 타개하고) 비정규노동자모임, 영세업자조합, 민생상담소, 교육·문화센터를 아우르는 ‘서민의 집’을 짓는 것이다. 셋째는 내가 일터에서 떨려나거나 나이가 들었을 때, 소년시절 들쳐봤던 월간지 <사회평론-길>을 복간하거나 고향(경북 구미)에서 진보적인 지역신문을 발행하는 것이다. 벌써 1년이 지난 일이다. 나는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을 기원했던 한 사람으로서, 비록 무명논객이지만 2007년 대선에서 개혁을 배신한 노무현을 응징한 뒤 정치칼럼 쓰기를 마감하겠다고, 바로 이 매체에서 다짐하였다. 진보정당의 승리가 제일의 목표지만, 안 되면 한나라당이 승리하더라도 노무현을 응징하겠다는 속내였다. 그러나 역시 이 매체에서 내가 표현했던 바, 이명박은 노무현 곱빼기이고(박근혜나 이회창이 대통령이 됐다면, 차라리 절반의 복수라도 이뤘을 것을!), 따라서 나는 완벽하게 패배하였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을 찍었고 이후로는 민주노동당을 희망으로 삼았던, 그러니까 또 하나의 패배자인 이재현은 2006년 벽두에 이렇게 말했었다.
“좌파와 달리 좌빠의 좋은 점은, 세계의 칼에 베여도 결코 죽지 않는다는 거다. 세계는 나를 바꾸지도 못하고 심지어 세계는 나를 해석하지도 못한다. 내 쪽이야말로 흐르는 강이므로 세계는 같은 나를 두 번 건널 수 없다는 식이다. 이거야말로 환멸과 상처를 십 수년 이상 견디고서 얻은 나름의 지론이다.”
나도, 아직 세계의 칼에 베여 죽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에게 건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예전의 언약을 철회하더라도 그것은 매한가지일 것이다. 나는 흐르는 강이므로 내 자신을 두 번 건널 수 없다. 강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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