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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 노회찬, 1981년에서 2007년까지
[김수민의 호모폴리티쿠스] '2004년 국면'의 두 얼굴, 신진보주의의 길
 
숨인씨   기사입력  2007/04/15 [15:06]
빠르게 개혁을 후퇴시킨 노무현 정부와 그를 인정하지 못하는 한나라당, 민주당의 대치로 얼룩진 2003년은 2004년의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2002년 심미선, 신효순 추모시위와 노무현신드롬을 추동한 시민사회가 민주개혁에는 무능하고 신자유주의 개혁에는 유능한 정부 앞에 어쩔 줄 몰라하다 ‘반(反)수구’의 기치 아래 촛불을 들고 몰려든 것이다.
 
그 곁에 독자적 진보노선을 걷던 민주노동당이 있었다. 진보개혁적 유권자들을 통째로 여권에 넘어가기 전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이 TV 토론에 등장해 “자살한” 야당들과 “지갑 주운” 여당을 맹공했다. 두달이 지나 치러진 총선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에게 각기 과반의석과 원내진출이라는 성적표를 띄워주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기각으로 대통령직에 복귀하면서 “경기부양을 하지 않고 구조개혁을 하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노동자 평균임금인 ‘월급 180만원’ 만을 받겠다고 선언하며 진보정당의 공백 속에 찌그러졌던 계획표를 하나둘씩 펴들었다.
 
그러나 개혁의 꽃놀이, 진보의 봄은 오래가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은 전혀 실용적이지 못한 실용주의 노선을 택해 개혁입법을 좌초시켰고 민주노동당은 소수정당의 한계와 민족주의적 잔재에 막혀 진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부여당과 민주노동당의 간극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졌고, 정부여당과 민주노동당을 함께 떠받히던 혁신적 여론의 바람도 사그라들었다. 급격하고 짧은 전진과 꾸준하고 기나긴 후퇴. 이것이 바로 ‘2004년 국면’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 국면 속에서, 노무현과 노회찬은 대립하고 있다.
 
1981년 조세소송에서 이름을 날리던 노무현 변호사는 ‘부림 사건’을 통해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같은 해 노회찬이라는 젊은이는 대학을 졸업하며 노동현장에 투신했다. 두사람은 각자 부산과 인천에서 1987년의 민주화를 맞이했으며 한사람은 노동자를 대변하는 변호사로, 다른 사람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모색하는 운동가로 성장해 있었다. 노무현의 선택은 보수정당 내의 진보노선이었다. 그는 김영삼의 제의를 받아들여 1988년 통일민주당의 국회의원이 되었다. 노회찬은 13대 대선에서 백기완 선거본부에 가담했다. 김영삼, 김대중 을 지지하는 노선을 거부하고 진보정당을 택한 것이다.
 
노무현, 노회찬은 90년대의 첫 일곱해동안 가시밭길을 걸었다. 노무현은 3당합당을 추종하지 않고 김영삼과 결별하였고 야당통합 논의를 거쳐 김대중과 함께하기를 선택했다. 92년 덕분에 그는 총선에서도 낙선하고 대선에서도 패배했다. 노회찬은 진보진영의 ‘신노선’을 주도하며 한국사회주의노동당, 한국노동당을 거쳐 민중당에 이르렀다. 92년 민중당은 총선에서 완패했고 대선에 닿기도 전에 와해되고 말았다. 두사람은 아주 잠깐 같은 당에 몸담은 적이 있다. 진보정치연합이 차선책으로 개혁신당에 합류하고 김대중을 따르지 않은 민주당이 개혁신당과 통합을 결정하면서부터였다. 물론 노회찬과 진정련계열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열을 이탈함으로써 이 동거는 오래가지 않았다.
 
노무현은 통합민주당 주류가 한나라당으로 들어갈 때 김대중과의 재결합을 택했다. 진정련의 노회찬은 민주노총의 권영길을 설득하여 드디어 ‘국민승리21’을 결성한다. 그리하여 1997년 두 사람, 두 노선의 본격적인 격돌이 시작된다. 노무현이 지지한 김대중 정부는 자발적 보수화와 IMF라는 외압 속에 신자유주의로 나아갔고, 반대로 진보진영의 독자세력화도 급물살을 타며 정부의 강력한 비판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노회찬보다는 노무현이 훨씬 컸던 시절이다. 2000년과 그 이듬해는 햇볕정책과 언론개혁이라는 두 리트머스 시험지를 한국사회에 던졌고 한나라당은 공공의 적이 되었다. ‘민주노동’당보다는 그냥 ‘민주’당의 파워가 더 클 수밖에. 노무현은 이인제와 정몽준을 차례로 제치고 이회창과 대적했다. 그 틈새를 권영길이 파고들 때, 노회찬은 선거를 진두지휘했다.
 
군부독재 치하에서 두 사람은 모두 민주주의자였다. 1987년 이후부터 둘의 선택은 확연히 갈렸지만 한동안 둘은 모두 진보적 정치인이었고 기를 미처 펴지 못하는 잠룡들이었다. 1997년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두고 하나는 실용적 접근을, 하나는 실용적 변혁을 추구하면서 사실상 타협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지만, 대다수의 유권자는 아마 그 둘을 구별하지 못했을 터이다. 2004년 직무정지 직후부터 반사이득을 입은 노무현. 개표 막바지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8번으로 마지막 금뱃지를 거머쥔 노회찬. 이 둘은 2004년 총선 최고의 인물이었다. 뿐인가. 두 정치인은 지방(부산경남) 출신에, 젊어서 노동현장을 겪었고, 탈권위형 정치인이며, ‘언변의 마술’을 구사하는 등 적지 않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두 정치인은 한미FTA, 삼성 문제와 재벌개혁, 대미외교, 개헌 등을 두고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를테면 한 TV 프로그램에서 최고의 토론강적으로 노무현을 꼽은 노회찬이 실제로 제 라이벌과 공식적으로 대면하게 될 때, 둘이 정담을 나눌 확률은 그 토론이 이뤄질 확률의 만분의 일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들에게 닮은 점은 도리어 대척점의 밑그림일 뿐이다. 그리고 나머지 차이점은 그 대척점을 더욱 뚜렷하게 칠할 것이다.
 
그보다 더 오른편에서, 한나라당은 자기 오른편의 절벽과 중간지대에서 보내주는 미증유의 지지 사이에서 흥분하며 자멸하는 중이다. 나는 확신한다. 한나라당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만치 심각한 상황이고, 너무 늦어서 손을 쓸 새가 없다. 한나라당은 대통령 씹는 국민스포츠에서 응원단장을 했을 뿐 초보적인 신경제버전도 없다. 안되면 땅파고, 불리하면 남북화해정책을 흉내내는 철부지 정당에게 미래는 없다. 더욱이 한미FTA를 ‘둘러쌀’ 형편도 되지 않는 한나라당은 남북과 북미 간의 교류에 싸움터의 복판에서 밀려날 것이다. 한나라당이라는 집안은 올 대선에서 거품으로 만들어진 후보를 내세워 일확천금을 노리다 가산을 탕진할지, 숨어있는 비교적 착실한 효자를 찾아내 골목을 내주는 대신 마당에서 버티며 가옥을 지킬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노무현은 그의 지지자들이 염원하는 만큼의 원대한 개혁을 이루지 못하겠지만, 결코 한나라당이 기도하는 만큼 망가지지도 않을 것이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그는 2007 대선의 가장 강력한 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중에서 나도는 '범한나라vs.범민주노동당' 구도론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이 구도에서 '범민주노동당'이 '범민주세력'으로 바뀌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판을 쥐고 흔드는 노무현 대통령을 직시해본다면, 대립의 축은 신자유주의로 짜여진다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박근혜, 범여권의 손학규, 정동영, 김근태는 결승에 오를 자격이 없다. 이들은 2007년 대선의 에피소드를 낳는 엑스트라로 끝날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반신자유주의'라는 슬로건만으로 진보진영의 활로가 뚫리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상대가 '신'자유주의라면 이쪽은 '신진보주의'라도 들고 나서야 한다. 그 신진보주의에 가장 가까운 카드는 누구인가.
 
결국 노회찬이다. 노무현에게 휘말리지 않는 역량을 가진, 노무현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카드이다. 진보정당의 '원천기술' 보유자, 정파 구도에 기대지 않는 진정한 '민주노동당파', 노동운동과 신사회운동의 용접공, 그가 노회찬이다. 거기서부터 이미 노회찬은 권영길, 심상정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노무현 이상의 도전정신으로 노무현의 보수우경화를 꺾으며 신진보주의의 보따리를 국민들이 보기 좋게 푸는 일이다.
 

추신: 민주노동당원이며 노회찬 후보를 지지하는 나는, 2002년도에 개혁국민정당 당원이었고 노무현의 지지자였음을 밝힌다.
* 글쓴이는 경북 구미시 시의회 의원(무소속)입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 최연소(27세) 기초의원에 당선돼 현재 시의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2002년 <대자보> 필진으로 참여한 이래 다년간 정치칼럼 등을 연재해 왔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대자보> 독자들과 만납니다.
기초의원으로서 풀뿌리 정치 현장에서의 경험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블로그 : http://kimsoomi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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