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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관오리들의 ‘마누라 탓’ 전성시대
[시론] 부정에 관대한 언론과 검찰도 공범, ‘사회적 검증시스템’ 확립해야
 
양문석   기사입력  2005/03/22 [14:28]
탐관오리(貪官汚吏), ‘탐욕(貪慾)이 많고 행실이 깨끗하지 못한 벼슬아치’라고 국어사전은 규정한다. 또 다시 벼슬아치 ‘한 분’이 사직했다. 인권위원회 최영도 위원장이 최근 불거진 모든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고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부인의 위장전입으로 투기의혹을 받자 거센 사퇴압력 여론에 밀려 결국 사퇴를 결심한 것 같다.
 
▲토지정의시민연대 회원이 이헌재 장관의 부동산 투기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대자보
우리나라 ‘높은 벼슬아치’들은 문제가 터지면 대부분 ‘마누라 탓’이다. 전 교육부총리 이기준씨, 그는 자녀 병역비리 의혹 및 남편의 판공비를 ‘마누라’가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주저앉았다. 전 경제부총리 이헌재씨, 그는 ‘마누라’가 위장전입을 통해 논과 밭을 사들여서, 불과 4년 만에 65억 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올렸다가 낙마했다.
 
마누라 탓만 있는 게 아니다. 비서 장모 심지어 시어머니 탓도 있다. 이화여대총장을 거쳐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 서리까지 갔던 장상씨는 아들의 미국국적 취득문제, 부동산 투기 및 위장전입문제, 학력 허위 표기 등을 ‘시어머니와 비서’에게 책임을 전가하다가 쓴 잔을 마셨다. 남편 탓도 아니고 치사하게 ‘시어머니 탓’을 한 최초의 벼슬아치였다. 
 
또 매일경제신문사장을 하다가 국무총리 서리까지 갔던 장대환씨는 “땅을 장모 등으로부터 매매 형태를 빌어 사실상 증여 받고도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며 부동산 투기 의혹과 증여세법 위반 의혹을 받자 “세금 문제에 대해 위법사항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매매 형태여서 증여세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말을 바꾸더니 마지막에는 아예 “장모가 준 것이어서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었다”고 답했다. ‘마누라 탓’을 넘어 ‘장모 탓’을 한 최초의 벼슬아치였다.  
 
왜 마누라 탓 장모 탓 시어미 탓을 하는가. 그렇게 하면 자신의 죄가 사해지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이런 자들이 한국의 총리를 꿈꾸며 ‘서리’를 역임한 자들이고 부총리를 한 사람들이다. 탈법불법에 책임전가까지 자유자재로 ‘남의 탓’을 구사하는 자들이 한국의 최근 국무총리서리들이요 부총리들이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들이대기가  민망하다. 최소한의 상식적 삶조차도 기대하기 힘든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무슨 도덕적 의무를 요구하겠는가. 그래서 이런 자들을  ‘탐관오리’라고 규정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런 탐관오리들이 끊임없이 고위직에 오르고 고위직을 노린다. 단지 언론들이 주장하는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만으로 해결불능이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후속조치다. 이들은  관직삭탈만 되었지, 이후 이들이 탐관오리 짓을 했는지 아니면 억울한 지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도 해 주지 않는다. 검찰도 언론도.
 
심지어 이헌재 파동 때 함께 문제인사로 거론되었던 장지동 땅을 팔아 11억의 시세차익을 누렸던 김세호 건설부 차관, 구미 땅 팔아 11억원 시세차익을 기록한 한준호 한국전력공사 사장 등에 대한 후속보도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억울하면 이들이 명예훼손을 걸어야 할 것이고, 범죄행위가 있었다면 관직삭탁은 물론이요 사법처리를 받아하는데도 뒷이야기가 없다. 
 
▲언론학 박사, EBS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언론개혁을 위해서라면 전투적 글쓰기도 마다않는 양문석 정책위원.     ©대자보
소낙비만 피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에서 ‘마누라 탓, 시어미 탓, 장모 탓’을 하고 버티면 성공이고 아니면 그만인 한국사회의 여론형성과정, 이들은 냄비근성의 한국언론을 정확히 꿰 뚫어 보고 있는 자들이다. 또한 ‘탐관오리에게 관대한 검찰’이 있기에 ‘남의 탓’하며 버텨보는 것도 이제는 ‘전통’이다.
 
검찰은 철저한 사후조사를 통해서 명예회복을 시켜주거나 처벌을 해야 하며, 언론은 사후취재를 통해서 이들이 탐관오리인지 억울한 희생양인지를 가려주어야 한다. 이것이 ‘남의 탓’만 하는 탐관오리에게 한국은 더 이상 천국이 아니라 지옥임을 가르쳐 주는 ‘사회적 검증시스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논설위원
 
* 본문은 경향신문 <언바세바>에도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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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3/22 [14:2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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