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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노무현정부는 나의 정부가 아니다
국민을 죽음으로 몰고간 참여정부는 파병을 철회하라
 
임흥재   기사입력  2004/07/04 [18:11]
국민의 참여로 탄생하였고 국민과 함께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참여정부’라는 이름을 내건 노무현 정권의 사기극은 김선일님의 죽음이라는 결과로 그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권의 공신이기도 한 강준만의 저서 중 하나가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이다. 물론 그 책의 내용은 노무현이 사기꾼이 아니라는 역설적 결론으로 국민경선 당시부터 노무현을 국민 대중 앞에 내일의 리더로 각인시키는데 적지 않게 공헌하였으나,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지 불과 일년 4개월여 만에 진짜 사기극임을 오늘의 충격적인 사건은 보여준다.

누구를 위한 전쟁이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 전쟁인가? 이라크 전쟁의 명분으로 부시의 미국이 내세운 것이 대량살상무기의 존재와 이로 인한 미래의 위협, 라덴을 비롯한 테러리즘을 후세인이 지원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가짜 명분은 이미 새빨간 거짓말이며 부시행정부의 네오콘들이 저지른 이라크인에 대한 학살에 지나지 않으며 세계지배의 독과점적 지배를 향한 부시의 야욕에서 저질러진 추악한 범죄라는 사실은 만천하에 알려진 바 있다.

있다던 대량살상무기와 생화학무기는 단 일점도 발견되지 않았고 테러의 배후에 후세인이 있었다는 미국의 주장은 한 점 입증된 바 없다. 내 비록 보지 못하였으나 외신에 의하면, 올해 칸에서 황금종려상(대상)을 받은 마이클 무어의 화제작 <화씨/911>은 오히려 부시가문과 후세인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더러운 혐의가 숨어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아프간에서, 이라크에서 무참한 살육을 저지른 전쟁광들인 현 미공화당의 배후에는 보수적 개신교도 집단과 이 교조적 윤리로 무장한 네오콘들이 있다. 그들의 노림수는 오직 하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미국의 세계를 향한 지배권력의 구축이다.

우리의 파병이 어떤 명분을 가지고 있는가? 국민의 안전과 행복추구권은 고사하고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와 세력들이 그 전쟁의 기만성과 허구성을 인식하고, 파병하였던 병력을 철수하는 마당에 추가 파병을 고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국민사기극이다. 한미동맹의 중요성, 정말 몰라서 이런 낯 뜨거운 명분으로 우리의 젊은이들을 처참한 학살과 보복의 현장으로 내몬단 말인가. 언제 한미동맹이 우리의 주권과 안전을 위하여 존재하고 기능한 적이 있는가. 냉전시대의 대공산봉쇄전략으로서의 한반도의 진주와 주둔, 대북한억지력이기보다는 실제로 소비에트와 중공(당시 표현)의 남진과 남하를 막기 위한 억지력으로서의 한미동맹이 진실이다.

헌정 이후 줄곧 용인하고 후원해준 독재세력과 군사독재세력에 대한 미국의 속내는, 바로 친미정권의 수립에 의한 대리지배전략의 일환일 뿐이지 않았던가. 베트남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칠레를 비롯한 남미에서, 아프리카에서 미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의 개들을 조련하고 후원하며 세계를 자신들의 것으로 야금야금 먹어치운 것이 아닌가. 노무현 스스로 젊은 리더의 모범으로 내세운 영국의 토니블레어와 그의 노동당이 부시의 푸들로 꼬랑지를 흔들어대니, 이제 노무현은 우리 젊은이들의 목숨을 진상하며 부시의 진돗개가 되고자 함인가.

테러를 억제하는 전쟁이 아니라 테러를 조장하고 확산시키는 전쟁. 인류가 창조한 문명의 신성함과 그 문명과 문화의 다양성을 깡그리 부정하며 일방의 폭력만이 난무하는 슬픈 열사의 땅. 타협과 존중은 전무하고 굴욕과 자복만을 강요하는, 아메리카 미친 허리케인이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 무섭게 불어대는 죽음과 고통의 사막.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모래 밑을 흐르는 검은 기름을 향한 더러운 야욕이 빚어낸 검은 전쟁의 현장, 이라크. 거기에 왜 우리가 총을 들고 가야하며 우리의 경제기적을 일구게 해준 친구들을 향하여 총부리를 겨누어야 한단 말인가.

어떤 구실과 거짓 수사로 우리의 양심을 감출 수도 감추어서도 안 된다. 파병은 철회 되어야 하고 잘못된 인식은 바로 잡아져야 한다. 국가를 향한 개인의 충성과 맹서는 그것이 나의 삶과 행복 그리고 그 국가라는 울안에서 내가 존재의 이유를 실현하고, 함께 사는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여 그 울타리를 치고 지키며 그 안에 사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국민의 군대는 우리의 생명과 우리 스스로 선택한 공화의 나라를 지키는 것에만 무력을 사용하도록, 그 목적으로만 무력을 사용하기 위하여, 우리가 군인이 되기로 약속한 의무다. 

그 선량한 국민들, 내가 국가의 일원이기에 자부심을 느끼며 개인의 행복을 일정부분 포기한 위대한 개인의 목숨을 담보로 한 파병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왜 우리의 군대가 광기의 미국을 위해 총을 들고 이라크에 가야한단 말인가. 탄핵을 받아야 한다면 이제 탄핵을 받아야 한다. 파병동의안에 굴복한 모든 국회의원들은 우리의 젊은이를 대신하여 그 열사와 죽음의 그 땅, 이라크로 떠나라. 거기에서 정치판에서 선량한 국민 수십만 명보다 더 센 말발을 가지고,  대다수 서민들이 누린 부와 명예, 정치인으로서의 혜택보다 훨씬 우월하게 받은 수혜의 양에 걸맞게 재건과 평화를 위해 왔노라고 외쳐보라. 그야말로 광야를 달리는 초인처럼 그 뜨거운 광야의 진지에서 양키와 정권의 이익을 위하여 외쳐보란 말이다.

파병은 역사의 범죄다. 먹고살기 급하고 고단하여 베트남의 정글에서 죽어간 젊은이는 얼마며, 그 곳에서 전쟁의 광기와 불안으로 우리의 선배들이 저지른 부끄러운 죄상은 어떤가. 아비 없이 자란 혼혈아 라이 따이한이 겪은 수모의 주범은 누구이며 고엽제의 피해로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참전용사들의 고난과 한은 누가 갚아줄 수 있는 것인가.

김선일은 죽었다. 전문대학을 마치고 거의 10년이 되어서야 고학으로 편입하여 올해서야 학부를 마친, 동시통역사가 되기 위한 학비를 벌기위해 죽음의 위험을 애써 받아들여야 했던, 우리의 아들 우리의 동생 우리의 젊은이가 죽었다. 죽임을 당했다. 목숨을 빼앗긴 이유는 단지 노무현대통령 정부가 이라크에 파병을 하겠다는 결정으로, 아무 이유 없이 열사의 이국에서 죽임을 당했다. 이라크 무장단체 내부의 불협화음이니 뭐니 하며 일방적으로 이 정권을 욕한다고 달려들 미친 인간들을 향해 내 미리 경고하노니 “네 자식 네 형제가 가서 죽어봐!”. 결코 이라크 무장세력 테러집단을 옹호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정부의 파병에 어떠한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노무현 정권은, 참여 정부는 나의 정부가 아니요 나의 정권이 아니다. 더럽고 추악한 미국의 야욕과 음모만이 신기루처럼 떠다니는 열사의 땅 이라크. 일방의 폭력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망가지고 찢어지며 분루를 삼키어야 하는 학살과 유형의 땅에서 채 피지도 못하고 죽어간,

故 김선일님의 명복을 삼가 머리 조아려 빕니다.

파병을 막지 못하고 이런 울분으로 나의 부끄러움을 감추고 있는 이목지기가 올립니다.

* 본 기사는 지난 6월 23일 진보누리에도 송고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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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7/04 [18:1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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