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간에 서울대 신입생들의 학력저하를 두고 말들이 많다. 특히 조선, 중앙 등의 일부 언론들은 이를 평준화 교육시스템의 체질적 병폐로 보고, 하루빨리 경쟁적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으면 국가 장래의 기틀이 흔들리기라도 할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서울대에 재학중인 필자는 매년 되풀이되는 일부 언론의 이런 논조에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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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철폐는 외면하고, 평준화 깍아내리는 것에는 광분하는 수구언론들-서울대 정문 사진 ©브레이크뉴스 |
우선 서울대 신입생들의 학력이 정말 매년 저하되고 있느냐는 의문이 든다. 일부 언론들이 문제 삼고 있는 영어?한문 시험을 보자. 일단 시험을 치르는 신입생들에게 잘 봐야겠다는 유인이 얼마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이미 고난의 수험생활 끝에 서울대에 안착했다고 생각할 그들에게 TEPS 정도는 솔직히 큰 유인이 없다. 몇 년 전 필자가 입학하던 시기에도 비슷한 시험이 있었고, 동기들 태반은 응시 자체를 않거나, 반(伴)건성으로 응시했었다. 한문 시험에서 일어났다고 하는 해프닝도 어쩌면 그간의 입시압박에 대한 장난스러운 제스츄어로 웃어넘길 법도 한데, 일부 언론에 의해 ‘웃지 못 할’ 사건으로 치부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언론이 타깃으로 삼은 시험들을 제외하고 봤을 때 실제 신입생들의 학력은 이전에 비해 어떨까. 딱 부러지게 가타부타 말하기는 어렵지만, 학력이라는 잣대를 고정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잘못됐음은 분명하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 요구되는 교육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는데, 과거와 똑같은 기준으로만 판단하려는 시도 자체가 사실 우스운 것 아닌가. 인터넷 정보의 활용능력이 떨어지는 기성세대를 저학력이라고 비웃을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대체로 7차 교육과정을 밟은 학생들이 학력 저하로 우려를 사곤 했는데, 중학교 2학년 학생을 과외해본 경험으로는 결코 한자, 영어에서 기존에 비해 실력이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좋은 여건에 놓인 탓인지, 유창한 영어발음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리고 이 세대들이 지금 대학에 들어와 있다. 이 세대들의 입학시기가 서울대 광역화와 맞물리는 바람에 사실 지금의 02, 03학번 학생들은 새내기 때부터 학점 올리기에 여념이 없다. 군 제대 후 복학한 학생들은 이전 같으면 베이스를 깔고 있을 저학년들이 오히려 더 열성적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적지 않게 당황하곤 했었다. 심지어 이들과 같이 졸업했다가는 취업에 불리해진다며 졸업을 서두르는 동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정리하자면, 매년 신입생들의 학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것은 그릇된 확대해석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올해 해외유수대학에 입학한 고교졸업생들이 전년에 비해 늘지 않았던가.
왜 일부 언론은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평준화’를 깎아내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일까. 특히 올해의 경우에는 신문 사설에까지 실을 정도로 비중 있게 다루는 까닭은 무엇인가. 필자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지 일년 만에 여러모로 수세에 몰리자, 이참에 더 몰아세우겠다는 보수세력의 저의가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바라는 비평준화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고등학교별 서열이 매겨지면, 경쟁이 가열되고 우수한 학생들은 상위 서열의 학교에 가게 된다. 우수하지 못한 학생들은 우수해지려고 애쓸 것이고, 중하위 서열의 학교들도 상위 서열에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전반적인 학력의 수준이 올라갈 것이다.’
결국 능력별로 분리를 시키고, 유효경쟁을 도발해 질적 향상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그럴듯한 논리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들이 놓치고 있는 맹점이 있다. 지금의 ‘평준화 시스템’하에 있는 학생들은 경쟁을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여러 개의 과외를 하고 있는 한 후배는 가끔 ‘요즘 애들 가엾다. 나 때도 저렇게까지 공부하는 애들은 없었는데...’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필자가 가르쳤던 고 1 학생만 봐도 그렇다. 학교, 학원,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하루일과가 새벽 6시부터 새벽 2시까지였다. 더 이상 내몰릴 곳이 없을 정도로 요즘 청소년들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일부 언론들이 해마다 학력이 저하되고 있다고 운운하지만, 실제로 해마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이것이 평준화 시스템의 오류 때문인가. 정확히 아니다. 잘못된 입시제도와 왜곡된 교육문화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지, 삼십 년이나 지속되어 온 ‘평준화’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위의 시나리오대로 진행된다 해도 경쟁력이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 삐뚤어진 교육관으로 인해 엄청난 사교육비 증대만 야기할 공산이 크다.
물론 지금의 ‘평준화 시스템’에도 부족한 부분은 있다. 하지만 그 부족한 부분이 제도 자체를 바꿔야 할 만큼 심각하지 않고, 충분히 제도 안에서 채워나갈 수 있다고 본다. 정작 공교육이 무너지고, 특히 강남의 사교육비가 전국 어디에서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은 문제나 교육수급의 지역격차가 갈수록 심화되는 등 본질적으로 접근해야할 사안들은 다 제쳐두고, 유독 ‘평준화’에만 독기를 내뿜고 달려드는 일부 보수 언론들의 꿍꿍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평준화 30년 동안 무슨 한이라도 서려 있는 건가.
* 본문은 본지 홍성관기자가 한겨레신문 1월 5일자 '왜냐면'에 기고한 기사의 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