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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吸血)의 정치인, 매혈(賣血)의 경제인
깨끗한 정치인을 키우는 자발적 ‘헌혈’의 시대를 열자
 
권태윤   기사입력  2003/12/16 [10:23]

요즘 우리 앞에는 때 아닌 공포영화가 펼쳐지고 있다. 주인공들은 흡혈귀, 서양에서는 뱀파이어로 불리는 것들이다.

▲ 스타렉스로 운반한 정치자금.    
우리 앞에 드러나고 있는 정치권의 검은 돈 끌어 모으기는 마치 흉악한 앞니를 드러내고 피를 빠는 흡혈귀, 그 흡혈귀에 스스로 굴복해 살기위해 일정량의 피를 헌납하는 드라큘라 백작이라는 공포영화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지금 정치권의 추악하고 가공할 정도의 ‘흡혈행위’에 대해 전율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 정치권과 기업이 어둡고 음습한 ‘암흑의 거래’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엄청난 현찰이 ‘차떼기’로 배달되는 모습에 차마 할 말을 잃고 있다. 어떤 이는 우리가 만 원짜리 현찰을 속칭 ‘배추이파리’로 불렀기 때문에 정치인들도 그것을 배추로 알고 차떼기를 했을 거란 우스개 소리도 한다.

하루 12시간을 일해 일당 2만원을 받는 서러운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들은 지금 너무 슬프다. 밤마다 피를 빨아야만 생명을 유지하는 흡혈귀로 살아온 우리 정치권의 본모습에 더 이상 살맛을 잃고 있다. 때만 되면 관 속에서 걸어 나와 어둡고 음습한 거리에서 ‘일용할 양식’을 찾아 붉은 눈을 번득이는 흡혈귀의 습성을 가진 정치권이 아직도 변명과 감추기에 골몰하는 모습에 역겨움을 느낀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른 데는 그동안 우리 검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도 큰 원인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웨슬리 스나입스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화 <블레이드>에서처럼 뱀파이어를 소탕해야 할 ‘우리들의 블레이드’였어야 할 검찰이 그동안 제대로만 활동했더라도 오늘날과 같은 정치권의 노골적이고 과감한 ‘흡혈행위’는 그나마 줄어들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그래서 더욱 크다.

모기는 10~20m 거리에서도 탐지할 수 있는 예민한 후각을 통해 동물의 몸에서 발산되는 냄새와 이산화탄소를 탐지하고, 일단 목표물을 발견하면 혈관을 찾아 톱날로 피부를 상하로 쓸면서 뚫고 들어가 대롱 모양의 빨대처럼 생긴 혀로 피를 빤다고 한다. 돈 냄새를 맡는 후각이 남다른 우리 정치인들, 그리고 일단 냄새를 맡으면 달라붙어 돈을 뜯어내는 그들을 ‘흡혈모기’라 한들 지나친 것일까. 오늘 어둠에서 양지로 서서히 끌려나오는 우리 정치권의 뒷거래 모습은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나 모기의 모습과 행태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결국 ‘흡혈모기떼’의 서식지였던 셈이다.

16세기에 루마니아를 다녀온 여행자들은 이상야릇하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전했다고 한다. 그곳에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괴물, 밤만 되면 소굴을 나와서 사람의 피로 잔치를 벌이는 괴물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정치인들은 때만 되면 국민의 피로 그들만의 잔치를 벌인 괴물들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봉사하겠다는 국민의 피를 빨았다. 그들이 주고받은 피는 과연 누구의 피였던가?

기업주가 공장에서 만들어낸 인공 혈액이 결코 아니다. 서로가 국민을 위한다며 말해놓곤 등 뒤에서는 오히려 국민의 피를 빠는 이 더럽고 잔인한 흡혈의 시대를 이제는 정말 끝내야 한다. 기업주가 정치인에게 팔아먹은 피가 기업주 자신의 피인가? 수많은 노동자가 땀 흘려 생산한 노동의 피를 허락도 없이 갖다 바친 행위는 헌혈이 아니라 ‘더러운 매혈’이다. 결국 그 피를 생산자의 허락도 없이 멋대로 팔아먹은 기업주 역시 불법적 매혈에 대해 엄중 처벌을 받아야만 한다.

일부 루마니아 사람들은 무덤 근처에 있는 구멍에 펄펄 끓는 물 한 대야를 부으면 흡혈귀를 없애 버릴 수 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백악(chalk)과 성수를 뿌리면 흡혈귀가 맥을 못 추게 된다고 주장한다. 더 직접적인 방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낮에 무덤 속에 누워 있는 흡혈귀의 심장에 나무나 쇠로 된 말뚝을 박는 방법을 택하며,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덤 파는 삽으로 흡혈귀의 목을 잘라 버리고 입에 마늘을 채워 넣는다고 한다. 특히 햇빛은 흡혈귀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무기가 된다고 루마니아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흡혈귀에게 마늘을 먹이고 쇠말뚝을 꽂아 ‘어둠의 흡혈시대’를 끝내야 한다. 그 역할의 중심에는 블레이드인 검찰이 있겠지만, 그들에게만 맡겨두어서는 확실한 목표를 거둘 수 없다. 과거 이탈리아에서 그랬듯 검찰의 공정하고 강력한 수사를 뒷받침 할 수 있는 ‘국민의 힘’이 필요하다. 더러운 매혈을 하지 않아도 기업이 정당하게 기업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고, 정치인들이 어두운 지하에서 국민들에게서 뽑은 피를 은밀하게 거래하지 않고서도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는 풍토도 조성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스스로 거듭나야 하겠지만, 건강하고 깨끗한 정치가 가능할 수 있도록, 일 잘하는 정치인의 활동력을 증대시켜주기 위한 자발적 ‘헌혈’도 매우 중요하다. 물론 그에 앞선 작업으로 내년 총선에서 입가에 피를 묻힌 입으로 깨끗한 정치를 외치는 추악한 흡혈귀들에게 쇠말뚝을 꽂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추악한 흡혈귀들을 없애버리지 않고서는 아예 깨끗한 정치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 필자는 '좋은 글을 통해 우리를 생각하는 PEN21사이트( http://www.pen21.com/ ) 운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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