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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 양심지킨 순정을 평가해달라”
김근태의원, 양심고백결심공판 재판부항의, 선고는 12월5일
 
취재부   기사입력  2003/11/14 [16:27]

지난해 민주당 대통령후보 국민경선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 양심고백으로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벌금500만원 추징금 2000만원을 선고받은 열린우리당 김근태 대표에 대한 항소심 결심 공판이 14일 오전 11시 서울지법 형사항소7부(재판장 양인석 부장판사) 심리로 서울고등법원(가동 423호)에서 열렸다.

▲항소심 결심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가는 김근태 의원     ©김근태의원홈페이지
김 대표 변호인단은 지난 8월 14일 선고공판에서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실형 전과를 이유로 선고유예불가 판정을 내린 재판부의 논리가 부당하다며 항소를 제기한 바 있다. 변호인단은 최후진술을 통해 “당시 권노갑씨에게서 똑같이 2천만원을 받고도 불기소 처분된 정동영 의원과의 형평문제도 감안해야 한다”며 검찰을 비판했다. 또한 “피고인이 회계책임자와 공모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나 공소기각을 요청했다..

한편 김 대표는 법정진술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재판정에 선 모습은 정치자금 사건과 관련된 주인공으로 주로 비쳐졌다”며 “정치인이 자꾸 재판정에 서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있는가 솔직히 고민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럼에도 “오늘 이 자리에 또 다시 서기를 자청한 것은 더 이상 '사회적 위선'의 강자를 가리는 시합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더러운 방법으로 성공한 사람보다 덜 성공했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살아온 사람이 아름다워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재판부에 대해서도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정치자금법이 갖고 있는 모순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법 체계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던 재판부의 고민”을 이해하지만 “재판부가 현실모순을 극복하는 주체로 호흡하기보다는 단순하게 법을 해석하고 그에 기초해서 계량적인 판단을 하는 객체로 머물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덧붙여 “(정치자금 양심선언이)사회적 정의실현과 일치해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과거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제가 받은 실형으로 인해서 이를 판결에 반영할 수 없다고 한 부분”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선처를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며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한국 정치의 속물주의와 야만성을 근절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지불했던 순정을 일정하게 평가해 줄 것”으로 요청하며 “그 점만 지켜준다면 저는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의연하게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항소심 선고공판은 12월 5일 예정되어 있다.
아래는 열린우리당 김근태 대표의 법정진술 전문이다.


▲김근태 의원     ©김근태의원홈페이지
또 다시 법정에 섰습니다. 정치인이 자꾸 재판정에 서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있는가? 솔직히 고민했습니다. 이 정도에서 그치면 어떻겠느냐는 권유도 받았습니다. 현실정치인 김근태가 그만 상처받았으면 하는 분들의 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법정에 설 때마다 입게 되는 상처를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미지가 내용을 압도하는 미디어 시대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남영동의 고문기술자 이근안씨 문제가 한창 언론에 오르내릴 무렵이었습니다. 택시를 탔는데, 어떤 아가씨가 합승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정치에 입문하기 전인데, 뒷자리에서 자꾸 넘겨다 보더니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 아저씨 알아요. 아저씨, 이근안씨 맞죠?" 남들은 웃어넘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습니다.
저와 이근안씨가 같이 고문의 주인공인 것은 맞지만 처해있는 상황은 절대로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문전문가에 의해 처참하게 일그러진 육체를 이끌고 견뎌야 했던 죽음보다 못한 야수의 시간 속에 놓여 있던 저의 절망과 역사적 진실이 그 아가씨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중요하지 않은 일일 수 있습니까?

저는 이 사건, 정치자금에 대한 양심고백에서 다시 한번 그런 비애를 맛보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이 일로 정치판에서 왕따당하고 대통령후보경선에서 중도사퇴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국민 모두가 아는 비밀'을 누설한 죄로 법정에 섰고,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은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김근태'라고 비웃었고, 심지어는 우스갯감이라는 모멸도 당했습니다.
물론 '순진한 김근태'가 아니라 '용기있는 김근태'라고 격려해준 분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재판정에 선 저의 모습은 정치자금 사건과 관련된 주인공으로 주로 비춰졌습니다. 이것이 정치활동을 얼마나 어렵게 하는지 알지만 저는 또 다시 이렇게 법정에 섰습니다.
 
먼저, 1심 재판부의 고민은 이해합니다. 
현재의 정치자금법이 갖고 있는 모순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법 체계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던 재판부의 고민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재판부가 현실모순을 극복하는 주체로 호흡하기보다는 단순하게 법을 해석하고 그에 기초해서 계량적인 판단을 하는 객체로 머물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아쉽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가치의 이중성'과 '사회적 위선'에 맞서 싸우려고 했던 저의 행동이 사회적 정의실현과 일치해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과거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제가 받은 실형으로 인해서 이를 판결에 반영할 수 없다고 한 부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지난 65년부터 95년까지 30년 세월동안 26차례 체포되었고, 5년 6개월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제가 지불한 대가를 내세워 저는 조금의 특혜도 받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 어떠한 실정법으로도 이것이 사회적 불이익의 사유가 되는 것을 묵과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1심재판의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핵심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천박한 결과지상주의가 오늘날 우리 사회를 야만의 진흙탕 속에 몰아넣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무슨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장미의 정원'을 선점하기만 하면 되는 후안무치한 결과지상주의를 벗어나야만 합니다. 
'무엇을 이루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살았느냐'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가치지향성의 사회로 바뀌어야 합니다. 
더러운 방법으로 성공한 사람보다 덜 성공했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살아온 사람이 아름다워지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재판장님!

저는 1심 재판에서 '가치의 이중성'과 '사회적 위선'을 극복하지 않는 한 우리 정치가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원칙과 상식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하면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추해지도록 만드는 야만이 지배하는 현실에 맞서 싸우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의 분노와 환멸이 극에 달했지만 우리의 정치현실은 여전히 야만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엄청난 돈을, 그것도 현금으로,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어두컴컴한 지하주차장에서 마치 갱스터 영화에 출연하는 조폭처럼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했습니다. 
아니 강탈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한 푼도 받지 않았다. 
그 쪽 사람은 알지도 못한다고 했다가 검찰에서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들이대자 시인했습니다. 
하지만 그 용처를 밝힐 수 없다고 말합니다. 
책임을 통감한다는 사람들도 나타났지만 그것이 진심이 아닌 정치적 언술일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국민이 누가 있겠습니까.

저는 이런 모습을 보며 절망을 느낍니다. 
국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지금의 사태를 일종의 게임으로 보는 정치권의 집단적 최면의식입니다. 이렇게 추악한 모습에 대한 반성은커녕 공범의식에 사로잡혀 집단이라는 패거리 보호막을 형성하여 서로를 방어하면서 감싸려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권을 잡았더라면 그렇지 않았을 것인데 하는 '자조'와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오기'가 뭉쳐 '집단적 주술'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지렛대 삼아 나를 보호하겠다는 진흙탕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사건 관련자들은 그것을 범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집단을 위해 일하다가 억울하게 당한 희생양으로 자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끓어오르고 있는 국민의 분노에도 아랑곳없이 '왜 우리만 뒤지느냐'고 화를 내며 수사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마치 핑퐁게임을 하듯 이리 넘기고 저리 넘기고 있습니다. 법을 만드는 사람이 법을 어기고 있고, 법을 집행하는 기관을 안면몰수하고 물 먹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야만을 넘어선 폭력입니다.

하지만 저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어두운 동굴에 빛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진실을 알고자하는 국민들의 의지입니다. 야만과 폭력의 시대를 끝내고 가치 지향성이 살아있는 사회로 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습니다. 희망은 진실 위에서만 꽃필 것입니다.   국민들은 진실을 원합니다.

여러 차례 밝혔듯이 저는 국민들과 함께 이중성과 위선을 강요하는 잘못된 정치관행의 진흙탕으로부터 무엇보다 저 자신을 구출하고, 국민 앞에 당당하게 서기 위해 행동하고 투쟁할 것입니다.

왜 꼭 그래야만 하는가? 
그에 대한 답은 이렇습니다. 
21세기가 시작된 이후 인류는 새로운 질서 찾기에 분주합니다. 지난 세기와는 다른 형태의 평화, 지난 세기와는 다른 형태의 번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지구촌은 지금 과거의 잔재들과 힘 겨루기를 하느라 편할 날이 없습니다. 한반도는 여기에 명운이 걸려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환경이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미래의 인류를 이끌어갈 새로운 가치를 모색해야 할 사람들이 정반대의 가치관을 가지고 앞길을 막고 있습니다.

재판장님!
치료비가 없어 응급실에 누운 자식의 입에서 산소호흡기를 떼어낸 부모가 구속되고, 손해배상소송과 가압류를 버텨낼 재간이 없어서 노동자들이 자기 목숨을 내놓고 있는데도, 천문학적인 액수의 불법정치자금을 꿀꺽 삼킨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미안한 표정조차 없이 '나만 그랬느냐'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부끄러움조차 외면해 버리고 나서 무슨 내용을 가지고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자고 설득해갈 수 있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또 다시 서기를 자청한 것은 더 이상 '사회적 위선'의 강자를 가리는 시합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 바삐 사회의 룰을 바꿔야 합니다. 정당하지 않더라도 세력만 있으면 된다는 패거리주의와 얄팍한 이미지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기회주의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거기에 걸 수가 없습니다.

재판장님, 그리고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다시 한번 밝히지만 본 법정에서 제가 호소하고자 하는 것은 선처가 아닙니다. 제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한국 정치의 속물주의와 야만성을 근절시키는 것입니다. 김구선생은 이미 60년 전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나라는 부자 나라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수준이 높은 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사회가 이런 진흙탕에서 헤어나고, 정체와 답보상태에서 벗어나 또 한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화적으로 높아져야만 합니다.

가치지향성이 살아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이루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이루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더 중요하게 평가되는 사회여야 합니다.

재판장님!
간절히 원하건대, 제가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지불했던 순정을 일정하게 평가해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그 점만 지켜준다면 저는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의연하게 책임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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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11/14 [16:2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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