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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울지말고 할 일을 해주세요
[하재근 칼럼] 강남부자, 친재벌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의 일 해야
 
하재근   기사입력  2008/12/05 [19:15]
이명박 대통령이 4일 새벽 경제난으로 고통 받는 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자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찾았다고 한다. 세계일보는 사설을 통해 그때의 광경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상인들은 눈물을 쏟아냈다. 나이도 부끄럼도 잊었다. 시장엔 "돈을 못 벌어서 밥도 못 먹게 됐다"는 장탄식이 넘쳐났다. 무시래기 파는 할머니는 대통령 팔에 안겨 "대통령이 잘 돼야 할 텐데…"라며 한참을 울먹였다. 농민들은 하나같이 "먹고살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이 모든 눈물과 한숨, 호소의 장면은 이명박 대통령 눈앞에서 원색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어제 새벽 서울 가락시장은 눈물과 통곡의 저자였다.‘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배추 500포기를 샀다고 한다. 특히 대통령 팔을 잡고 울음을 터뜨린 할머니에게는 20년 동안 쓰던 목도리를 벗어주며 시래기 네 묶음을 사줬다고 한다. 그 할머니는 먹고 살기 힘들다며 울면서도 대통령을 위한 기도를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상인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한 후 자신도 눈물이 난다며, 할머니를 위해 내가 기도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4일 새벽 송파구 가락농수산물 시장을 방문, 시장상인들과 '깜짝' 만남을 가졌다.     © 청와대

- 화가 나는 이유 -  

이 훈훈한 기사를 보고 화가 났다. 지금 뭐하는 건가? 대통령이 눈물 흘리고 기도한다고 할머니의 삶이 손톱만큼이라도 나아지나? 눈물을 바다만큼 흘리고 기도를 우주가 끝날 때까지 해도 할머니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지금 현재는 민생파탄 상황이다. 민생파탄이라 함은 국민 삶에 대통령 눈물과 기도가 부족한 사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국민이 먹고살기 힘든 상황, 상대적 소득-상대적 자산이 부자들에 비해 자꾸만 줄어드는 상황, 노후가 불안한 상황, 자식교육이 힘든 상황, 미래 안정성이 사라진 상황이 민생파탄이다.  

대통령은 이 상황만 없애주면 된다. 울지 않아도 된다. 기도 안 해도 된다. 울 시간 있으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진력해야 한다. 대통령의 눈물은 홍보용 이벤트는 될지 몰라도 국민에게 아무런 실질적 이익을 주지 못한다.  

물론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신뢰가 형성된 상황이라면 눈물도 보탬이 된다. 이것은 대통령이 국민의 고통을 헤아리고 있다는 ‘신호’다. 이런 신호를 받은 국민은 국가를 더욱 신뢰하게 되어 리더십이 강화된다. 그러면 시장불안전성이 약화되고, 경제위기를 헤쳐 나갈 응집력이 생겨난다.  

하지만 국민이 이 ‘눈물’로 인해 화가 나거나, 더욱 냉소하게 되면 역효과다. 눈물 안 흘린 것만 못하게 된다. 짜증을 유발해 국가적 불안전성만 증대될 뿐이다. 이런 상황이 예상된다면 바깥에 나와서 눈물 흘리지 말고, 안에 조용히 있는 게 국가경제를 위해 더 좋은 일이다.  

왜 국민이 대통령의 눈물에서 감동을 느끼지 못할까? 간단하다. 대통령이 고통을 헤아린다는 그 못 사는 국민들을 더 못 살게 하는 정책이 추진되기 때문이다. 한 손으론 뺨 때리면서 한 손으론 얼르면 두 손으로 다 맞을 때보다 더 화가 나는 법이다. 이건 차라리 전경련에 가서 ‘우린 박해 받는 소수야’라며 얼싸 안고 우는 것보다 못한 이벤트다. 결국 대통령의 민생탐방 이벤트에 상인들이 이용된 셈이어서 더 화가 난다.  

- 울지말고 할 일을 하세요 -  

울고 짤 필요 없다. 양극화 해소-민생경기진작책만 추진하면 된다. 하지만 정부는 거꾸로만 가고 있다. 부자감세-토건자본을 위한 건설부양-교육비 팽창-구조조정, 모두 거꾸로다.  

할머니에게 ‘할머니, 감세 중지하겠습니다. 부자증세해서 민생지원 늘리겠습니다.’라고 했다면 눈물을 안 흘려도 난 감동했을 것이다. 정부는 지금 이런 일을 해야 한다. 
 
▲     © 청와대

국가재정으로 서민과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 귀족학교 계획을 전면 중지하고 대신에 국가재정에 의한 공교육-직업교육 투자로 교육복지와 국가경쟁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금융민영화를 중지하고 국내 서민과 산업을 위한 금융공공성을 확충해야 한다. 
 
작은 정부 구조조정 중지로 공공고용을 늘리며, 고용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국론을 분열시키는 대운하를 중지하고 그 돈을 무상 보육, 무상 교육에 보태야 한다. 그리고 실업자 지원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렇게 해서 국민 삶에 여유가 생기면 국민은 가락시장의 할머니에게 배추든 시래기든 사게 될 것이다. 대통령이 배추 500포기, 시래기 네 묶음 안 사도 된다. 서민의 주머니가 윤택해지는 쪽으로 정책을 펴면 할머니 매상은 국민이 알아서 올려준다. 친재벌 친부자 정책 아무리 펴봐야 부자들은 백화점이나 가지 가락시장 할머니에겐 안 가기 때문에 강남 백화점 경기만 진작될 뿐이다. 지금 같아선 강남 백화점 명품 매장 운영자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더 자연스러울 거 같다.  

대통령에게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강남 부자만의 대통령이 아니니, 대한민국 국민의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달라는 것이다. 그거면 된다. 눈물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꼭두새벽에 길바닥에서 찬바람 안 맞아도 된다. 난방 잘 된 청와대에서 안락한 아침식사 하셔도 아무 불만 없다. 제발 정책만 정상적으로 펴달라. 
 
‘대통령님, 울지말고 할 일을 해주세요. 그거면 됩니다.‘
* 필자는 문화평론가이며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는 http://ooljiana.tistory.com, 저서에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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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12/05 [19:1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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