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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 80년 광주를 부안에서 재현하나
부안군 공직협, 회유분열공작 왜곡보도 중단요구 성명내
 
양문석   기사입력  2003/09/04 [18:20]

추석을 나야 하는데 부안군민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자신의 삶을 건 농토와 상점 등 직장을 떠나 한 여름 내내 아스팔트 위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다 보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이 핵폐기장을 백지화 해달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지만 청와대는 민원실 출입도 통제했다. 사진/조현지     © 부안반핵대책위 제공
관광지로서 부안, 농업이 주업인 부안주민들. 한철 장사해서 한 해를 먹고사는 관광업 종사자들과 핵폐기장 건설반대 투쟁으로 올해의 농사를 완전히 망쳐 버린 농민들. 직장을 마다하고 투쟁에 나선 직장인들, 이들의 쓰린 속을 누가 알겠느냐 마는 우리 정부와 언론의 눈에는 남의 일이다. 아니 폭도들이 겪어야 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급기야 부안 공무원들마저 이 투쟁에 나서고 말았다. 지난 2일 부안군 공무원직장협의회는 총회를 갖고, "핵 폐기장 반대투쟁에 적극 동참할 것"을 결의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단체는 이 날 저녁 부안 예술회관에서 1백38명이 참석해 임시총회를 열고, 찬성 87표로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의사를 담은 성명서를 통과시킨 것이다. 성명서에서 "특수한 신분상의 이유로 군민들과 아픔을 함께 하지 못해 가슴앓이를 해왔다"며, "이제라도 군민의 공복으로 군민의 뜻과 함께 하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부안공직협은 3일부터 핵폐기물처리장 관련 업무를 전면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공무원, 드디어 군민의 공복으로

특수한 신분상의 이유로 군민들과 아픔을 함께 하지 못해 가슴앓이를 해왔다는 공무원들의 고해성사와 이제라도 군민의 공복으로 군민과 함께 하겠다는 주장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공복이라는 의미가 무엇인가. 공무원들이 대통령의 모시는 '복'인가 산업자원부를 모시는 '복'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공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공복의 의미가 이렇게 훼절 되어왔던 가장 큰 이유는 군사독재정권의 하수인으로써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공무원의 '빛나는 전통'이 여전히 공무원들의 의식을 지배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참여정부 또한 공무원들의 신분제약을 교묘하게 활용하면서 공무원들이 가진 본래의 기능이자 의무인 주민과 함께 하는 길을 차단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데 정권의 공복으로서 '길들여졌던' 공무원들이 공무원 노조로 거듭나더니 결국 부안 공무원들은 '군민의 공복'을 선언하기 이른 것이다. 공복의 본래 개념을 회복하고 그들의 역할을 자각하여 이제는 실천에 나선 것이다.
 
파시스트의 나라인가

이들이 발표한 성명서의 핵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핵 폐기장 유치 철회 ▲산업자원부 부안지원 사무소 즉각 폐쇄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주)의 군민 회유·분열 조장 행위 즉각 중단 ▲군수의 인사권을 이용한 부안군 공무원 협박과 탄압 중지 ▲핵 폐기장 반대시위 참여하고 있는 공무원 가족 사찰중지 ▲언론사 기자의 왜곡보도 중단 등을 촉구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다. 경악할 정도다. 이들의 성명서에 중단을 촉구한 내용을 보면 2003년 9월 오늘을 살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거의 상상할 수 없는 파시즘적 양상이 드러난다. 누구 말대로 '지금이 어느 땐데' 회유 분열 조장, 협박과 탄압, 사찰 등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가.

▲종이를 찢어 만든 반핵 피켓을 들고 있는 어린이들     © 부안반핵대책위 제공
자신들의 '밥그릇'을 걸고 이들이 폭로한 내용을 왜 언론은 한 마디도 보도하지 않았는가. 방송과 주류신문들의 침묵으로 인해 한국민들은 이런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80년 광주사태가 단지 폭도들의 난동쯤으로 국민들을 속였던 것이 언론이다. 경찰간부가 부안에 특수경찰부대를 투입하면서 '제2의 광주로 생각하고 진압하라'는 지시가 경찰진압부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언론까지 동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정부와 언론이 한 통속이 되어 광주를 고립시키던 20여 년 전의 5월을 오늘 또다시 우리는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일에는 등교 거부를 하고 있는 부안 지역 초·중학생 3백여 명과 학부모가 국회 앞 항의 시위를 위해 상경했다. 이들은 국회를 방문해,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핵폐기물처리장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국회에서 이 문제를 바로 잡아 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란다. 또 학생들은 KBS를 찾아가 자신들의 눈에 비친 부안 사태를 고발하는 내용의 편지를 전달하고 적극적인 보도를 요구할 예정이란다.

어린 학생들의 눈에 비친 정부와 국회, 특히 방송국 등 언론은 무엇일까. / 논설위원

* 필자는 언론학박사로 전국언론노조 정책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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