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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계승할 노대통령의 유산
[논단] 참여정부 부동산정책 매우 쓸만, 공기업정책은 더 보완하면 훌륭
 
홍헌호   기사입력  2008/01/11 [11:55]
노무현정부 부동산정책, 실기(失期)했지만 종합판은 매우 쓸만
 
제가 노무현 정부가 지지율을 회복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한 때는 8.31대책이 나온 지 두세 달이 지난 후였습니다. 70년대~90년대 국토개발연구원과 주택은행이 정리해 놓은 선진국들의 주택정책들을 훑어보니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하면 재집권이 어렵겠더군요.
 
특히 1970년대 초반 영국보수당 정부의 부침을 보며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1960년대 말까지 영국에서는 30% 세율의 자본이득세(우리나라의 양도소득세)와 별도로 부동산 개발이익에 대해 50% 세율의 부담금을 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초에 집권한 영국의 보수당은 후자의 부담금이 너무 과하다며 이 제도를 폐지해 버립니다.
 
그 결과 영국의 주택가격은 1971년 15.3%, 1972년 31.5%, 1973년 36.2% 상승하며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 일으킵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보수당 정부는 1974년 세율 35~83%의 ‘개발이익세’제도를 다시 도입하며 부랴부랴 뒤늦게 투기 억제에 나섭니다만 이미 돌아선 민심을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정권은 고스란히 노동당에게로 넘어갑니다.
 
저는 노무현 정부가 8.31대책으로 무조건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하면 정권은 한나라당 차지가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8.31 대책이 나온 지 두세 달이 지나도록 시장의 반응은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추가 대책을 바로 쏘아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참여정부는 조금더 기다려 보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여정부의 큰 실수였습니다. 당시 부동산 투기꾼들은 참여정부의 생각과 달리 ‘투기에 눈이 먼 미치광이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당시 전문투기꾼들은 투기에 미쳐서 날뛰는 게 아니라 전문가집단의 조언을 받고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각 금융기관들이 전문가를 동원하여 이들에게 컨설팅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모든 투기꾼들이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큰 손이 아닌 사람들은 조중동문 등과 같은 보수언론과 경제신문 등을 통해 재테크 수업을 받았습니다. 보수언론들은  ‘부동산 가격상승이 걱정된다’는 ‘악어의 눈물’을 적당히 흘려주며 사회적 비난을 피하면서 동료 악어들이 어떻게 움직여야 돈을 버는지 지속적으로 재테크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런 두뇌싸움에서 참여정부가 진 것입니다. 참여정부는 투기꾼들이 자신들보다 훨씬 더 프로답게 움직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미치광이나 바보 취급한 것이지요.
 
8.31 대책을 내놓을 당시 경제부총리는 강남 부동산 가격을 2003년 10.29대책 당시 이전가격으로 돌려놓겠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들은 국민들과의 이 약속을 꼭 지켰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국민들과의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8.31 대책이 나온 지 두세 달이 지나도록 시장은 크게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는 그 이유가 시장 참여자들이 오판에 의한 것일 뿐 정책의 틈새 때문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결국 8.31 대책의 승패는 2005년 하반기에 결정되었고 2006년에 그 후유증을 심하게 앓은 후 2006년 말에 가서야 1970년대 영국의 보수당 정부처럼 8.31 대책의 틈새를 겨우겨우 메꾸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권력은 돌아 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뒤였습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이명박 정부가 잘 판단해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가 실기(失期)하긴 했지만 2006년 말까지 만들어 놓은 ‘부동산 정책 종합판’은 꽤 쓸 만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노무현 정부는 본의와 전혀 상관없이 정치적인 적수인 이명박 정부에게 아주 귀한 선물을 남긴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공기업개혁정책도 참고할 것이 많다.  
 
노무현 정부가 이명박 정부에게 남긴 귀한 선물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공기업 개혁방안에 대해서도 노무현 정부는 상당한 진척을 보였습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무작정 대다수 공기업을 민영화할 게 아니라 노무현 정부가 남긴 귀한 선물부터 꼼꼼이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물론 공기업 중에서 한두 개는 민영화할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기업 민영화는 공기업으로 하여금 공공성을 버리고 수익성만 노리는 기업으로 전환하게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서민들에게 득보다 실을 많이 안길 수 있습니다. 우선 당장 공기업 민영화는 다른 여러 나라의 사례에서 보듯이 공공요금 인상의 길을 열어놓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현재 민영화 대상으로 거론되는 공기업들은 대부분 다 지금도 기업적 성격이 상당히 강해서 국가재정을 축내는 정도가 매우 작은 기업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을 민영화해 보아야 이명박정부가 추구하는 ‘작은 정부론’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될 것입니다.
 
대신 이들의 ‘도덕적 해이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공기업 지배구조를 독일식 이해관계자형 지배구조와 유사하게 전환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독일식 이해관계자형 지배구조는 이사회와 감사회를 구분하여 지배구조를 이원화하고 감사회에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여 이사회의 독주를 막는 방식입니다. 즉 독일식 기업지배구조는 의회(감사회)는 없고 행정부(이사회)만 있는 미국식 지배구조가 아니라 행정부(이사회)의 독주를 강력하게 견제하는 의회(감사회)를 별도로 두는 방식입니다.
 
감사회에는 공익형 이사나 이해관계자 대표, 수요자 대표, 국민대표들을 적극 참여시켜 공기업이 주무부처나 노조에 의해 일방적으로 휘둘리는 현상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노조대표들도 감사회의 일원이 될 수는 있지만 노조대표는 감사회의 소수 대표로만 존재하게 하여 감사회가 노조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배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단, 작은 규모의 공기업의 경우 공기업마다 이런 감사회를 별도로 다 두는 것은 무리가 따르므로 카테고리별로 공공기관 관리위원회와 유사하게 공동감사회를 두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FTA나 공기업 민영화와 같은 비가역적인 성질의 정책 결정은 매우 신중해야  
   
여러 가지 정책 중에서 FTA나 공기업 민영화 정책 같은 것은 한번 결정하면 나중에 번복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다른 정책들과 달리 매우 꼼꼼하게 우리의 구체적인 현실을 따져보면서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1996년 유통업개방과 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여당보다 더 보수적인 야당에서 대형마트규제에 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바 있습니다. 1996년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이 국내외 유통업개방을 주도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한나라당의 이런 행보는 아이러니한 일인데요. 어쨌거나 대형마트들이 지역 소상공인들의 생계를 지나치게 위협하다 보니 한나라당 의원들도 이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게 바로 관념과 현실의 차이입니다. 개방만 하면 경제성장이 저절로 굴러 들어온다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일 뿐입니다. 구체적인 현실을 무시한 무차별적이고 급진적인 개방은 성장을 가져오기는 커녕 성장기반 자체부터 붕괴시켜 버립니다.
 
혹자는 급진적인 유통업 대내외개방으로 소비자들이 이익을 본다고 하는데 그 이익라는 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부터 하나하나 따져보아야 합니다. 급진적인 유통업 개방으로 소비자들이 챙기는 이익은 대형마트가 중소납품업체를 가혹하게 쥐어짜고 소상공인들의 삶의 기반을 붕괴시켜서 만들어 놓은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급진적인 유통업 대내외개방으로 손실을 보는 사람들은 저소득층이고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대형마트 대주주라는 극소수 부유층들과 소비자라는 전계층의 사람들이다 보니 부가 소비성향 높은 저소득층에서 소비성향이 매우 낮은 부유층이나 소비성향 평균수준의 전계층 소비자에게로 이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국가전체적인 소비총량의 축소와 양극화 심화, 서민경제 파탄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물론 무작정 모든 개방을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미국식 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우기며 막무가내로 급진적인 개방을 추진해서는 곤란합니다. 우리는 미국처럼 자신들의 부담을 타국으로 전가할 만한 강대국도 아니고 유럽처럼 조세부담율이 높은 복지국가도 아닙니다.
 
따라서 무턱대고 미국식을 추종하다 보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미국식을 따라하다 쫄딱 망하고 2000년대에 좌파정부를 불러들여야만 했던 중남미처럼 되는 것입니다. 요즘 이런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부작용 때문에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는 세계은행마저 반성문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식을 광적으로 숭배하는 세력들이 더 늘고 있으니 이거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정부보다 더 우파적이기 때문에 노무현정부보다 더 좌파적인 저의 충고나 경고가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좌파, 우파를 가리지 않고 조언을 폭넓게 듣지 않으면 이명박 정부가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서민들의 고통도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 필자는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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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1/11 [11:5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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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증스런 민노당 2008/01/13 [00:56] 수정 | 삭제
  • 놀구들 있네
    민노당이것들
    5년 내내 노무현 까더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무현이 임기 끝나가고 나니까 잘한거 인정하네

    잘한거 인정하면 민노당한테 손해니까 말하기 싫었겠지
    이해는 한다. 민노당이 원래 그렇잖아, 나라보단, 민노당만 잘 살면되니까
  • 깊은생각 2008/01/11 [14:57] 수정 | 삭제
  • 왜냐하면 이명박 정부는 '한국정부'이기 때문이죠. '조중동'이 참여정부 저주했듯이 이명박 정부 반대하는 편에서 저주할 이유는 없습니다.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예측'과 대안의 제시 이런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요. 위의 글이 그렇듯 가장 모범적인 사례입니다. 위 홍헌호님의 글은 앞에서 계속 써오신 글과 더불어 정말 좋습니다. '독일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영미식의 '끊임없는 넘보기'에도 그 골조가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죠. 이제 그 '결과'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독일식 공기업 즉 '견제'가 철저히 제도화되어 '관료주의화' 같은 것을 막으면서 '공공성'까지 견지하는 이런 빙삭이 지금 시기의 정답이죠. 1970년대 영국 사례는 아주 귀한 정보이군요. 감사합니다. 건필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