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항쟁 20주년을 앞두고 6월 영령들 앞에 무슨 면목으로 설까 벌써부터 두렵다. 83학번의 정신연령을 자랑하며 386세대라고 외쳤던 노무현정부와 그의 관료들, 그들이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방송통합융합관련 입고예고안에서도 수십 년 간의 민주화 투쟁의 성과물로 평가받던 ‘무소속 독립행정기관으로 위원회 조직’인 방송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전락시키면서 위원들을 대통령이 모두 뽑도록 조치하여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관료적 독선이 덕지덕지 묻은 방송장악기도로 ‘반동의 역사’로 퇴행시키려 한다는 비판마저 무시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다. 이제는 KBS와 EBS까지 관료들이 좌지우지하며 장악했던, 적어도 그들에게는 그리운 그 시절로 퇴행시키려 든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일을 이렇게 태연하게 진행할 수 있단 말인가!
지난 12월 8일, 국회운영위원회는 정부가 제출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의결해 주었다. 만약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KBS와 EBS는 실질적으로 기획예산처의 규제와 통제 하에 들어가게 된다. 관료적 독선에 대해 뼈저린 경험을 갖고 있는 우리 역사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공기관운영법’)은 ‘정부투자관리기본법’과 ‘정부산하관리기본법’을 통합하여 현재의 정부투자기관이나 출자기관, 출연기관들을 새로운 틀로서 규제하고자 하는 법안이다. 이 법에 따르면 기획예산처는 일상적인 경영정보 요구는 물론 공공기관의 통폐합, 기능 재조정, 민영화 등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즉 정부와 국회가 마음만 먹으면 KBS와 EBS의 일상적인 규제는 물론 민간에 매각까지 할 수 있는 실로 막강한 권한의 근거가 마련되는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EBS의 민영화 논의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는 마당에 그 소문을 실현하기 위한 법적 근거마련이라도 하듯이 이 정부의 관료들은 방송장악음모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영방송의 완벽하게 틀어쥐려는 ‘방송장악음모’라는 시각이 설득력을 가지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방송통신융합이라는 미명하에 대통령이 방송통신위원회의 위성을 일방적으로 임명하게 하고, 심지어 민간심의기구의 위원장과 부위원장마저 대통령이 위촉하게 만들더니, 이제는 아예 KBS와 EBS까지 관료들이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시도를 하니 독선으로 가득 찬 관료들의 방송장악음모라고 어찌 아니 말 할 수 있겠는가! 어찌 정치권력이 이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말 할 수 있겠는가!
국민들은 지난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정권시절 언론이 정치권력에 의해 포박당하면서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로막으며 끼쳐왔던 해악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권력의 시녀’로서 공영방송을 거부하는 갖가지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치열하게 방송의 독립성을 소원했었다. 그러한 기억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이러한 시도가 다시 자행되는 이유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노무현정부와 그의 관료들에게 원하는 것은 ‘공영방송에 대한 정부통제의 강화’가 아니라 ‘공영방송의 보다 확고한 독립성’이며, 궁극적으로는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들의 공영방송’이다.
그리고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 있다. 사정이 이렇게 갈 때까지 방송위원회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는가? 오로지 자기들의 밥그릇 지키기에만 골몰하고, 방송위원회에 주어진 방송의 공공성 공익성을 수호할 의무를 내팽개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언론노동자의 피와 땀, 이어졌던 감옥행으로 만들어냈던 방송위원회라는 무소속 합의제 행정기구는 또 다시 관료들이 방송장악을 위한 마수를 뻗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경만하고 있었던 것. 도대체 왜 이러나?
차제에 공영방송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야겠다. 그 간 공영방송과 공영방송 구성원들의 공영방송답지 않은 갖가지 갈지자 행보와 각종 비리로 인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상당부분 상실함으로써 급기야 관료들마저 정세를 오판하고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기도까지 드러내고 있음에 대해서 뿌리 깊은 자기반성이 필요하며 보다 더 국민들에게 다가서는 자기노력을 함으로써 거듭나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회에 당부한다. 공공기관운영법과 방송통신융합관련법은 ‘악법 중의 악법’이고 ‘민주화의 반동’임을 깊이 인식하고 재심사해서 폐기하는 쪽으로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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