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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과 경실련에 사로잡힌 대한민국
[논단] 부동산 정책, 세금폭탄과 분양원가 공개라는 주술에서 벗어나야
 
이태경   기사입력  2006/11/17 [18:31]
공급확대론에 투항한 정부의 부동산 정책
 
지난 11월 15일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다. 이른바 11·15 부동산 종합대책의 핵심내용은 주택 공급확대와 금융규제 강화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6개 신도시를 비롯한 공공택지 내에 최대 12만 5000 가구에 달하는 주택을 추가 공급하고, 공공택지 내 아파트 분양가를 25% 인하하며,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 등이다.

비록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라는 방안이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11·15 부동산 종합대책의 핵심은 역시 주택공급 확대와 분양가 인하라고 해야 할 것이다.

기실 11·15 부동산 대책은 매우 중대한 함의(含意)가 담긴 대책이다. 주지하다시피 참여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투기적 가수요 억제와 공급확대가 그런대로 균형을 이룬 상태였다. 미흡한 점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나름대로 평가를 받았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11·15 부동산 대책은 참여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공급확대로 현저히 기울어졌음을  의미한다. 물론 청와대에서는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더 이상 청와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아무튼 참여정부는 현재 시점에 취할 수 있는 부동산 정책 중에서는 가장 나쁜 정책을 취한 셈이다. 지금과 같이 부동산 불로소득을 쫓는 투기적 가수요가 시장에 만연한 상황에서 공급을 조금 더 늘려봐야 투기심리만 부추기기 때문이다.

이론상 거의 무한대로 팽창하는 투기적 가수요를 공급을 통해 진정시키려면 압도적 규모의 주택을 그것도 당장 공급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투기적 가수요로 인해 급등한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대규모로 주택 공급을 한 후 투기적 가수요가 사라지고 나면 과잉공급으로 인해 주택 가격이 폭락할 가능성이 크다.

공공택지 내에서 공급되는 아파트의 분양가를 25%인하하겠다는 정부의 결정도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는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고분양가 문제는 투기적 가수요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님에도 정부는 이를 혼동하고 있다.

쉽게 말해 고분양가가 투기적 가수요를 견인하는 것이 아니라 투기적 가수요가 시장에 창궐하기 때문에 분양가가 주변 시세 보다 훨씬 높아지는 것이다. 이런 사정 하에서 분양가를 낮춘 들 최초 분양자만 수혜를 입을 뿐이다.

궁지에 몰린 참여정부가 공급확대라는 독배를 마신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투기적 가수요 억제 대신 공급확대를 택하고, 분양가 문제에 그토록 목을 매는 참여정부가 마치 누군가의 주문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눈 밝은 독자들은 금방 눈치를 챘겠지만 정부의 11·15 부동산 대책의 배경에는 <조중동>과 경실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11·15 부동산 대책 = <조중동>의 승리

예언은 성취되었다. <조중동>의 예언대로 수도권 주택 가격은 폭등했고 정부는 전면적인 공급확대정책을 채택해 항복을 선언했다. 과연 <조중동>은 위대하다.

<조중동>이 발명하여 널리 유포시킨 '세금폭탄론'과 '공급확대론'-수급불균형론-은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무력화시키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다. <조중동>은 프레임(frame)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조중동>이 제작한 '세금폭탄론'과 '공급확대론'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대한민국 국민들은 <조중동>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는 증거들이 여기저기서 적지 않게 제시됐지만 이를 외면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인식체계 내에 최초로 구축된 프레임을 고집스레 유지한다는 점, 일단 한 번 자리 잡은 프레임은 이에 부합하는 주장과 정보들만을 수용한다는 점을 <조중동>은 무섭도록 정확히 알고 있다. 

게다가 <조중동>은 근면하기 이를 데 없다. 이들은 틈만 나면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세금폭탄론'과 '공급확대론'으로 공격했다. <조중동>의 공격은 집중력이 있었고 끈질겼다. 매일처럼 이들이 발행하는 신문을 보는 독자들이 <조중동>의 논리에 세뇌(brainwashing)당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조중동>은 예언자(prophet)노릇도 했다. 참여정부의 반시장적 부동산 정책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고 자신들의 주장-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을 충분히 하라!-을 따르지 않는 한 집값은 계속 오를 것이라는 것이 <조중동>이 한 예언의 골자였다.

결국 <조중동>은 승리했다. <조중동>의 주술(呪術)탓인지 수도권 집값은 폭등을 거듭했고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투기적 가수요 억제에서 공급확대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11·15 부동산 종합대책의 최대 승자는 <조중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조중동>을 보면 문득 쉐프터(Martin Shefter)와 긴스버그(Benjamin Ginsberg)가 말한 바 있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생각난다. 행정부와 의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언론 등의 힘이 지나치게 커지는 현상을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라고 하는데 현재의 한국사회, 그 중에서도 부동산 시장을 이 개념만큼 적확하게 설명하는 개념도 그리 많지 않을 성 싶다.

적어도 <조중동>은 부동산 시장에서만큼은 또 하나의 정부(政府)이다. 유감스러운 건 이 정부가 1%에 해당하는 부동산 부자들만을 편애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정부의 능력이 진정 놀라운 것은 나머지 99%의 국민들로 하여금 1%의 부동산 부자들의 운명과 자신들의 운명을 동일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분양원가 공개'라는 함정

11·15 부동산 종합 대책의 또 하나의 승자는 경실련이다. 물론 경실련은 이런 평가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 경실련이 11·15 부동산 종합 대책에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및 이를 통한 분양가 인하, 후분양제 등이 포함되지 않은 점을 들어 정부를 맹렬히 비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실련도 11·15 부동산 종합 대책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공공택지 내에서 공급되는 아파트의 분양가 인하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분양가 공개 및 이를 통한 분양가 인하, 후분양제의 중요성이 새삼 확인된 것이 경실련이 얻은 성과이다.

많은 시민단체와 국민들이 이번 부동산 종합 대책을 미흡하게 평가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분양원가 공개 및 이를 통한 분양가 인하, 후분양제의 도입이라는 점이 이를 잘 확인해 준다.

그러나 경실련이 널리 전파한 '분양원가 공개' 프레임은 <조중동>의 '세금폭탄론' 및 '공급확대론' 프레임과는 다른 의미에서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저해하고 있다.

경실련은 분양원가 공개 및 이를 통한 분양가 인하가 집값 안정에 필수적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그러나 경실련의 이런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금년 4월 건교부와 지자체의 발표를 보면 전국의 주택은(공동주택+단독주택)은 약 1301만호에 달한다. 그런데 신규로 공급되는 주택물량은 전체 주택 총량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설령 경실련의 주장처럼 분양원가 공개 및 이를 통한 분양가 인하가 실현된다 해도 지금과 같이 투기적 가수요에 의해 기존 주택의 가격이 높게 형성된 상황에서는 분양가 인하의 효과가 전체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제한적이다. 최초 분양자들만 엄청난 수혜를 입을 뿐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주변시세 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분양가는 투기적 가수요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이를 혼동한 나머지 분양원가 공개를 마치 집값 안정의 필수적 조치인 것처럼 주장하는 행위는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릴 뿐이다.

분양원가 공개는 건설업계의 부패 근절 및 투명성 제고를 위해서는 필요한 조치일지 모르나 집값 안정과는 별 상관이 없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후분양제의 도입도 그간 건설업체가 일방적으로 누리던 특권을 철폐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여기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옳지 않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경실련은 쉼 없이 분양원가 공개 프레임을 유포하고 있다. 경실련의 노력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분양원가 공개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이 80%를 넘으니 말이다.

그러나 경실련의 빛나는 성취에 흔쾌히 박수를 보낼 수는 없다. 경실련의 성공이 부동산 시장 안정에는 무익할 뿐 만 아니라 오히려 유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지금의 부동산 시장은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투기적 가수요에 의해서 가격 매커니즘이 망가진 상태이다. 즉 부동산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을 자연스럽게 조절해주는 가격이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금의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동산 불로소득-그 중에서도 토지불로소득-을 차단하거나 환수하여 투기적 가수요를 제거하고 이를 통해 부동산 시장의 가격 매커니즘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위와 같이 부동산 시장에서 가격이 제 구실을 하게 되면 시장참여자들은 부동산 시장에서 나타나는 가격을 액면 그대로 신뢰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투기적 가수요가 사라지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수요와 공급의 원리대로 작동하게 된다. 아울러 터무니없이 높게 형성된 부동산 가격-특히 수도권의 아파트 가격-도 제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이 같은 사실들을 감안할 때 부동산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시민운동단체들이 취해야 할 운동의 목표와 수단은 분명하다 할 것이다. 투기적 가수요 제거를 통한 부동산 시장의 정상화가 그 목표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은 보유세 및 양도세 현실화, 각종 개발이익환수 장치의 강화가 될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핀 것처럼 대한민국 시민운동 단체의 맏형 격이라 할 수 있는 경실련은 현금 부동산 문제의 근본원인을 잘못 진단한 나머지 엉뚱한 처방을 내리고 있다. 경실련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정부와 국민들 모두가 '분양원가 공개' 프레임에 빠져 있는데 이런 현상은 부동산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뿐이다.   

경실련은 지금이라도 자신들의 '분양원가 공개' 프레임이 현금 부동산 문제의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있는지를 전면적으로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경실련에게 들려주고픈 말이다.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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