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광의 소설 <분필 교향곡>에는 고등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분필 던지는 장난을 친 학생을 잡아내느라 수업은 제쳐두고 아이들에게 기합과 매질을 가하는 교사가 등장한다.
학생들을 갖은 방법으로 학대해도 '범인'이 나오지 않자 교사는 한 사람 때문에 반 전체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울부짖는다. '한 사람'이 바로 그 자신을 가리킨다면 우스꽝스럽게도 그 말은 백 번 옳다. 1인 소극을 보는 듯한 깡패 교사의 좌충우돌은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은 아니라는 점에서 비극이다.
폭력 교사, 문학의 일등공신? 아직도 남자고등학교는 '폭군'교사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독재정권 치하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지금의 30대 이후 세대에겐 폭력적인 교사한테 걸린 경험이 지천에 널린 듯 흔하다.
존경할 만한 교사는 드물었고, 소설에나 나올 법한 비교육자적인 교사는 소설 밖에서도 활약하고 다녔다. 물처럼 여린 나이의 감수성을 할퀴는 데 서슴없는 교사들은 자신의 존재가 장차 작가가 될 아이들한테 풍부한 서사적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리란 점을 알지 못했다. 한국소설에서 학교와 관련한 것은 정치와 권력의 우의적인 소재로 곧잘 등장한다. 권력자를 빗대기에는 아이들 잡는 교사만큼 적절한 것이 없다.
그러나 '부적격 교사'들도 나름대로 할 말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들은 교육 문제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이들한테 환영받지 못하는 교사를 퇴출시키기만 하면 교육이 활짝 피어날 듯이 말하는 이들에게 동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학교가 아이들에게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쏟는 교사로 채워진다고 하여 아이들이 느끼는 숨 막힐 듯한 갑갑함이 시원하게 해소될 수 있을까?
문제는 한국의 제도교육 자체가 본디 비민주적이고 개인의 자율성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한국소설에서 그려지는 삭막하고 위압적인 교실 풍경은, 교사는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만 하고 학생은 그것을 진리인 양 주워섬기기만 하는 현실과 떼어놓을 수 없다. 교사가 무슨 힘이 있느냐고 하지만 학생들 앞에서는 다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구시대적인 교육이념이 지배하는 나라에서는 손바닥만한 교실 안에서도 교사와 학생의 권리는 평등하게 배분되기 힘들다. 아무리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라 하더라도 지금의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민주적인 시민의 소양을 길러주기는 힘들다.
흔히 입시교육이 아이들 인성을 망친다고 하지만 입시교육체제는 바른 말하는 학생을 낳지 못하게 함으로써 교사의 권한을 오히려 두텁게 해준 면이 있다. 진화론이 틀렸다며 가르치지 않는 국어교사가 있었다. 그러나 국어시험에 과학문제가 안 나온다고 믿는 아이들은 교사에게 반박하지 않는다. 과학적 진리를 우습게 아는 교사나, '분필'한 자루에 자신의 권위를 부여한 깡패 교사나, 학생을 '졸'로 보기는 마찬가지다.
학생을 '졸' 로 보는 교사들 나는 교육당국이 교사평가제의 취지로 내세운, 공교육의 경쟁력 강화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교사에게 치우친 권력을 아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면 찬성이다. 이미 뜻있는 교사들은 자신의 수업을 학생들로부터 평가받는 일을 해오고 있고, 드물지만 교무회의에 학생대표가 참여하는 학교도 있다.
교원평가제에 대한 전교조의 대안을 보니 학생회에도 '교원징계요구권'을 부여하는 등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열려 있다는 인상을 받기에는 미흡했다. 징계 대상 교원으로 '성추행', '과도한 폭행', '상습적 금품 수수'가 언급되어 있는데, 성추행이 아니고 성희롱이면, 과도하지 않은 폭행이면, 상습적이지 않은 금품 수수면 징계감이 아닌가? 당국이나 교사들이나 아이들 처지에 다가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교사평가제만이 교육의 전부를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하나가 바뀌면 다른 것도 차례로 움직이리라 믿는다. / 편집위원
* 필자는 문학평론가입니다.
* 본문은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 경남도민일보
http://www.dominilbo.co.kr/ 11월 22일자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