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정사장의 대국민 직접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KBS노조는 ‘정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으며 KBS PD협회와 기자협회 그리고 아나운서협회는 ‘퇴진반대, 진상규명’을 요구한다.
최근 ‘KBS사태’는 ‘도청과 관련한 해법’으로 철저한 진상규명을 KBS노조를 제외한 관련자 모두가 요구하고 있으며, ‘정사장 진퇴 문제’는 KBS노조의 ‘정사장 퇴진’과 언론노조의 ‘직접 사과’로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먼저, 도청문제를 논해본다면, 이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어떤 노동조합이 ‘비공개회의’를 사측이 도청을 했다면 가만있겠는가. 오히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노동조합이 이상할 뿐이다. 시민사회와 KBS 내부 대부분이 그래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진상규명에서 핵심포인트는 ‘도청한 자’의 단독범행이냐 공범관계가 있느냐가 아니다. KBS 내부를 약간이라도 아는 사람은 이 부분에 있어서 ‘말단직원의 과잉의욕’이라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노무관리의 구태’를 사례별로 규명하고 이를 일소하는 여건마련이다. 그 동안 정사장이 취임한 이후 그 이전까지 적폐되어왔던 수많은 ‘비합리 비상식 비정상의 관행’들을 하나하나 ‘합리 상식 정상’으로 변화시켜 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하지만 경영진이 기존의 관행 중 매우 해악적인 노무관리에 대해서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도 못했고 오히려 방치한 혐의를 떨칠 수 없는 것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다.
이에 대해서 KBS노조는 먼저, 이런 왜곡된 낡은 시대적 유물의 사례를 발굴 규명하고 이후 이런 작태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해야 하며, 또한 이런 낡은 관행을 방치한 정사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둘째, 그렇다면 이런 노무관리의 구태 온존에 대해서 정사장의 책임을 어느 선까지 물을 수 있느냐는 점이다. 현재 KBS노조의 ‘정사장퇴진’과 언론노조의 ‘정사장 직접사과’의 차이는 정사장에 대한 평가에 대한 미묘한 차이로 볼 수 있다.
그들 스스로는 이런 차이가 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주장한 바 없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을 밝힌 성명서를 읽어보면 이런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해법의 차이가 미묘하긴 해도 그 미묘함에 녹아 있는 평가 틀이 분명히 다르다.
상대적 평가와 절대적 평가 틀이 있겠다. 상대적 평가 틀은 이전 사장들과 비교해서 정사장의 그 동안 각종 조치가 얼마나 반동적이냐 아니냐에 따라 퇴진이냐 직접 사과냐 등의 수위가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절대적 평가 틀은 정사장이 지금까지 진행해 온 일련의 조치들이 KBS 내부 구성원들과 시청자 일반에게 반개혁적이었는가 아니면 개혁적이었는가를 평가함으로써 그 수위를 결정할 수 있겠다.
이런 기본적인 평가와 더불어 이번 ‘도청사건의 본질’과 연계해서 입장을 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KBS노조는 선거전부터 취임식까지 일관되게 ‘반정연주노선’을 유지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KBS노조의 정사장 퇴진 투쟁은 이미 예고되어 왔고, 꼬투리만 잡으면 무조건 퇴진투쟁을 하려고 계획했다는 비난이 제기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비난’은 현재의 문제를 감정적으로 치닫게 하는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그리고 전혀 문제해결의 관점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문제의 핵심은 정사장이 취임한 이후 일련의 조치들에 대한 평가에 대한 입장차이라는 보고, 현재 문제를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당연히 평가의 주체는 KBS 내부구성원과 시청자 일반이다.
그래서 현재 KBS노동조합을 비판하려면 바로 이런 평가와 도청사건의 본질을 연계한 충분한 의견수렴구조를 거치지 않고 노조지도부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정사장 퇴진’을 밀고 나가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KBS사장 진퇴문제가 단지 KBS내부의 문제만으로 간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KBS는 공영방송이다. 그리고 KBS내부에서 조차 문제해법이 ‘현격하게’ 다르다는 것은 제대로 된 민주적 의사수렴과 결정과정이 없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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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박사, EBS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언론개혁을 위해서라면 전투적 글쓰기도 마다않는 양문석 정책위원. ©대자보 |
이런 상황에서 KBS노조가 ‘정사장퇴진’문제를 독단적으로 치고 나가는 것은 노동조합 활동의 기본인 민주적 의사수렴 원칙을 일탈하는 조치이자 결과적으로 노조지도부의 노동조합 사유화로 비판받을 수 있는 위험한 결정이라는 점이다.
필요하다면 정사장의 퇴진투쟁은 언제든지 하면 된다. 하지만 정사장에 대한 평가와 사내외의 공감대 형성은 정사장 퇴진투쟁이라는 입장을 확정하기 전에 반드시 선행해야 한다. 민주적인 사내외 의견수렴과정을 거칠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입장을 ‘독단적으로’ 밀고 나갈 것인지를 KBS노조는 다시 한번 숙고해서 결정해야 한다. / 논설위원
* 본문은 언론비평전문지 <미디어오늘>에도 송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