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래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숙원 가운데 하나는 법에 의한 지배였다. 이를 흔히 ‘법치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분단과 전쟁, 군부독재를 겪는 동안 헌법을 위시한 법률은 무시되기 일쑤여서 심한 경우 순전히 권력자들의 판단에 의한 살육과 고문, 투옥이 자행되곤 했다.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으로 대표되는 독재자들은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하는 초법적 존재들이었다. 이 잔인하고 탐욕스런 독재자들의 결단이 국민들 전체의 의사로 치환(置換)되었고 이것은 곧 헌법이 되고 법률이 되었다.
물론 독재자들의 결단을 구체적으로 이론화하고 법리화한 것은 법률기술자-교수, 판사, 검사 등- 혹은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들이었다. 이들은 독재자들의 생각을 질료(質料)로 해서 수다한 악법들을 생산해냈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를 ‘법치’라고 정의할 때 건국 이후 대한민국은 ‘법치’보다는 ‘인치’(人治)에 의해 작동되는 사회였다. 확실히 87년 6월 항쟁이 있기전까지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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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이고, 그 법치주의는 절대선인가를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가 왔다. © 손경식 필름 |
87년 6월 항쟁 이전과 이후의 한국사회는 판이하게 구별된다. 87년 6월 항쟁 이전과 이후를 구분짓는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그 중 하나가 ‘인치’에 의해 작동되던 사회에서 ‘법치’에 의해 작동되는 사회로의 이전을 위한 출발점이라는 평가도 가능할 듯 싶다.
물론 ‘인치’에서 ‘법치’로의 이행은 고통스러우리만치 느리게 진행되고 있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괄목한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극명한 예가 지난 봄에 있었던 대통령 탄핵사태가 아닌가 한다.
한나라당과 이제는 그 존재마저 희미한 민주당, 자민련이 합심하여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일사천리로 의결한 사건만큼 생생한 ‘법치주의’의 존재를 보여주는 예는 그리 흔치 않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의결로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었다. 사람들은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헌법의 위력을 실감하였고, 야당의원들은 ‘법치주의’의 승리에 환호했다.
독재자의 결단(決斷)이 모든 것 위에 있던 과거였다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법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야당의원들은 과거 유신시절 공화당 의원들이 남산에 끌려가 치도곤 당한 경험을 고스란히 되풀이 했을 것이고, 탄핵소추안 의결에 의기양양해하던 조,중,동 등의 수구언론은 남김없이 폐간되었을 것이다. 또한 수구언론사에서 생계를 해결하던 기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렸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얼마 후 법조인과 고시생들 정도만이 그 존재를 어렴풋이나마 인식하고 있던 헌법재판소는 순식간에 온 국민, 아니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논쟁의 중심에 섰다. 오로지 헌법재판소 9명 재판관들의 손에 국민들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의 생사가 달려 있었다.
‘정치적 사법재판기관’이라는 일부 학자들의 설명에 충실한 우리의 헌법재판소는 총선이후에야 앞뒤가 다소 맞지 않는 결정을 통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청구를 기각시켰다. 각하(却下)하리라는 대다수 법조인들의 의견과는 다른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에 대한 준엄한 충고(?)도 친절하게 빼놓지 않았다.
비록 사회적 손실은 심대했지만, 대통령에 대한 일련의 탄핵사태는 비로소 대한민국이 법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 사회로 상당정도 이전하였음을 보여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다. 탄핵에 찬성했던 사람이건, 반대했던 사람이건 이 점에 있어서는 대체로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법률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사회임을 보고 안도했고 값진 자부심도 느꼈다. ‘법치’가 제대로 기능하는 한 사회는 예측가능해 질 것이고, 갈등은 합리적으로 조정될 것이라는 믿음이 시민들을 지배했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 지나지 않아서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은 ‘법치주의’가 그리 이성적인 것도 아니고 완벽한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인식의 전환을 강요당하게 되었다. ‘신행정수도 이전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위헌이라고 판단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바로 그 같은 인식의 전환을 강요한 사건이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한 해석과 판단은,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을 상실한 수구기득권 세력의 반격이라는 비판적 견해에서부터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적극적인 옹호라는 해석 까지 참으로 구구(區區)하다.
그런데 그러한 해석 가운데 ‘과연 법치주의는 절대선인가?’하는 고민은 생략되어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이번 헌재의 위헌 결정도 형식적으로는 ‘법치주의’가 정상적으로 기능한 것이 분명하지만 그 결과는 대체로 희극에 가깝다.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역시 헌법과 법률은 이를 산출한 체제 내지 사회의 유지를 제일의 존재이유로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법률은 앞서나가는 것이라기 보다는 앞선 질서와 이미 완성된 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이를 합목적적으로 승인하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헌법과 법률은 그 성질상 진보 보다는 보수의 색깔이 더 짙게 드리워져 있다고 할 것이다.
게다가 상황을 더 고약하게 만드는 것은 한국사회의 법조인들이 지닌 가치관과 지향이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가 많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법조인들은 기성질서와 체제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일부 법조인들은 사슴과 돼지는 동등할 수 없다는 식의 봉건시대의 신분의식을 가진 듯 하여 심히 우려스럽다.
헌법과 법률이 지닌 보수적 속성에 더해, 한국사회의 전문가 직군들이 대부분 그러하지만(예컨대 몇년전 의사들의 일사분란한 파업동참-무슨 말로 미화하고 분식하더라도 결국은 의료수가를 인상해서 배터지게 살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집단적 표현)조금의 역사의식과 도덕성, 사회적 책임감조차 지니지 못한 채 그저 배타적인 이기심으로 발톱까지 무장한 법조인들이 끊임없이 양산되는 한 ‘법치주의’는 기득권층의 이익을 충실히 합리화하는 수단이 되기 쉽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형식상의 법치주의의 구현이 아닌 실질적인 법치주의의 실현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은 민의가 충분히 반영된 법률을 입안할 수 있는 국회의원의 선출과 정의와 공익에 복무하는 인재를 충원할 수 있도록 하는 사법구조의 개혁일 것이다.
결국 민주공화국의 실질적 구현은 스스로 주권자임을 자각한 시민들이 늘어나야 가능한 것이다. 공화국의 시민들이 스스로를 신민(臣民)으로 자리매김하는 한 선출되지 않은 사법권력이 한국사회를 좌지우지 하게 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는 헌법의 최고강령은 성숙한 시민들에 의해서만 생명력을 부여받을 수 있다. /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