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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언론도 방송도 너무 모른다
[언론시평] 관료들의 방송장악 탐욕에 포위된 대통령의 무지와 방통융합
 
양문석   기사입력  2007/01/05 [18:32]
노 대통령은 3일 국무회의를 주재, 대통령이 위원을 전원 임명하는 방송통신위원회가 국무총리의 행정감독을 받게 하는 내용을 대거 포함한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안'을 심의, 의결한 직후 이 법안에 대한 일각의 비판을 일축하는 발언으로 또 한 번 시민사회와 방송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주장을 했다.

"방송의 독립성 문제는 별도의 위원회에서 다루는 것이고 방송통신위원회 구성에 대해 정치적 의구심이 제기된다면 위원 구성은 다음 정부에서 해도 된다...다음 정부가 누가 되는가에 관계없이 (방통위원회는) 정부에 속해야 한다...현재도 완벽한 독립기구는 존재하지 않고, 국민들로부터 권능을 부여받은 기관이 책임을 지는 것이 필요하다...정책 기능은 원래가 정부의 것이다."

하나하나 따져 보자.

방송의 독립성 문제는 별도의 위원회에서 다루는 것?

방송통신의 내용을 전담하는 민간기구로서 '방송정보통신심의위원회'(이후 심의위)를 지칭한 것이다. 하지만 심의위 위원구성도 결코 독립적이지 않다. 입법예고안 제18조를 보면 대통령 3명 국회의장 3명 국회 소관 상임위 3명 등 9명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문제는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대통령이 지명한다는 점이다.

지금 방송위원회는 방송위원들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뽑는데, 심의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지명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다. 또한 무늬는 민간기구지만 사실상 중앙행정부처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에 '내용심의'가 심의가 아닌 검열로 해석할 수도 있다. 방송위원회는 '무소속 합의제 행정기구'였기 때문에 '내용심의'가 검열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치적 의구심이 제기된다면 위원 구성은 다음 정부에서 해도 된다?

입법예고안 부칙 제1조(시행령)을 보면, '이 법은 공포 후 3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로 못 박고 있다. 또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무조정실은 "정부 입장은 다음 초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도록 해 상반기 중 시행되도록 한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며 "다만, 야당에서 제기된 상임위원 임명방식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는 만큼 국회 심의 과정에서 법률안 제정은 현 정부에서 하되 시행은 차기 정부에서 해도 무방하다는 의견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 12월 21일 오전11시 정부종합청사 정문 앞에서 시청자주권공대위 주최로 열린 방통융합 밀실. 졸속 입법추진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 임순혜

우리는 지금까지 국무조정실의 법안제정과정을 밀실논의 졸속제정이라고 비판해 왔다. 특히 졸속제정이라고 한 이유가 2월 임시국회 통과 시점으로부터 일정을 역산하여 무리하게 추진함으로써 제대로 된 국민적 의견수렴과정과 합의과정을 밟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정치적 비난'을 모면하고 시행을 다음 정부에 넘길 수도 있다고 피해간다. 정녕 이런 생각이 있으면 부칙 제1조를 '이 법은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로 바꾸는 것이 믿음을 주는 행위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다음 정부'에서 시행할 일을 왜 현 정부 때, 그것도 졸속으로 제정해야 하는가이다. 대통령의 발언이나 국무조정실의 입장에 '진정성'이 없는 것은 바로 이 대목 때문이다.

현재도 완벽한 독립기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야 한다. '현재도 완벽한 독립기구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맞다. '무소속 독립행정기구로서 위원회 구성'이 바로 방송위원회다. 하지만 위원 구성과정과 공영방송 경영진 및 이사진 구성과정에서 청와대의 노골적인 인사개입으로 인해 시스템으로서 '완벽한 독립기구'를 내용상 정부의 종속기구로 전락시켜 놨다. 누가 책임져야 할 일인가?

그 뿐 아니다. 방송사 인허가 과정에서 청와대의 개입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경인민방 방송사업자 선정과정에서 현재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의 행태를 기억해야 한다. 지금도 경인민방 허가추천이 이루어지지 않는 책임 중 상당부분이 청와대의 '개입' 때문임을 부인하려는가?

분명히 밝히건데, 대표성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국회와 청와대의 '보은인사' 등으로 인해 완벽한 독립기구법을 가진 방송위가 정치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이에 지대한 책임을 져야 할 곳 중 하나가 청와대라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로부터 권능을 부여받은 기관이 책임을 지는 것이 필요하다?

국민들로부터 권능을 부여받은 기관이 청와대 밖에 없는지를 따져 볼 일이다. 미안하지만 '국회'도 권능을 부여받은 기관이다. 국무조정실이 보도자료에서 밝힌 '위원 선임과정에서 정파적 배분'에 대한 비판 때문에 '정파성 배제를 위해서 대통령이 위원을 구성해야 한다'는 논리는 허구다.

왜냐하면 첫째, 정파적 나눠먹기는 '빈대'고 대통령의 일방적인 위원 지명은 '초가삼간'이다. 정파적 나눠먹기를 막겠다고, 대통령 국회의장 국회 소관 상임위원 각각 3인 추천 방식을 대통령이 독식하겠다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간삼간을 태우겠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둘째, 정파적 나눠먹기를 배제하기 위해서 대통령이 소속된 특정 정파가 독식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정파적 나눠먹기가 '차악'이라면 특정정파 독식은 '최악'이다. 상식적으로 접근한다면, 최악을 선택할 건지 차악을 선택할 건지 판단해야 한다.

정책 기능은 원래가 정부의 것이다?

세 가지 측면에서 대통령의 '무지'를 드러낸 발언이다. 하나는 김대중 정부 시절 왜 무소속 독립행정기구인 방송위원회를 구성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무지'다. 사실상 독재정권 시절 한국에는 방송으로는 지상파 방송밖에 없었고, 이들 지상파 방송사 경영진들은 '정권의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특수부대요원들'이었다.

결국 시청자들은 80년 중반 '시청료 거부 운동' 등을 펼치면서 검찰과 더불어 전형적인 '권력의 시녀'였던 지상파 방송을 질타했고, 한편으로 지상파 구성원들이 노동조합을 건설하여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투쟁'을 펼쳐 낸 결과, 지금의 방송위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이번 법안의 핵심 성격이 '독임제 가미 합의제 행정기구'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냈다. 대통령의 발언은 '합의제 행정기구'를 부정하는 것이다. 실상 '무늬만 합의제 행정기구'이지 합의제 행정기구의 흔적마저 거의 짓밟아버린 지난 3일 국무회의 결과물이 입법예고안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합의제 행정기구의 탈은 쓰고 있다는 사실을 대통령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 이런 기본개념도 정립되지 않는 발언을 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세 번째, 원론적인 측면에서 '원래 정부의 것'이라는데 도대체 '원래'는 어디서 온 개념인가? 방통융합기구가 일본이나 독임제 부처로 존재하지 다른 나라들은 거의 '합의제 기구'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대통령은 너무나 용감하게 '원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군사독재정권시절과 김영삼 정권 시절로 회귀하고픈 욕망의 다른 표현이 '원래'다. 대통령이 사용한 '원래'의 역사적 어원에 대한 무지가 드러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관료들의 역사 반동적 탐욕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번 입법예고안과 대통령의 발언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이번 입법예고안이 정치적 음모나 이번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꼼수'라고는 보지 않는다. 오히려 관료들의 방송장악에 대한 탐욕이 저지른 '역사 반동적 행위'라고 평가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여기에 대통령이 꼬여 든 것으로 판단된다. 깊이 숙고해야 할 것이다. 왜 방송통신융합을 추진하는지? 누구를 위한 방송통신융합인지?

* 글쓴이는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입니다.
언론학 박사이며,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과
대자보 논설위원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 : http://yms7227.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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