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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무릎꿇은 정운찬, MB는 끝내 '모르쇠'
용산 유족들 찾아 "능력 부족", 실질적 조치 미지수…'장례위원' 1만명 육박
 
이석주   기사입력  2010/01/08 [16:17]
용산참사 타결 이후 '악어의 눈물'에 대한 비판을 지우고 싶었던 것일까.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장례식을 하루 앞둔 8일 정운찬 총리가 고인들과 유가족 앞에 다시 섰다. 지난 10월 3일 이후 3개월 만이며, 지난달 29일 '용산 합의' 이후 10여일이 흐른 뒤였다.

재개발 정책의 전면 수정과 재발방지 등을 약속한 정 총리는 특히 지난 10월 첫 방문 이후 자신을 향해 쏟아졌던 일각의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이날 10여 분 동안 무릎을 꿇은 채 유족들의 손을 잡고 '유감' 이상의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용산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장례 절차가 모두 확정되는 등 '외형상'의 사태 해결이 마지막 단계에 와있는 상황에서, 불도저식 국정운영의 구조적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 이번 사태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및 입장표명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3개월 만에 '용산 유족' 다시 찾은 정총리 "제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9시 20분 경 5명의 시신이 안치된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을 방문, 10여 분 간 유가족들과 면담을 가진 뒤 '직접 사과'의 뜻을 전했다.
 
▲ 정운찬 총리는 지난 10월 첫 방문 이후 3개월 여 만에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다시 찾았다.     © CBS노컷뉴스

정 총리는 '총리님 말씀을 믿고 기대했는데 진작 좀 해주시죠, 어떻게 이렇게 추운 겨울에 해줬습니까'라는 유족들 절규에 "제가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말했다고 용산 범대위가 전했다.

지난달 극적 합의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유감을 표명한 것에서 한 단계 높은 수위의 사과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보이며, 이날 정 총리는 지난해 부산 사격장 화재 참사 당시 일본인들 앞에서 보였던 '무릎'을 유족들을 향해 직접 꿇었다.

정 총리는 "여러분(유족들)께서 마음을 열고 양보해 주셔서 감사하다. 일찍 오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거듭 유감의 뜻을 나타냈으며, 재개발 정책의 전환을 촉구한 유족들 호소엔 "앞으로 다시는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명동성당에 은신 중인 박래군 공동집행위원장 등의 장례식 참석 여부와 관련해서도, 유족들은 당일(9일) 만이라도 참석하게 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정 총리는 "돌아가서 동료들과 의논해 최대한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정 총리는 유족들과의 대화 이후 기자들과 만나, "좀더 일찍 해결했으면 좋았을 텐데, 제 능력이 부족해서 여기까지 오게된 것에 대해 유족들에게 미안하다"며 "하지만 늦게나마 (지난달 29일) 해결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고인들이 그동안 영면하지 못해서 참 안타까웠다"며 "이제 영면에 들어가게 돼서 늦게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분들의 명복을 빈다"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정 총리는 특히 이번 참사의 근본 원인이 된 '불도저식' 재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세입자 해직에 대한 보상과 순환 재개발 정책 추진 등 재개발 정책과 관련한 개선 절차를 통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문제점을 인정했다.

이에 대해 범대위 측은 "오늘 정 총리가 유가족을 조문하여 직접 사과의 뜻을 밝힌 데 대해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총리와 정부는 오늘 유가족에게 직접 사과하고 약속한 것처럼, 향후 용산참사의 진상이 규명되고 재개발 관련 법, 제도,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며 "지난 추석에 약속을 번복해 실망시킨 것처럼 유가족을 두 번 울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MB사과 끝내 무산-실질적 재개발 대책도 미지수…"장례식 끝 아니다"

이날 정 총리가 무리한 재개발 사업 추진의 문제점을 인정하며 향후 재발방지책 등을 약속했으나, 향후 발생할 수도 있을 제2의 용산참사를 막기 위한 실질적 조치가 하루 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정운찬 총리가 이날 용산참사의 재발방지 등을 약속했으나, 재개발 사업의 문제점에 대한 실질적 조치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 CBS노컷뉴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고 "해결의 실마리가 풀린 것과 장례식을 치르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희생자들과 유가족의 고통과 상처를 생각하면 지금도 참혹한 심경"이라며 "제2, 3의 용산참사를 막기 위한 법·제도·관행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참여연대는 △인권과 시민안전보장이라는 원칙 하에 공권력의 행사 기준을 엄정하게 재정립 할 것, △폭력적·반인간적 재개발정책의 근본적 수정, △재개발 시 제대로 된 서민과 세입자 대책 수립 등을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희생자 장례식을 끝으로 모든 게 해결됐다고 생각하면 안될 것"이라며 "'강남 대체' 재개발이라는 개발의 '컨셉'이 바뀌지 않는 한 대부분의 영세가옥주, 세입자가 사는 뉴타운·재개발 지구에서의 개발사업의 문제점은 해결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또 "용산참사를 아직도 일부 철거민, 상가세입자의 돌발적 행동에 의한 우연한 참사로만 이해하고 제도와 정책의 개선 없이 이를 덮어버리려 한다면 제2, 제3의 용산 참사는 또 일어날 수 있다"고 정부의 실질적 후속책 마련 등을 거듭 촉구했다.

창조한국당은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비판했다. 논평을 통해 "정운찬 총리가 빈소를 방문해 유사사건의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끝내 이명박 대통령의 직접적인 사과는 없었다. 용산희생자에게 끝내 사과도 눈물도 없었던 대통령"이라고 맹성토했다.

이어 "청와대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한 기초생활수급자의 사연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내보냈다. 하지만 용산참사 희생자와 가족에 대한 사과나 무리한 4대강 사업으로 인한 복지사각지대에 대한 성찰 없는 눈물은 진실성 논란만 낳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용산 장례' 세부 일정 확정…장례위원 1만여명 육박

한편 9일 열리는 '용산참사 민중열사 장례식'에는 각계각층의 대표단과 시민들로 구성된 장례위원 8천500명 이상이 참여한다고 용산범대위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범대위는 "범국민장 장례위원으로 무려 8천5백 명이 넘는 국민들이 참여한 것으로 최종 집계되었다"며 "장례위원 모집 공고가 난지 불과 나흘 만의 일이다. 이로써 사상최대의 장례위원회 구성이 완료되었다"고 밝혔다.
 
▲ 용산범대위는 9일 장례식에 나서는 장례위원들이 8천5백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8일 밝혔다.     ©CBS노컷뉴스 (자료사진)

장례위원으로는 노동자와 농민, 문화예술인, 사회단체 회원, 시민 등 사회각계가 참여했으며, 이는 당초 목표치였던 5천 명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범대위는 "그만큼 이번 장례가 범국민적인 추모와 애도의 분위기 속에 치러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앞서 범대위는 지난 5일 사회 각계 원로인사들로 구성된 고문단을 위촉, 상임장례위원장으로 이강실, 조희주 범대위 공동대표를 선임했다. 이후 범대위는 제정당 제시민사회단체를 아우르는 장례위원회 체계를 7일 최종 구성했다.

구체적 장례절차와 관련, 유족과 범대위는 9일 오전 9시 순천향 병원에서 발인식을 갖고 이후 순천향병원~국립극장~장충단공원~퇴계로를 거쳐 영결식장에 도착하는 천구 의식을 진행한다. 영결식은 서울역 광장에서 낮 12시 부터 엄수된다.

오후 2시에는 서울역에서 용산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로 이동, 오후 3시 이곳에서 노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노제는 송경동 시인의 조시와 문정현 신부의 조사, 진혼굿, 분향, 헌화 순으로 이어진다.

이후 장지인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으로 이동해 오후 6시께 하관식을 진행하며, 장례위원회는 9일 장례식을 마치고 사흘째를 맞는 11일 오전 11시 모란공원에서 삼우제를 지낼 예정이다.

범대위는 "장례식에 최대한 많은 분들이 참석하셔서 고인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 주시기 바란다"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차가운 감방에 갇힌 철거민들이 하루빨리 무죄로 풀려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대자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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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1/08 [16:1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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