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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순 사장 혼자 'MBC 방송혁명' 성공못해
[시론] 방송노조의 전폭적 협력만이 공영방송 MBC로 거듭날 수 있다
 
양문석   기사입력  2005/02/24 [16:21]
...노조와 치열한 대결관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경영자는 경영자의 입장이 있고, 노조는 노동자의 입장이 있다. 노조 출신 사장이라고 노조가 하자는 대로 다 할 수는 없다. 정책 대결을 하자는 것이다...급여를 10% 삭감하는 대신 인원도 10% 늘려야 한다. 고용을 늘리는 것은 공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다. 비정규직도 상당 부분 정규화할 계획이다...임기를 다 채울 수 있으리라고 보지 않는다...(최문순, 사장선임 직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최문순 MBC 사장 내정자     © 가지협회보
2월22일 저녁 6시 10분. 한편에서는 ‘혁명이 일어났다’는 메시지가 긴급타전. 세상이 뒤집힐 것이라는 기대와 환호. 다른 한편에서는 ‘세상이 어떻게 될라고...’하며 한탄하는 목소리와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치오르는 한숨. 이것이 MBC 뿐만 아니라 언론계, 더 나아가 한국사회에 던진 당시의 감정이었으리라.
 
‘MBC의 혁명’을 넘어 한국사회의 ‘파란’으로 일컫어지는 최문순의 MBC 사장 내정. 95년 MBC노조위원장을 거쳐 98년 언노련 위원장 취임. 그리고 시기상조론이 지배적이던 당시 언론노동운동진영의 반대를 무릅쓰고 2000년 11월에 언노련을 언론노조로 전환하여 초대 산별노조 위원장을 지낸 인물. 
 
노조위원장, 최연소 사장맞은 MBC, 노조의 협력이 성공관건
 
최사장내정자가 MBC 보도국 기자로 복귀한 이후 첫 작품이 ‘2002년 5월 서해교전’ 이후 MBC가 제기한 ‘남한 꽃게잡이 어선 월선 등 남한 어선의 부분적 책임론’이다. 당시 데스크가 최문순이어서 가능한 보도였다는 평이다. 온 나라를 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대표적인 보도였지만, MBC와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등이 주류보수언론들의 일방적인 반북호전공세 속에서도 당당히 남북문제에 대한 균형 잡힌 보도, 냉전적 보도 틀을 버리고 평화적 보도 틀을 새롭게 도입한 보도였고, 그 주역 중 한 사람이 최문순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주류보수층들은 아직도 ‘MBC가 사고친 보도’쯤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후 MBC 보도는 ‘개혁과 진보 이미지’를 달고 다닌다. 대부분 MBC 뉴스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 MBC를 그렇게 평가한다. 하지만 최근 1-2년 사이 MBC의 보도를 보면 방송3사 중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아왔던 SBS의 보도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끊임없이 제기된다. 특히 KBS 보도의 점진적인 변화와 SBS 보도의 개혁 몸부림이 강화되고 있는 점과 비교할 때 MBC 보도는 정부에 대한 비판의식은 사라지고 자본의 횡포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소위 주류사회의 입맛만 고려하는 ‘보도 요리사’로 변질된 채 정체하고 있다.  
 
이것이 MBC 구성원들의 위기감을 고양시키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한다. 사장과 보도본부장, 그리고 보도국장으로 이어지는 보수성향 인사들의 보수적인 시각이 최근 몇 년간 기자들의 잣대를 흐리게 했고, 자신도 모르게 간부들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만드는 등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끼리끼리의 향연’을 즐겼던 것이다.
 
이런 보수회귀 경향을 좌시하고 있던 사람들이 더 이상 앉아서 구경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던 것이 지난 해 말이다. 최문순과 그의 동료들이 나선다. 2004년 11월 23일. ‘81년부터 87년 사이 입사한 보도부문 노동조합 전임자 11인 일동’이라는 명의로 <17년 전의 정신으로...>라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2월22일 ‘MBC의 혁명’을 위한 전주곡이었다.
 
“...보도국 기자로서 노동조합 전임자였던 우리는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그리고 참으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냅니다...주지하다시피 MBC뉴스는 시대역행적인 보수화와 냉전지향적이고 반개혁적인 기득권 옹호의 편향성을 노정...미미하나마 군사독재 시절에도 추구하고 보여주었던, 그래서 MBC뉴스의 정체성으로 인식되었던 민주지향적 개혁성을 홀대한 지 오랩니다. 그러다 보니 시대가 바뀌고, 시청자들이 변하고, 정치상황이 달라졌는데도 우리 뉴스는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성명서를 기폭제로 2005년 1월 10일, ‘1990년대 입사한 MBC 기자 34인 ’이라는 명의로 <근본적 쇄신과 용단을 촉구한다>는 성명서에서 ‘깨끗이 책임지는 일이 사장의 마지막 봉사’, ‘보도출신 경영진에 더욱 엄중한 책임 물어야’, ‘뉴스 농단 두 본부장의 리더십에 파산선고’ 등을 선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우리는 전 구성원들이 제2창사에 버금가는 각오로 지혜와 노력을 다하지 않는 한 이번 사태의 수렁에서 쉽게 빠져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단언...과감하게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우리 모두가 감수하지 않는 한 MBC 뉴스의 신뢰 회복은 요원...다시 한번 깊이 머리 숙여 사죄하면서 우리의 입장 표명이 공허한 외침에 그치지 않기를 기대한다.”
 
또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도 이긍희 사장 재임기간을 평가하는 노보와 성명서를 발표하고 투쟁대오를 갖추면서 연임의사를 강력하게 표출하던 이사장에 대한 퇴임을 압박, 가장 유력한 주자였던 이사장의 차기사장 불출마 선언을 끌어낸다. 그리고 사내여론조사를 통하여 ‘민주적 리더십’을 새로운 사장의 가장 중요한 자격임을 선언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2월22일 ‘MBC의 혁명’은 일단락된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문제다. 특히 최사장내정자가 내세운 10대 공약 중 노동조합간의 치열한 ‘대결’이 예상되는 대목이 곳곳에 지뢰처럼 매설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사장내정자는 임금삭감 10%, 단일호봉제 폐지, 조직개편, MBC 지역국 광역화 등을 공약했다.
 
예를 들어, 임금삭감 10% 공약을 보자. 노동조합을 가장 강하게 자극하는 공약이다. 비록 삭감분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상당부분 전환하겠다는 주장도 있지만, 노동자에게 가장 민감한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임금’이다.
 
그리고 MBC 노조위원장 선거에 단독으로 출마한  김상훈 노조위원장후보는 MBC노조와 전국언론노조 정책실장 및 사무처장을 거친 대표적인 ‘정책통’이자, 최사장내정자가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시절 정책실장을 역임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사장내정자가 선언한 ‘노사간의 정책대결’은 아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임금삭감이 아니라 경영효율성을 높여서 자금을 확보, 일차적인 사용처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시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론학 박사, EBS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언론개혁을 위해서라면 전투적 글쓰기도 마다않는 양문석 정책위원.     ©대자보

최초의 노조위원장 출신 MBC 사장 내정자 최문순. 그가 사장에 선임되고 첫 일성이 ‘노조와의 대결’이고, 노조를 향해서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MBC본부가 이에 대해서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 그리고 ‘우주에서 가장 좋은 회사’라는 비아냥거림을 당해 왔던 MBC가 어떻게 변신할 것인지, 지금 이 순간 MBC는 세간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새로운 노사관계뿐만 아니라 공영방송 MBC가 정녕 공영방송답게 질적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향을 두고 MBC뿐만 아니라 한국사회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 논설위원
 
* 본 기사는 경향신문 '언바세바'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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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2/24 [16:2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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