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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더 떨어져야 내수도 살고 경제도 살아난다
[주장] 보유세율 올리고 집값내려야 구매력 상승, 노대통령 직접 챙겨야
 
이태경   기사입력  2004/09/08 [08:57]
아직도 대통령의 인식과 현실 사이의 거리는 멀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5일 MBC <시사매거진2580> 500회 특집 특별대담에서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집값을 현재 수준에서 안정시키는 것이 제일 좋다"며 "부동산 값이 내리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 값이 내리면 부동산 잡고 돈 빌려준 사람들의 금융이 부실해지고 작은 집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 상실감이 커진다. 이사를 가고 싶은 사람들도 엄두를 못 내게 되고 부동산 뿐 아니라 경기 자체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노 대통령은 "다른 정책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부동산에 관한한 하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정책 하나하나를 놓고 일일이 챙긴다"고 강조하면서 부동산 정책 방향에 대해 "경기 과열지구를 지정했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즉시 해제해 주는 등 여러가지 정책들을 놓고 신속하고 유연하게 조정해 나가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재산세, 보유세를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장기적으로 보유세(재산세와 종합토지세 등)인상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부동산 세제가 지향해야 할 방향과 부합하는 것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또한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서 일일이 챙기고 있다는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동산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비교적 잘 이해하고 있는 듯 싶어 마음 든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값을 현재 수준에서 안정시키는 것이 제일 좋다"며 "부동산 값이 내리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한 노 대통령의 현실인식에는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이 대담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현재 한국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은 내수의 위축에서 대부분 기인한다. 주지하다시피 내수의 주체는 누구보다 샐러리맨들과 서민들이다.따라서 움츠려든 내수를 진작시키는 데 있어 가장 긴요한 조치는 샐러리맨들과 서민들의 구매력을 신장시키는 것임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샐러리맨들과 서민들의 구매력을 획기적으로 신장시킬 수 있는 묘방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샐러리맨들과 서민들이 자신들의 수입을 주로 어디에 사용하는 지를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충 짐작하겠지만 평범한 대다수의 서민들은 자신들이 피땀흘려 벌어들인 수입의 대부분을 주택구입과 자녀들의 사교육비에 사용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내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언제나 힘겨운 일이었지만 지난 2000년 무렵부터 본격화하여 최근까지 진행된 집값 상승은 내집이 없는 서민들의 가계에 감당하기 힘든 짐을 지웠다.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널리 확산되는 가운데 빚을 얻어서라도 집을 사지 않으면 영영 내집을 장만할 수 없으리라는 공포감과 위기의식이 서민들의 사고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 결과 평범한 샐러리맨들과 서민들 중 상당수는 무리한 대출을 받아서 주택을 구입하였고 현재 대출이자를 지급하기에도 허리가 휠 지경에 이르렀다.
 
그나마 안정된 수입을 가진 샐러리맨들이 수입의 대부분을 주택구입에 사용하다 보니 다른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여지는 생각할 수도 없는 형편이고 그 결과 소비는 극도로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부유층이 지갑을 열지 않고 신용불량자들이 양산되어서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지만 부유층의 소비는 국민경제에는 별도움이 되지 않는 사치품 등에 집중된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신용불량자들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기 이전에도 그리 구매력이 높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따라서 현재 한국경제가 봉착하고 있는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샐러리맨들과 서민들이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 주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거품이 잔뜩 끼어 있는 부동산 가격을 점진적으로 하락시키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렇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부동산 가격에 끼어 있는 거품을 제거할 수단은 무엇일까? 이제는 상식이 되었지만 부동산 보유세율을 점진적으로 현실화하는 것이 부동산 가격에 낀 거품을 제거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다.
 
노 대통령이 천명한 것처럼 재산세 등의 보유세율을 장기적으로 높여서 이를 현실화시키면 투기목적으로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들이 부동산을 처분하려고 시장에 매물을 내놓을 것이 분명하기에 부동산 가격은 자연스럽게 하락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정작 노 대통령 자신은 이러한 이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한 듯해 매우 아쉽다. 대통령이 부동산 가격이 현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한 배경에는 무엇보다 부동산 담보대출을 해 준 금융권이 부동산 가격의 하락으로 인해서 동반부실화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자리하고 있는 듯 하다.
 
가뜩이나 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부동산 가격의 하락 등을 원인으로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고 파산하게 되면 대출을 해 준 금융권마저 치명상을 입게 될 사태를 걱정하는 것은 일면 당연하다. 대통령의 머릿속에 부동산 거품으로 인해서 잃어버린 90년대를 보낸 일본의 장기불황이 상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 비해 한국의 금융기관들은 상대적으로 부동산담보대출의 비중이 작을 뿐만 아니라 점진적으로 부동산가격에 낀 거품을 제거해 나간다면 그런 수준의 충격은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설령 부동산 가격의 점진적인 하락으로 인한 부작용이 일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거품이 잔뜩 끼어 있는 부동산 가격은 장래에 국민경제를 붕괴시킬 위험요소로 작용할 것이 명백하기에 선제적으로 그 위험을 제거해야 한다.
 
비유컨대, 노 대통령은 수술하는 것이 두렵다고 해서 암세포를 키우고 있는 환자에게 진통제를 처방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의사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토지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하자 
 
생각해보면 한국사회에서 생산에 참여한 구성원들에게 각자의 몫이 정당하게 분배되는 것을 저해하는 크나큰 원인이 바로 비정상적으로 높은 지대(地代)임을 알 수 있다. 즉 비정상적으로 높은 지대(地代)는 높은 지가(地價)를 형성 - 강남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 - 하며 그 혜택은 한줌도 되지 않는 토지소유자들에게, 그 폐해는 토지소유자를 제외한 사회의 전 구성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한 사회가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투입하는 가치(價値)보다 산출되는 가치가 더 커야 하며, 생산에 참여하는 참여자들에게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어야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생산의 3요소는 노동, 자본, 토지 - 이러한 생산요소를 계급으로 분류하면 노동자, 자본가, 지주가 된다 - 이며 이들은 생산에 참여한 대가를 임금, 이윤, 지대의 형식으로 수취한다.
 
따라서 지주가 지대를 많이 수취하게 되면 당연히 노동자와 자본가에게 돌아갈 임금과 이윤의 크기가 줄어들며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적대적인 투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더 고약한 것은 지대와 지가의 상승은 전적으로 사회공동체의 공로라는 사실이다.
 
수없이 많은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과 보수적 관료들이 추상적 개념과 난해하기 이를데 없는 공식으로 경제를 설명하고 있지만 기실 경제문제의 본질은 바로 이것이다. 생산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토지소유자들이 너무나 많은 대가를 지대의 형식으로 전유하는 지금의 토지정책을 유지하고서는 한국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은 담보할 길이 없다.
 
누차 강조한 바와 같이 부동산보유세를 현실화하고 이를 조세의 근간으로 삼을 때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한마디로 말해서 부동산 보유세를 조세의 근간으로 삼는 정책은 갖가지 문제가 산적한 한국사회를 한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이다.
  
모쪼록 노 대통령이 토지를 단지 경제의 구성요소 중 하나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무수한 문제들을 풀 수 있는 단서로 인식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 편집위원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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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9/08 [08:5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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