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김영삼 정부는 국제화하겠다면서 한자조기교육을 외치고, 세계화만이 살길이라고 영어조기교육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래서 제 말글보다 남의 말글을 더 섬기는 얼빠진 나라가 되어 일어나던 나라 기운이 시들어 마침내 1997년에 나라살림이 망하게 되어 국제통화기금에 급하게 돈을 빌려서 나라 목숨을 이어간다. 그 나라꼴을 보면서 이오덕 선생이 나를 찾아와 우리말 살리는 일을 하자고 하셨다. 1990년 정부가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뺄 때에 함께 우리말글을 지키는 시민 모임을 만들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다시 뭉쳐서 우리말과 겨레 얼을 살려 튼튼한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나도 김영삼이 겨레 말글을 못살게 굴더니 나라 망치는 것을 보고 앞으로 더 우리말과 나라가 어렵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러기로 했다.
그리고 1998년 1월 24일부터 새 모임 준비를 했다. 그래서 내가 이끌던 ‘한말글사랑겨레모임’은 해산하고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이라는 이름으로 뭉치기로 했다. 1998년 5월 27일 나는 창립 모임에는 한글학회 모임 때문에 가지 못했는데 이오덕 선생은 나도 김경희 지식산업사 사장과 함께 공동대표로 뽑았다. 운영위원으로 김정섭(부산)․고승하(마산)․남기용(창원)․남점성(창원)․서정홍(창원)․김수업(진주)․박종석(진주)․정근영(부산)․이재관(울산)․김명수(부안)․이만희(광주)․윤태규(대구)․김조년(대전)․최명환(공주)․황시백(속초)․주중식(거창)․황금성(부여)․김영래(서울)․차광주(서울)․강순옥(서울)․노명환(양주)․하현철(고양)․허홍구(서울)․이혜영(서울)․안건모(서울)․박문희(서울)․노광훈(인천) 들 지역별로 뽑고 신정숙이 총무를 맡았다. 그리고 전국에서 많은 교사들이 회원으로 참여했다.
▲ 이오덕 선생이 만든 모임 회보 [우리말 우리얼 제1호 겉장(왼쪽)과 1998년 4월 충주 이오덕 선생 댁에서 우리말을 살려서 나라를 일으키자고 손을 굳게 잡은 이오덕 선생과 이대로. © 리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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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을 꾸릴 때에 한말글사랑겨레모임에서 나와 함께 활동했던 이수열, 박용수 선생들도 참여했으나 운영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다른 한말글사랑겨레모임 사람들은 한글학회 중심으로 활동을 하기로 하고 나만 공동대표로 들어갔다. 그리고 운영 조직은 모두 이오덕 선생을 따르는 분들과 글쓰기연구회 선생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짰다. 이오덕 선생은 “우리말 우리얼”이라는 회보를 통해서 글로 우리 말글살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 뜻을 실천하고 나는 국어운동대학생회 활동을 할 때부터 하려고 했으나 못한 “세종대왕상과 최만리상 주기”를 하자고 제안했고 이오덕 선생도 찬성했다. 한글을 살리고 빛내려는 이에게는 겨레 이름으로 ‘세종대왕상’을 주고, 한자를 쓰자면서 한글을 못살게 구는 이에게는 ‘최만리상’을 주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오덕 선생이 상장이나 상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우리 뜻을 밝히는 것이니 그 명칭을 “우리말 지킴이와 훼방꾼 뽑기”로 하자고 해서 나도 좋다고 해 한글날마다 이 일을 발표하는 일과 다달이 “우리말 우리얼”이라는 회보를 내는 일이 우리 모임의 가장 큰 일이 되었고 24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때 이오덕 선생이 쓴 “우리말 바로쓰기(한길사)”라는 책이 국민들의 우리말 교과서라고 할 정도로 많이 읽혔기에 공병우 박사님은 젊은 한글운동가인 내가 이오덕 선생과 손잡고 우리말글을 살리는 시민운동 일을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시작된 모임이었다. 그런데 1991년 나를 따르는 젊은이들과 이오덕 선생 뜻이 맞지 않아서 그 때 따로 활동하다가 다시 손을 잡은 것이다.
▲ 1998년 4월 이오덕 선생이 살던 충주 무너미 집에서 만나 모임 창립 의논을 할 때 개량한복을 입고 만난 이대로, 백용덕, 이오덕 선생과 노명환, 김경희, 노광훈님 모습(왼쪽부터). © 리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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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은 “우리말 바로쓰기 2권”에서 그때 모임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을 나와 뜻이 맞지 않아서 이루지 못한 것으로 써서 난 좀 섭섭했었다. 사실 나는 그때 이오덕 선생을 모시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오덕 선생도 책에는 그렇게 썼지만 내 마음을 알고 있었던 거 같다. 김영삼이 나라 망친 뒤에 먼저 나를 찾아오셔서 함께 일을 하자고 하셨기에 나도 그 마음을 읽고 고맙게 생각하면서 손을 잡은 것이다. 나는 그때 개량한복을 즐겨 입었는데 내 그 모습이 좋게 보인다며 그런 옷을 파는 곳을 알려달라고 하셔서 소개해주기도 했다. 당신의 아들 또래인 내게 먼저 그렇게 손을 내민다는 것이 아무나 할 일이 아니다. 이오덕 선생은 커다란 도시 학교보다 시골 분교에서 참 교육을 실천하려고 애썼으며 그의 이론과 주장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탄생 배경이 되었다.
이오덕 선생을 알게 되고 함께 우리말 살리기 운동을 하면서 한글학회는 잘 모르지만 우리말을 사랑하는 또 다른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한글학회와 일반 시민들을 아우르고 일을 하게 되어 내 활동 폭과 안목이 넓어졌다. 이오덕 선생은 대학을 다니지 않았지만 일류대를 나오고 우리 말글을 못살게 구는 남광우, 임원택, 조순 교수와는 차원이 다른 분이었다. 오히려 대학 교수라는 그런 자들보다 거룩하고 깨끗한 한겨레였다. 나는 일제 세대가 아니라 어떤 말이 일본 한자말이고 우리가 버려야 할 말인지 잘 몰랐으나 이 분은 잘 알기에 우리가 할 일과 갈 길이 무언지 뚜렷하게 보였다. 그래서 모임 취지문도 이오덕 선생이 썼다. 이 선생은 “우리 말 좀 합시다.”라는 글에서
“지금 우리가 살리려고 하는 말은 우리 온 겨레가 나날이 살아가면서 입으로 주고받는 말이다. 어떤 특별한 일자리에서만 쓰는 말도 우리 말이 되어야 하겠지만, 그런 말보다 더 서둘러 살려야 하는 것이, 아이고 어른이고 시골 사람이고 도시 사람이고 누구든지 하게 되는 말이다. 이 말이 우리를 길러 주었고, 우리들의 역사를 만들었고, 우리를 한 겨레로 이어 주어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어머니가 되는 우리 배달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배달말이 지금 아주 형편없이 짓밟히고, 가리가리 찢기고, 볼썽사납게 일그러져서 죽어 가고 있다. 우리들의 삶과 얼과 그밖에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목숨 덩어리(생명체)가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반만 년 역사에서 무서운 흉년도 많이 만났고, 끔찍한 전쟁도 수없이 치렀지만, 그때마다 그 어려움을 잘 이겨 내었다. 우리 모두의 삶과 얼이 담긴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앉아 외국글 외국 역사를 하늘처럼 떠받들어 섬기면서 그 학식을 권위로 삼아 백성들을 겁주고 백성들의 피땀을 짜내기만 하던 그 오랜 세월에서도, 일하면서 살던 우리 평민들은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슬기롭게 우리 것 우리 마음을 지켜 자자손손 이어 왔다. 우리를 안아 주면서 언제나 샘물 같은 힘이 솟아나게 하는 우리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바로 그 말이 병들어 죽어 가고 있다. 이 일을 어찌하겠는가?”나라 살림이 망해서 일자리를 잃고 노숙자가 늘어나는 이 경제 난국을 이겨내고 튼튼한 나라를 만들려면 우리말을 살려서 우리 얼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고 외쳤다.“라고 주장했다.
이때 정치인들은 금모으기나 해서 빚을 갚는 일에만 나섰지만 이오덕 선생은 나라가 그렇게 망하게 된 근본 원인을 찾고 문제를 풀어서 앞으로 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우리 겨레말을 살려서 겨레 얼을 튼튼하게 하자로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일제 식민 교육을 철저하게 잘 받은 김종필, 김영삼, 김대중 같은 정치인은 일본 한자말을 일본처럼 한자로 쓰자고 하는 데 이 분은 일본 식민지 세대지만 얼본 한자말을 버리고 일본이 쓰지 못하게 한 우리 토박이말을 살려서 써야 우리 겨레 얼이 살고 튼튼한 나라가 된다고 믿었다. 진짜 자주독립국이 되려면 겨레 정신부터 독립해야 하는데 그 길이 우리 겨레말을 살리고 빛내야 한다는 내 생각과 똑같았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모여 우리 겨레말을 살리는 일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 일이 참된 자주국가가 되려면 가장 먼저 할 일이라고 보았고 남의 흉내나 내고 뒤를 따르는 후진국이 되려면 꼭 할 일이라고 보았기에 이오덕 선생이 2004년에 돌아가셨지만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다. 이오덕 선생은 권력욕과 일본 식민지 교육에 찌든 김종필, 김영삼, 김대중 들 정치인과 이희승, 남광우, 조순 교수 같은 얼빠진 학자들보다 순수하고 한 차원이 높은 참된 애국자였다. 그 일을 함께 한 김수업, 김조년 교수와 그리고 이 모임은 함께 활동하지 못했지만 나와 함께 따로 우리 말글을 살리고 빛내는 일을 이수열, 박용수 선생도 그런 분들이었다. 그런데 국민들이 정치인 세 김씨와 학자 이희승 같은 이를 더 우러러보고 따르고 우리말을 살리고 우리 겨레 얼을 튼튼하게 만들어 참된 자주국가, 선진국이 되자는 일은 외면하니 답답하고 안타깝다.
국민 수준이 좀 더 높아져서 외세가 힘을 쓰지 못할 때는 우리 뜻이 빛날 것이라 믿고 나는 나대로 내 길을 간다. 그러나 요즘 일본과 미국들 강대국만 바라보는 자들이 우리 말글살이와 정치판을 개판으로 만들고 또 다시 남북 대결을 일삼고 있어 걱정스럽다. 이 땅에서 다시 전쟁이 나면 우리 겨레는 모두 죽고 일본과 미국과 중국만 좋아질 것이다. 빨리 남북 말글이 통하고 겨레가 마음대로 오갈 수 있기 반라다. 아울러 국민들이 우리 말글이 살고 빛나면 우리나라가 살고 겨레가 빛난다는 것을 빨리 깨닫고 우리가 갈 길이 어디요 할 일이 무언지 빨리 깨닫기를 바라고 빈다.
▲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은 1999년 한글날에 첫 우리말 지킴이로 한승헌 감사원장과 10분, 우리말 훼방꾼으로 김종필 총리와 10분을 뽑아 발표했다. 시상식은 안 하는 한말글 역사 자료다. © 리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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