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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공간의 인사동 추억 ,책 속에 담았다
김기안 작가의 책 <제3공간의 인사동 추억>
 
김철관   기사입력  2013/04/21 [10:51]
▲ 김기안 작가     © 김철관
“내가 주로 하는 작업은 동판을 부식해 색을 칠하고 동판과 동선을 용접해 오브제를 만든 뒤 따뜻한 느낌을 주기위해 색을 입히는 것이다. 나는 금속뿐 아니라 어떤 것이든 새로운 재료를 만나면 색칠해 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저마다 특성을 지니고 있어 색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아가는 것에 큰 기쁨을 느낀다.” -김기안 금속공예작가-

지난 1994년부터 2009년 3월까지 15년간 서울 인사동 ‘제3공간’ 갤러리숍을 운영했던 김기안(58) 금속공예작가를 지난 19일 저녁 인사동 한식집 ‘풍류사랑’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예술인들의 휴식처로 사랑을 받았던 ‘풍류사랑’도 경기침체를 이기지 못하고 오는 28일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지난2009년 작지만 소중한 관객과의 소통 공간이었던 갤러리숍 <제3공간>도 인사동 경기침체에 견디지 못해 문을 닫았다. 며칠 전 인사동에서 공방을 하고 있는 임기연 액자작가에게서 전화 한 통이 왔다. 김기안 작가가 인사동을 모처럼 나오기로 약속했으니 저녁식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김기안 작가와는 지난 2011년 목인갤러리와 통인화랑갤러리에서 ‘제3공간'이란 주제전시회를 취재하면서 알게된 사이다.

▲ 표지     © 홍성사
이날 김기안 작가는 지난 2009년 ‘제3공간’을 접은 후 모처럼 인사동을 나들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인사동은 새로운 현대적 건물이 들어서면서 과거의 고즈넉한 모습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래도 인사동 거리는 묘한 고전의 매력이 곳곳에 숨어 있다”고 피력했다.

그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내게 주었다. 지난 2009년 제3공간을 그만두며 가게를 찾는 관객들과의 인연과 소소한 이야기들을 담은 책이었다. 그는 출판 당시 나에게 책을 건네려고 했으나 여러번 연락을 해도 소식이 없어 바쁜 것 같아 이제 주게 됐다고 말했다.

바로 김기안 작가가 쓴 <제3공간의 인사동 추억>(홍성사, 2011년 11월)이었다.  이날 막걸리에 올갱이 비빔밥을 안주삼아 이런 저런 얘기를 이어갔다. 김 작가는 30여 년간 금속공예작가로 활동해 왔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지하철에서 꼼꼼히 그가 준 책을 읽었다.

지난 15년간 운영했던 <제3공간>의 추억들을 아련하게 표현했다. 작품을 매개로 소통하며 이어진 사람들과 소중한 만남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록됐다고나 할까.

지난 94년 첫 오프닝 때 원래 있던 구조물 위에 철망을 두르고 그 위에 동판을 두드려 만든 태양 조각에 조명을 넣어 불을 밝힌 후 ‘제3공간’ 이라는 가계이름을 부착했던 기억부터 작품들이 눈코 뜰 새 없이 팔렸던 추억까지 고스란히 담았다.
▲ 작품     © 김철관
“새로운 작품을 완성하게 되면 어느 기간 동안은 내 눈 앞에 놓고 보고 또 보면서 정을 나누고 싶은데, 그럴 사이도 없이 팔려 나가는 경우가 많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팔려고 벽에다 진열해 놨으면서도 막상 포장을 할 때면 마음속으로 울고 있다. 멋진 사람에게 선택된 것에 대한 고마움이나 돈을 받게 되는 기쁨보다는 ‘너를 더 이상 볼 수 없구나’하는 섭섭함에 오랫동안 이별의 아픔을 겪는다.” - 본문 중에서 -

임기를 마치고 작품을 사 간 주한 영국 대사의 이야기, 하와이에 절을 꾸미기 위해 작품을 사간 스님, 외국 관광객들과의 만나 나눈 소소한 대화, 남자 선생님을 짝 사랑한 여고생이 어느새 결혼을 해 30대 여성으로 변신해 나타난 사연, 영화 <올드보이>에 나온 DVD 외장케이스 2850개를 수작업으로 제작할 때의 남자 작가들과 불협화음, 가계를 지키면서 불만 한번 표현하지 않는 언니, 유명 연예인을 짝사랑한 남자 등의 얘기가 가슴 깊이 다가온다.

특히 보낸 사람이 누군지를 알리는 카드나 쪽지 한 장 없이 ‘장미꽃 49송이’를 배달 받은 기막힌 사연 속에서 그 주인공을 추측을 하며 기다렸던 마음 속 사랑 얘기는 왠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장미꽃이 시들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무렵 스물일곱 살 차이가 나고, 평소 누나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냈던 공방의 액자 배달 직원이었다 사실을, 영화 스토리 처럼 잔잔하게 기술했다.
▲ 작품     © 김철관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 가는데 세련된 옷차림의 초로의 신사가 작품을 보고 있다. 주위 깊게 보더니 대뜸 한 쪽 벽면에 진열된 작품을 전부 다 구입하겠다고 한다(중략). 벽면이 다 채워질 무렵 그 신사가 또 등장했다. 오늘도 역시 한쪽 벽면을 다 달라는 것이다. 지난번 선물한 것이 가족들에게 아주 반응이 좋았었다면서...” -본문 중에서-

저자 김기안 작가와 저녁을 하자고 했던 임기연 액자작가의 얘기도 나온다.

“끊임없이 혼자만의 개그를 하며 즐거워하는 그는 매일매일 액자 생각만 하며 사는 장인이다(중략). 남들이 하기 어려운 L자형 액자, 삼각형 액자, 원형 액자에 표면 조각도 하며, 독특한 작업을 정말 많이 한다. 장인 근성을 저버리지 않고 해마다 액자 전시회를 열며 의욕적으로 사는 그의 모습이 보기 좋다.”

<제3공간>을 완전히 접은 지난 2009년 3월 16일 아침 7시. 15년간의 추억을 뒤로하고 가게 전면에 분신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던 작품들을 하나 씩 뜯어낸다. 분리된 작품들은 용달차에 실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의 곁을 떠났다.

책속 구석구석에는 당시 김 작가가 만든 금속공예작품을 사진으로 남아 볼 수 있다. 또한 감기에 걸리면 달려갔던 해정병원, 사람들의 인사동 약속장소 수도약국, 올갱이로 각종 음식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던 풍류사랑, 목각인형들의 휴식처 목인박물관, 은 장신구를 직접 만들어 팔았던 은과 나무, 김 작가가 직접 만든 안내 표지판이 매달려 있는 북인사 관광안내소, 고 천상병 시인의 부인 고 목순옥 여사가 운영했던 귀천, 장인 정신으로 액자를 만들었던 꼴액자 등도 지도와 함께 소개했다.
▲ 작품     ©김철관

김 작가는 “제3공간은 나의 인생이며. 삶이고 꿈이었다”면서 “여러 번의 경기 침체로 휘청일 때도 잘 견디어 왔는데, 지난 2009년 찾아온 위기를 극복하는데는 역부족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경기가 서서히 안 좋아지면서 은행 대출로 늘어난 이자와 가게 월세 중압감도 괴로웠지만 전혀 회복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 때문에 무기력해져 더 버틸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가 15년간 인사동에서 운영한 제3공간은 반복되는 일상을 뒤로하고 잠깐 쉬어가는 곳이었다. 작지만 소중한 한 조각의 정을 나누는 곳으로서 작가와 관람객들의 소통하는 이야기가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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