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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데이?…초콜릿이 울고 있다
[변상욱의 기자수첩] 초콜릿의 세계, 그리고 세계의 초콜릿
 
변상욱   기사입력  2013/02/13 [16:49]
밸런타인데이와 초콜릿은 일본 고베의 한 제과업체가' 밸런타인 초콜릿'을 만들어 판 것이 최초의 인연이다. 그 후 일본 모리나가제과가 밸런타인데이에 여성이 초콜릿으로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자는 캠페인을 벌인 것이 밸런타인 초콜릿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떠올린 배경은 무얼까? 초콜릿의 원산지 멕시코의 옛 마야 왕족 사회에서는 붉은 음료와 초콜릿으로 청혼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또 치아파스 원주민들은 신랑신부가 카카오 5알을 주고받으며 결혼의 증표로 삼았다고 한다. 이는 초콜릿 속에 트립토판, 페닐에틸아민, 테오브로민, 카페인 등 사람을 들뜨게 하는 성분들이 여럿 들어 있어 남녀의 로맨스에 유익하기 때문일 듯. 
 
◇ 초콜릿의 세계, 세계의 초콜릿 

초콜릿은 스페인이 멕시코를 점령해 통치하면서 스페인으로 건너갔고 바로크 시대 유럽을 휩쓸게 된다. 영국에서 초콜릿 하우스는 프랑스의 카페처럼 귀족계급, 신사계급, 그리고 새롭게 출현한 중산층의 정치토론장 및 사교클럽 역할을 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초콜릿에 대한 자부심은 멕시코와 스페인이 강하다. 멕시코는 요리에 초콜릿 소스를 곁들이고 초콜릿에 멕시코 특유의 칠리와 데킬라를 섞어 먹고 100% 순수 초콜릿을 즐기기도 한다. 

스페인은 아직도 카카오 빈을 맷돌로 갈아 초콜릿을 만드는 전통이 남아 있다. 100% 핸드메이드인 셈이다. 생산량이 적어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브랜드는 없지만 고급 초콜릿의 품질에서는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고 유럽의 초콜릿 애호가들도 스페인산을 최고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벨기에는 플랑드르 지방이 스페인에 점령되어 식민지가 되면서 초콜릿 산업이 발달했다. 장 노이하우스에 의해 프랄린(견과류, 신선한 크림, 버터 등으로 속을 채운 뒤 초콜릿으로 겉을 씌운 고급 초콜릿)이 개발되며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네덜란드는 초콜릿에서 카카오버터를 제거해 가루 형태의 초콜릿을 만들어냈다. 간편하고 소화도 잘되는 이 초콜릿 분말이 '코코아' 이다.

네덜란드 실용주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코코아는 지금도 네덜란드가 선두를 지키고 있다. 스위스는 늦긴 했지만 앙리 네슬레가 분유를 개발하면서 분유를 이용한 밀크 초콜릿을 발명했다. 초콜릿에 헤이즐넛을 첨가한 것도 스위스가 최초이다.

이탈리아는 초콜릿을 이용한 달콤한 디저트로 유명하다. 아몬드, 헤이즐넛, 호두가 섞인 부드러운 초콜릿으로 경쟁력을 갖추었다. 미국은 허쉬에서 대량생산 방식을 도입해 초콜릿의 대중화를 이루었다. 카카오 버터 대신 식물성 유지를 사용해 손에 쥐어도 녹지 않는 초콜릿을 개발했고, 이는 전투용 비상식량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프랑스인은 설탕과 향이 덜 들어간 단순한 맛, 영국인들은 상점에서 사먹는 초콜릿 바, 일본인들은 밀크 초콜릿, 태국인들은 화이트 초콜릿, 홍콩과 싱가포르인들은 검은색 초콜릿을 좋아한다.

초콜릿 중독을 '초코홀리즘(chocoholism)'이라고 부른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세계 초콜릿 소비량의 3분의 1을 먹어치워 단연 1위, 그 다음이 유럽이다. 그러나 연간 1인당 소비량은 아일랜드, 영국, 오스트리아, 스위스(10.0㎏), 벨기에(8kg) 순이다.

미국은 1인당 소비량에서 벨기에의 절반 쯤. 우리나라는 미국의 1/4, 스위스의 1/10 수준이다. 최근 텔레비전에서 초콜릿 광고가 크게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유럽 경제위기와 관련 있다. 유럽 경제위기로 인해 세계 초콜릿 산업이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유럽코코아협회는 코코아에 대한 수요가 전년 대비 20% 가까이 급감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초콜릿 시장이 위기 상황이라 전해지고 있다. 미주, 아시아, 동부유럽 시장은 현상유지를 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최근 급격한 증가세를 보여왔다. 그 중 30%는 중국이 소비한다. 그러나 중국 연평균 1인 소비량은 50g 수준에 머물고 있다. 스위스 11.3kg, 영국 9.2kg 등과 비교하고 인구 규모를 감안할 때 무한히 커나갈 시장이다.

우리나라 초콜릿 시장 규모는 일본의 10% 정도(약 5,400억 원)이고, 프리미엄 초콜릿 시장은 일본의 2%(약 110억 원)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정체와는 달리 우리 국내 초콜릿시장은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사탕 소비 지역이고 한국은 과자 소비지역이다.

초콜릿이 과자와 사탕의 영역을 파고들기에 아직은 가격이 비싸고 어린이·청소년·젊은 여성 층에 소비가 머물고 있는 것이 시장의 한계다. 이 벽을 허물고 시장을 점유하는 교두보가 밸런타인데이의 초콜릿 선물 풍습이다.

◇초콜릿은 자연식품이다?!

커피에 아라비카, 로부스터 품종이 고급과 일반으로 구별되듯이 초콜릿의 원료 카카오 빈(bean)도 고급인 플레보와 고급이 못된 벌크로 나뉜다. 고급 품종의 이름이 트리니타리오, 일반 벌크 품종은 포라스테로라 부른다. 물론 커피도 예외가 있듯이 카카오에도 특별한 예외는 있다. 고급 카카오 빈의 생산량은 전체 생산량의 5% 이하이다. 초콜릿마다 최고급 카카오 빈을 사용한다고 선전하지만 과연 고급품종을 사용한 초콜릿은 얼마나 될까? 

고급 초콜릿의 문제는 커피와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커피는 아직도 생산지와 커피원두의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 고유의 맛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카카오는 원산지 고유의 풍미와 개성을 살려 낸 다양한 종류의 초콜릿을 만들지 않는다. 초콜릿도 자연식품이다. 농작물인 카카오를 먹기 좋게 만든 것이 초콜릿이라는 점에서 커피와 다를 이유가 없다. 그러나 대중을 위한 대량 생산품만이 팔리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생산된 카카오를 쓸어 넣고 적당히 볶아서 첨가물 잔뜩 넣고 만드는 제품들이 주종이다. 최근 들어 기본으로 돌아가 카카오의 건강한 고유의 맛을 즐기자는 흐름도 있지만 대세는 그대로이다.

초콜릿은 어떻게 즐겨야 할까? 우리나라 초콜릿은 7 가지로 나뉘는데 나름 7등급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초콜릿, △스위트초콜릿, △밀크초콜릿, △패밀리밀크초콜릿, △화이트초콜릿, △준초콜릿, △초콜릿가공품으로 나뉘는데, '다크초콜릿'이라 부르는 명칭의 경우에는 순도 상(上)으로 1등급이라 할 수 있는 초콜릿 제품 중에 카카오 함유량이 높은 걸 편의상 부르는 이름이다.

초콜릿에 우유성분, 설탕을 넣는 것이야 기호상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 그렇다 치자. 그러나 '카카오버터'를 쓰지 않고 값이 싼 △식물성대체유지(야자유, 대두유, 코코넛유 따위)를 쓰고 △색소, 인공향료(합성착향료 - 바닐라, 매스킹 따위), △피막제, 유화제(글리세린비방산에스테르 따위) 등을 첨가한다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알아두어야 할 일이다. 녹여서 씌우고 굳히고 이리 저리 내돌려도 광택이 유지되고, 다루기 쉽다고 해서 많이들 쓴다. 확인하고 사 먹자.

초콜릿은 '제2의 피의 다이아몬드'라고도 불린다. 카카오 농장에서의 어린이 노동, 노동착취와 인신매매, 부당한 처우 등이 개선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로서 힘을 보태려면 초콜릿 구매에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공정무역 초콜릿'을 사먹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기는 것도 적절치는 않다. 시장의 공정함과 환경, 카카오 재배농민의 권리, 생산국의 민주주의까지 살펴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 지구촌 시민의 책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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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2/13 [16:4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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