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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도 헐리우드를 통해서만 봐야 한다?
[DakDoo의 소름돋기] 스크린쿼터인가 스크림쿼터인가
 
김정곤   기사입력  2003/11/17 [12:30]

1.산업으로써의 영화

스크린쿼터에 관한 글을 쓰기 전에 잠깐 Amazon.com을 포함한 각 국가별 Amazon 사이트들을 잠깐 돌아보고 각각의 영화판매 현황을 잠깐 살펴봤습니다만 역시나 오늘자 최대 판매 영화 역시 제가 알지 못하는 한편의 영화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미국 영화(방송 시리즈 포함)입니다.

▲현재 국내에 개봉중인 미국 영화들     ©씨네서울
자본주의 사회의 최대 가치는 바로 자본이며 모든 사회적 구성을 경제적 가치로 판단하며, 경제적 손익의 차원에서 모든 시스템을 구축해 나갑니다 이러한 경제적 판단은 문화/예술에도 예외는 아니며 단지 팔리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최대의 이슈로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자본중심의 사회에서 영화 역시 예외는 아니며 헐리웃 리포터를 통해서 언급되는 이슈 중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영화의 제작규모와 흥행 실적임을 대중 매체를 통해서 항상 듣고 보고있는 형편입니다.

사실 자본의 투자와 획득에서 영화만큼 위험한 투자는 그리 많지 않지요. 갖가지 변수들(사회의 흐름과 관객 층의 기호의 변화 등의)을 고려해야 하며 수많은 논의와 상황분석을 통해서도 상품으로써의 영화가 과연 어느 만큼의 수익을 낼 것인지는 어떤 흥행사도 예측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의 한판입니다. 이러한 예측불허의 변수들은 세계 어느 국가에도 존재하지만 단 곳의 예외가 존재하기도 합니다. 바로 헐리우드이죠.

그들은 세계 어느 국가도 감히 따라오지 못할 시스템으로 구축되어 있습니다. 지난 백 여년간 끈임 없이 성장해 오면서 쌓아올린 영화제작 시스템 노하우와 함께 언제나 헐리웃 리포터들이 부르짖는 그것! 바로 세계 최고의 자본 환경입니다.

1억$의 예산으로 포디즘을 극대화 한듯한 영화제작 시스템으로 관객의 기호와 동향을 정확하게 판단한 뒤 만들어내는 영화 한편과 1000만$에 못 미치는 예산으로 감독의 지적 호흡을 불어넣어 만드는 영화는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때 관객의 흐름이 어디로 흐를까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긴 하지만 헐리우드 영화는 절대 무너지지 않지요.

그들의 산업은 자국의 흥행 실적과는 무관합니다 뿌려진 자본을 회수하는 방식은 언제나 확실하지요. 전세계 판권의 판매와 직배를 통한 흥행 수입의 배분 비디오/DVD 판권 판매와 각종 케릭터 상품들, 그리고 무수한 관련 상품을 통해 그들은 악착같이 한 방울의 피까지도 아낌없이 빨아들입니다.

지금 전세계에서 그들이 원하는 데로 영화라는 상품을 수출할 만한 곳이 몇 군데나 될까요 단언하건 데 헐리우드 뿐이리라 확신합니다.

그럼 지금 우리의 영화환경은 어떨까요.

▲현재 개봉중인 한국영화들     ©씨네서울
현재 자국시장 점유율 50%를 바라보는 한국입니다. 하지만 그건 단지 한국이라는 작은 환경, 인구 5천만의 적은 인구 내에서 모든 투자비용을 회수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몇 년전 처음으로 영화수출 백만불을 돌파했다고 기사가 나오기도 했지요.

한국의 경우 이제 영화 수출 시스템을 마련하기 시작한 국가 입니다. 또한 아직까지 그리 많은 영화들을 수출하고 있지도 못한 형편이지요. 당연하지만 시작 단계에서부터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풀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 막강한 헐리우드도 현재의 수익 구조를 마련한 게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니까요.

그럼 아직은 세계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한국영화가 살아 남는 길은 자국관객을 한명이라도 더 붙잡는 것 이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그 무지막지한 자본과 엄청난 기술력으로 중무장한 헐리우드 영화에 맞서서 말이죠. 그런데 바로 여기에 무시무시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바로 자국 시장 점유율 50%라는 함정이지요.

현재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은 47%입니다. 전세계에서 자국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국가입니다 (몇몇 예외적인 국가들은 제외합니다). 보통 1년에 2~3편의 영화가 엄청난 흥행실적을 올리고 7~8편의 영화가 손해보지 않을 정도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올해 한국에서 제작되거나 내년까지 제작될 영화는 총165편으로 이미 제작이 완료되어 극장에 걸려진 영화들까지 합치면 거의 200편에 육박하는 영화들이 기획되고 만들어지고 있는 형편이지요. 그럼 일년에 만들어지는 영화들은 거의 100편 정도라고 봐도 무난합니다. 60년대 이후 최대의 제작편수를 기록하고 있지요. 다르게 보면 한국영화 과유불급의 시대라고 할만합니다. 게다가 각종 영화제작, 수입, 배급단체들 역시 1389개소로 영화 제작 편수의 10배가 넘는 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많은 단체와 한해 백여편의 영화들의 투자대비 수익이 얼마만큼이나 될까요. 정확한 수치는 알기 어렵지만 아마도 십여편의 영화들을 제외하고는 본전은 고사하고 극장에 걸리기조차 어려운 영화들이 수두룩 할겁니다. 영화의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말이죠.

그럼 지금 상태에서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거나 해제할 경우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요.

일단 극장주들은 철저한 상업 논리로써 수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영화들에 집중할 건 불 보듯 뻔한 사실이지요 그렇다면 한국영화계는 살아 남기 위한 영화제작 체제로 돌입하게 될 겁니다. 일단 흥행이 되어야 다음 영화를 만들 자본이 형성이 되니까요. 또한 중소규모 업체들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할 겁니다. 극장에 영화를 걸기 위해선 당연히 배급사에서 배급을 해줘야 하지만 수익이 불분명한 영화를 배급해줄 배급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차피 한국영화를 걸지 않아도 상관없다면 말이죠.

때문에 대형 제작사들은 장사가 될 수 있는 영화들에 집중 투자하게 되고 축소되거나 해제된 스크린쿼터의 상황을 개척하기 위해 관객의 입맛에 맞을 영화들만을 선택적으로 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쯤 되면 이제는 헐리우드의 거대 영화와의 싸움이 아니라 국내 영화사들간의 스크린 쟁탈전으로 바뀌어 한국 영화들끼리 배급 선점을 위한 피 터지는 싸움으로 변질되게 될 겁니다. 물론 거기서 헐리우드는 어부지리를 얻게 될 거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겠지요.

현 자본 사회에서는 자본의 수익이 모든 걸 말해 줍니다. 아무리 그 영화가 뛰어나고 우리의 문화환경을 살찌운다고 해도 일단 시장에서 살아 남아야 그 가치를 인정 받게 마련이고, 거대 헐리우드의 상업 영화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은 스크린쿼터 뿐입니다.

2.문화로써의 영화

한 국가의 문화는 그 나라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수한 세월과 역사적인 사건들 속에 이루어지고 가꾸어진 문화는 그 국가의 국민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고 또 어떠한 사고방식과 생활양식,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상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 것을 찾자거나 우리의 문화를 지키자는 말들이 많이 있고, 또 각종 방송 프로그램이나 각종 매체에서 우리의 문화를 발굴하고 지키기 위해서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요 판소리, 국악, 도예, 티비드라마인 대장금에서처럼 한국 고유의 의식주 문화들...

그런데 한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지요 바로 지금 이땅을 사는 사람들의 문화입니다

한 나라의 문화는 역사적 흐름에 따른 이해가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발생하는 우리의 사고와 행동 양식을 지배하는 흐름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문화를 지키고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문화를 좀 더 발전시키고 다양화 하는 것 또한 아주 중요한 일이지요.

또한 보통 문화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어떤 고유의 것이나 문학, 회화 등의 예술 작품들, 그리고 연극이나 뮤지컬 등의 공연 예술을 떠올리고는 하지만 지금 우리가 입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행위들을 문화라는 측면에서 보려고는 잘 하지 않습니다. 단지 지적이 필요할 경우에만 음주문화 또는 십대문화 등으로 세분화해서 말하고 들 하지요.

이러한 문화의 최전선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영화 그리고 티비 프로그램(방송 광고를 포함한)들 입니다.

이중 티비 프로그램이 일회성의 소비적 성격이 강하다면 영화는 그 시대의 흐름과 문화적 유행을 증거 하는 문화 기록장치 입니다. 이는 영화라는 매체(각종 다큐멘터리와 여타의 영상 기록을 모두 포함한) 최대의 특징이자 장점이지요. 그래서 옛날 영화의 기록을 통해서 그 시대의 각종 의식주 형태와 사고의 변화, 시대의 흐름을 감지하기도 합니다

자 이제 미국 영화를 한번 둘러 보도록 하지요 1895년 최초의 공개 상영 이후부터 현재까지 그들은 끊임없이 영화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 수십만 편의 다양한 영화들에 기록되어 있는 다양한 영화들 그건 미국이란 국가의 훌륭한 자산임에 다름 아닙니다

그리고 그 영화들에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가치를 아주 훌륭하게(그들의 시각에서) 담아내고 있지요. 30년대 대공황 하에서는 스크류볼 코메디를 주류로 그들의 현실을 잊게 만들면서 조금만 참아내면 다시 잘될 수 있다는 기대 심리를 은연중에 퍼트리고 2차 대전간에는 각종 다큐와 뉴스 영화들, 그리고 수많은 전쟁 영화들을 통해서 그들의 정당성과 우월성을 강조해 나갔으며, 56년의 맥카시 열풍 때를 시작으로 제작되기 시작하는 공산주의자=악당이라는 공식으로, 또 수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지며 자본주의 사회의 우월성과 자본주의=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한 공식을 생산해 냅니다.

이러한 문화적 정치성이 첨가된 미국 영화는 헐리우드를 중심으로 정치권과 군수업체의 엄청난 권력과 재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오락으로써의 영화를 생산해 나가게 되고, 수많은 자본이 투자된 그 영화들은 또 다시 수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됩니다.

한국 역시 20년대부터 이미 미국 영화들이 점령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 때문에 일제가 미국산 영화의 수입을 금지했던 기록 역시 있습니다.

단지 영화일 뿐인 이 미국 영화들을 일제가 왜 금지 시켰을까요. 당시까지는 일본과 미국의 사이가 그리 나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영화에는 어떤 식으로든 정치성이 첨가될 수 밖에 없고, 그러한 정치성이 당시 강점기 조선 사회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조치라는 건 당연한 일일 테지요.

지금 현재 미국의 전세계 영화시장 점유율은 85%에 이릅니다.

이미 미국식 문화 가치들이 그만큼 퍼져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콜라, 맥도날드, 나이키, 마이클 조던 등의 미국식 문화 가치들은 이미 자연스럽게 우리 곁에 들어와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미국산 영화들을 보면서 별 거부감을 가지지 못할 겁니다. 분명히 문자화 되어있는 다양한 문화적 거부감들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거부감을 나타내면서도 영상화 된 이미지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우리 주변에 침투하고 있지요. 그만큼 우리에게 미국산 영화들이 가지는 문화적 이질감이 상쇄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문화를 담아내는 그릇으로써의 한국영화 입니다.

한국이라는 국가의 특수한 문화적 담론과 환경을 담아낼 그릇은 당연하게도 한국영화 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스크린쿼터의 축소/폐지는 앞서 이야기한 시장 논리에 먹혀 버리는 건 자본사회에서는 당연한 이치이지요 적자생존의 원칙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화를 담아낼 수 있었던 영화라는 그릇이 이가 빠지고 금이 가서 아주 조금의 양밖에(흔히들 욕하는 저질 영화라는) 담아낼 수 없다면, 그리고 그 나머지를 미국이라는 곳의 문화로 채운다면 우리의 문화는 어디로 향해야 할까요.

▲스크린쿼터제 축소에 반대하는 영화인들    
이미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방면에 걸쳐서 미국 문화가 충분하게 퍼져 있습니다. 장례식장에서는 검정색 정장을 입어야 하고 미국식 파티와 각종 패밀리 레스토랑 등등... 이제 충분하지 않을까요. 아니 더 들어온다고 해서 그렇게 불만이 있을 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질적인 문화들 때문에 우리의 문화를 읽어버린다면 우리에게 이익일까요 손해일까요.

현재 우리 영화시장의 점유율은 47%입니다. 하지만 헐리우드의 우리시장 점유율은 50%이지요. 그리고 현재 실제적인 스크린쿼터율은 106일로 일년 중 29% 밖에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더 얼마를 줄이고 얼마를 헐리우드에게 넘겨 줘야 할까요. 또한 스크린쿼터를 축소/폐지 했을 때 그 공백을 차지하게 될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일까요 아니면 한국 영화일까요 아니면 다른 나라 영화들?

스크린쿼터의 유지는 단지 영화계의 밥그릇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화를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부이며,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우리만이 아니라 전 세계는 이미 헐리우드의 힘과 자본에 먹혀버린 상태이지요. 그렇다고 우리마저 도 그들에게 우리의 그릇을 넘겨야 할까요.

물론 이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 역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어진 헐리우드의 세계화를 보자면 스크린쿼터의 축소/폐지가 절대로 긍정적으로 보이질 않는군요.

3. 그리고...

또 다시 한미투자협정(BIT)의 이슈로 스크린쿼터 논의가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단지 자동차 몇 만대의 수출실적과 비교 당할만한 문화산업으로 치부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지요. 영화가 가지는 문화적 스펙트럼은 아주 광범위 하지요. 동시대의 모든 문화들이 스크린에 담겨질 수 있습니다. 또한 각종 문화의 최전방에서 악전고투 하고 있기도 하지요. 문화는 여타의 상품처럼 협정 대상이 아니라 지키고 가꿔야 할 대상입니다.

물론 영화는 하나의 작품이자 상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문화까지 상품으로 매도 해서는 안되지요. 그래서 '문화를 팔자'가 아니라 '문화를 알리자'인 겁니다.

또한 지금의 스크린쿼터 투쟁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 받고 밥그릇 싸움으로 몰리는지 영화인들 역시 진지하게 고민해 보실 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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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11/17 [12:3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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