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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시대와 싸우는 거리의 의원들
[김영호 칼럼] '언론악법 장외투쟁' 민주당 의원들, 국회서 '정의' 외쳐야
 
김영호   기사입력  2009/11/18 [10:32]

 시계가 거꾸로 가는 모양이다. 20, 30년전 군사독재 시절에 보았던 모습이 자주 목도된다.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거나 정부정책을 반대하면 마구 잡아 가둔다. 경찰의 곤봉과 검찰의 공소권이 헌법 위에 군림하는 형세다. 표현-집회-결사의 자유는 헌법에나 있는 사문(死文)일뿐이다. 집권당도 다를 바 없다. 국회에서 다수의 힘이 날치기로 밀어붙이면 그것이 곧 법이다. 절차상의 불법, 위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옛날 관권-금권선거로 태어난 국회와 너무나 닮은꼴이다.

 7월 22일 국회는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소관 상임위에 상정도 되지 않은 신문법-방송법개정안을 의장직권으로 상정하고 제안설명, 심의절차, 질의토론도 생략한 채 날치기 처리했다. 표결절차도 위법 투성이다.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배하고 재투표를 실시했고 그 이전에 무더기 사전투표가 있었다. 여기에다 대리투표까지 있었다. 초등학생들도 잘 알만큼 위법성이 너무나 명백하다. TV화면을 통해 그것을 지켜본 국민의 눈에는 의당 무효였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 지난 7월22일 한나라당 의원들과 이윤성 국회부의장은 야당 의원들의 극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신문법과 방송법 등 언론관계법을 강행처리했다.     © CBS노컷뉴스

 그래도 정의로운 의원들이 있어 한 가닥의 희망을 준다. 국회가 불법, 위법, 무법을 부끄러워하지 않자 의원직을 버리고 국민 속으로 뛰어 들었다. 민주당의 정세균, 천정배, 최문순 의원이 그들이다. 이런 판국이라면 소수당은 어떤 악법도 막을 수 없다는 국회현실을 처절하게 절감한 듯싶다. 언론법 개정을 반대해온 언론노조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민주당한테 의원직을 걸고라도 막으라고 당부한 게 사실이다. 집단사퇴를 배수진으로 치고 한나라당의 날치기를 막으라는 호소였지 개별사퇴를 요구했던 것은 아니다.

 세 의원은 의원회관 사무실을 폐쇄했다. 보좌진도 철수하고 세비도 수령하지 않는다. 다만 정세균 의원은 당대표이니 당무를 보느라 당대표실로 나간다. 천정배, 최문순 의원은 거리로 나가 ‘촛불’과 ‘누리꾼’의 손을 잡고 방송장악의 파괴성을 국민에게 알리고 있다. 그 날 이후 명동 거리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비바람이 몰아쳐도 ‘언론악법 원천무효’ 외치며 시민들을 상대로 서명운동을 펴왔다. 민주당 조직을 통한 서명도 있었지만 200만명의 서명을 받아 헌재에 제출했다. 아마 서명운동 사상 최대의 규모일 것같다.

 그 사이 천정배 의원은 17일 동안 포장마차를 끌고 전국을 누비며 서명운동을 폈다. 국민의 소리를 들으면서 정치인으로서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고 죄송스럽기도 했다는 것이 그의 소회다. 여러 대학을 돌며 강연을 통해 대학생들과 호흡을 같이 하기도 했다. 법무부 장관 출신인 그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임박하자 10월 20일부터 헌재 정문 앞에서 2박3일간 올바를 판결을 촉구하는 노숙농성을 벌였다. 헌재마저 그에게 또 다른 절망감을 안겨준 것같다.
 
▲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을 앞두고 천정배 의원은 헌재 앞에서 1인시위에 돌입했다.     ©대자보

 언론노조 위원장, MBC 사장을 지낸 최문순 의원은 명동 서명대를 늘 지켰다. 방송기자 출신인 그야 말로 정치권력이 왜 방송장악을 노리는지 몸으로 터득한 터이니 그런 절연한 모습이 나오는 것같다. 헌재의 결정이 가까워지자 그는 우이동 화계사로 들어가 10월 23일부터 7일간 올바른 판결을 기원하는 뜻에서 2만배를 올렸다. 국회의원을 떠나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선택이 없는 무력감에서 몸을 던졌을 것이다. 헌재의 절망적인 결정이 그에게 고통과 통증을 더해줬을 듯하다. 

 절차상의 위법성은 인정하면서도 가결선포는 무효가 아니라는 헌재의 판결이 나자 한겨레 신문 기자 출신인 장세환 의원이 의원직을 버리고 이 대열에 가세했다. 헌재의 결정이 비겁하나 국회의 자율권을 존중하니 국회가 알아서 풀라는 뜻인데 한나라당과 국회의장의 묵살이 그를 분노케 했다고 한다. 그는 정의와 양심에 따른 결단이라고 말한다. 천만 국민 만나기 운동을 펴겠다는 뜻을 밝힌다. 민주당과 시민단체의 힘만으로는 지금 상황을 돌파할 수 없어 국민과 함께 가기로 마음을 다졌다는 것이 그의 술회다.

 국회가 위법을 저질렀고 헌재가 인정했다면 김형오 국회의장은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법을 무시하는 이 야만시대. 정작 국회를 지켜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그들이 비운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져 하는 말이다. 사퇴의원들은 국회로 돌아가기 바란다. 국회에서 정의를 말하는 용기가 어느 때보다 소중하다. 거리에서 싸우는 시민들이 하는 소리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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