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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이 큰 일 해냈다”
[김영호 칼럼] 정운찬 내정으로 MB의 '친서민 중도실용' 의미 반감돼
 
김영호   기사입력  2009/09/29 [09:47]

 정운찬. 충청도 출신으로 서울대 총장을 지낸 저명한 경제학자로 알려진 인사이다. 그는 고명한 학식에다 고고한 인품을 갖춘 인물로 알려져 대통령감으로 거론되곤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를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할 때 회심의 미소를 띠었을 것같다. 이회창 의원이 포진한 충청도를 포섭하는 정치적 의미가 크다. 그 까닭에 세종시가 행정적으로 비효율적이라는 그의 발언을 빌미로 자유선진당이 드세게 반발한다.

 뚜렷한 대통령감이 없어 인물난을 겪고 있는 야권에 장타를 날렸다. 뒤통수를 맞은 충격을 감추지 못한 민주당의 모습에서도 그 타격의 강도를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친서민 중도실용을 표방한 이후 상승세를 타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에 가편(加鞭)의 의미를 더한다. 실체가 불분명한 친서민 중도실용 노선의 포장용으로는 그가 더 할 나위가 없는 정치적 효용성을 가졌다. 

 그러나 이 모두 한 순간이었다. 인사청문회에서 그의 허물이 양파껍질처럼 벗겨지며 허상은 무너지고 실상이 드러났다. 위장전입에 따른 주민등록법 위반, 서울대 총장 재직시 공직자 재산신고에서 일부소득 누락으로 인한 공직자윤리법 위반, 학교승인 없이 사기업체 고문 겸직에 따른 국가공무원법 위반, 일부 소득 종합소득세 미신고로 인한 세금탈루, 지출이 수입보다 많은데 예금이 3억2,000만원 증가한 의혹과 이에 따른 위증논란, 논문 중복게재, 병역기피, 부인 위장전입, 아들 한국국적 상실 등등 공직자로서의 흠결이 꼬리를 물었다.
 
▲ 지난 21일 부터 이틀 간 진행된 인사청문회에서 온갖 의혹이 제기된 정운찬 신임 국무총리  ©CBS노컷뉴스

 이 정도의 허물이라면 과거 정권의 인사청문회에서는 낙마하고도 남을 수준이다. 궁금한 점은 자신이 자신을 가장 잘 알텐데 어떻게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하리라 믿고 총리직을 수락했는지 모르겠다. 그는 때로는 정부의 경제정책에 쓴 소리를 내 폭넓은 호감을 얻기도 했다. 그런 그였건만 소신은 어디로 가고 연신 굴신하는 처신에서 불신만 키웠다.

 자질과 능력을 떠나서 답변이 너무 옹색했다. 그가 병역의무를 기피한 것은 사실이다. 솔직히 인생의 정수 같은 시기에 학업을 포기하고 3년간을 사회와 격리되어 허송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미국에 유학 가서 소집을 미루다 나이가 넘어 면제 받았을 것이다. “소집을 통보받지 못해 몰랐다.” “어릴 때 항상 군복무를 마치고 싶었다.” 변명치고는 너무 구차했다.

 유학중 미국에서 태어난 아들의 국적포기도 논란거리다. 아들이 미국국적을 포기하려고 하자 자신이 나서 유학가면 학비감면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만류했다는 것이다. 그의 국가관이 국정운영의 최고책임자로서 적합한지 의문을 들게 하는 대목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감지했는지 총리지명 이후에 미국국적 포기를 신청했다고 한다. 그는 청문회에서 종합소득세 미신고가 드러나자 그 이튿날 납부한 바도 있다. 사후의 교정이 면죄부가 될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아마추어 화가라고 말하는 그의 아내 그림이 고가에 팔린데 대해 “아내가 전시회할 때 일체 알리지 않았다”다고 대답했다. 전시기사가 3일 전에 신문에 보도됐는데도 그렇게 말했다. 전시 자체가 알리는 행위인데 알리지 말라니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왜 재산신고에 누락했느냐에 질문에 대해서는 “그림이 재산인지 몰랐다”는 대답을 내놨다. 재산이 아닌데 어찌 비싼 값에 팔렸는지 그가 알 일이다. 

 그를 서울대 총장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는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한테서 1,000만원을 받았다고 실토했다. “해외에 나갈 때 두 번에 걸쳐 너무 궁핍하게 살지 말라고 해 소액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봉급에다 부수입을 고려하면 그는 궁핍한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1,000만원은 결코 소액이 아니다. 그의 답변은 생활고로 고통 받는 서민에게 절망감과 함께 좌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백씨는 이른바 ‘미국 스파이 사건’에 연루되어 국회에서 위증한 혐의 등으로 고발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선고를 받은 인물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앞둔 즈음 언론은 정운찬씨를 후보감으로 거론하고 그의 행보를 보도하곤 했다. 그는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바도 있다. 그런데 청문회에서 “대선후보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대통령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청문회를 거치는 동안 온갖 흠결 탓에 생각을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주위에서 권유도 적지 않았을 텐데 생각도 하지 않았다니 믿기 어려운 말이다.

 용산참사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농성자들이 투척한 화염병 때문이다”가 그의 답변이었다. 설사 그렇다고 치자.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할 임무를 가진 경찰이라면 안전망을 치고 진압에 나서야 하지 않나? 검찰이 3,000쪽 분량의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는데 대해서도 “화재사고 입증과 관련이 없는 서류이다”라고 검찰의 말을 되뇌었다. 사건전모를 파악하려고 검찰이 수사를 벌였을 텐데 왜 무관하다는지 알고나 하는 말인지 묻고 싶다. 
 
▲ 정운찬 신임 국무총리가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CBS노컷뉴스

 이 정부의 정책방향에 동조하려고 평소의 소신과 달리 집권세력과 같은 음색을 내는지 몰라도 판에 박은 듯한 소리에서 참신성도 개혁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금산분리 완화를 비판하던 그가 은행의 산업자본 사금고화를 방지하기 위한 보완장치가 필요하다는 선으로 물러섰다. 하지만 언론법 파동에 대해 근거 없는 고용창출로 포장한 산업론을 옹호하더니 “여론독과점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고 주장했다. 국정전반에 대해 다 알 수는 없는 일이다. 모르면 모른다는 답변이 정답이다.

 4대강 살리기는 한반도 대운하와 다르기 때문에 찬성한다는 그의 말. 한국경제를 미국경제에 종속화시키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의 문제점을 애써 비켜가는 그의 자세. 청년실업 대책에 대해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그의 답변. 실망감을 넘어 절망감을 안겨줬다. 서면답변의 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했는지 실무진이 작성했다는 말은 실소마저 자아내게 했다.

 이 대통령의 그의 발탁은 친서민 중도실용의 지향점을 시사하는 의미를 갖었다. 많은 국민들은 이 정부의 편협성-독단성의 균형자로서 그의 역할에 기대를 걸었을 것이다. 결국 그의 발탁이 지닌 의미는 반감되고 말았다. 상처뿐인 영광을 안고 총리직을 잘 수행할지도 의문이다. 세간에는 이런 말이 나돈다. “이 대통령이 큰일을 해냈다”고 말이다. 이번 여과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로 옹립된다면 국민은 낭패를 당할 뻔했다는 소리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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