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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는 '대운하식 부양론' 전면 거부해야
[논단] 장 교수, 한반도 대운하를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지목…유감
 
홍헌호   기사입력  2008/01/31 [17:53]
31일자 <연합뉴스>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그 주요 골자는 “경기부양이 필요할 때는 부양책도 써야한다”는 것이었는데요. 저도 물론 장교수의 원론적인 의견에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러나 모든 정책수단들은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또 수단에 따라, 때에 따라 양자의 크기가 매우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어떤 정책의 명분과 목표가 옳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정책수단을 선택할 때는 매우 신중해져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장하준 교수가 한반도 대운하사업을 경기부양의 한 수단으로 지목한데 대해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반도대운하사업의 역기능은 단순히 환경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연합뉴스 기자 질문)--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대운하 정책에 대한 입장은.
(장하준 교수 답변)-- 원론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결국은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보는데 제대로 토론을 좀 해야 된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도 댐을 짓고 해서 경기를 부양한 예도 있어 그런 점에서는 반대를 안 하지만 문제는 자연을 크게 바꾸는 것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환경 문제도 있고 하니 잘 검토를 해야 한다. 검토해서 괜찮다고 나오면 경기부양도 되고 그게 다 뉴딜정책 아니냐. 다만 프로젝트 자체가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아서 그런 차원에서 걱정을 하고 있다.”

케인즈와 루즈벨트식 경기부양책, 만병통치약 아니다

장교수는 인터뷰에서 이명박 당선인의 대운하 정책을 “원론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결국은 할 수도 있는 것이”며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도 댐을 짓고 해서 경기를 부양한 예도 있”다고 말했는데요. 우리가 과연 1930년대 루즈벨트의 처방을 2000년대 한국에서도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더 꼼꼼이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1990년대 일본이 거품붕괴의 위기를 극복한다는 미명아래 루즈벨트식 경기부양책을 남발하여 크게 실패한 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한국조세연구원이 2002년에 발간한 연구보고서의 일부 내용입니다.

“일본의 경우 사회간접자본의 정비를 빌미로 추진된 공공사업의 상당부분이 낭비되고 비효율적이라는 징표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근래 어느 마을에서나 음악당,박물관,민예관,체육관 등 다수의 훌륭한 건물이 생기게 되었는데 재정상황이 매우 나쁜 상태에서 과연 개개 마을마다 이렇게 훌륭한 시설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깊은 산 속에도 훌륭한 도로가 만들어져 있는데도 건설성에서 나오는 도로포장율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높아지지 않는다. 또한 전국 각지에 엄청나게 많은 심포니 홀들이 만들어지고 있으나 그만한 수의 악단은 일본에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한다.”-최광(2002), 일본의 경제정책과 재정정책,조세연구원.

워낙에 1920년대 후반 대공황이라는 사건이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는데 크게 기여한 케인즈와 루즈벨트의 명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들의 처방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걸리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케인즈 사상의 근저에는 ‘생산력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정윤형 박사는 그의 저서 “서양경제사상사연구”에서 모리스 돕(M. Dobb)이 케인즈를 비판하는 이유를 소개하고 있는데, 정박사에 의하면 모리스 돕이 케인즈를 비판한 이유는 케인즈 사상의 근저에 ‘생산력에 대한 공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정부의 투자지출이 유효수요 창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투자가 직접,간접으로 생산력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한다면 거기에서 오는 추가공급(또는 거기에서 오는 소득증가)이 다시 대공황과 같은 불황을 불러 올 수 있기 때문에 케인즈는 의식적으로 정부의 생산적인 투자를 기피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케인즈는 낭비적인 공채(公債)지출, 피라밋 건축, 지진, 전쟁 등이 불황 타개에 아주 유효하다고 말하고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예를 들었습니다.

“가령 재무부가 낡은 항아리에 은행권을 가득 채워 그것을 버려진 탄갱 속 적당히 깊은  곳에 놓은 다음에 갱도를 지면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쓰레기로 묻어버린 후...사기업으로 하여금 자유로이 그 은행권을 파가게 한다면 더 이상 실업이 존재할 이유가 없고..”--케인즈(1936),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29p.

케인즈는 왜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한 것일까. 모리스 돕 등에 의하면 그가 당시의 상황을 해결할 불가피한 대안으로 ‘생산물의 증가를 수반하지 않는 낭비적 투자, 즉 비생산적인 투자’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모리스 돕 등의 케인즈 비판이 어느 정도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케인즈 지지자들 사이에서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1990년대 일본의 재정낭비사례에서 보듯이 무분별한 건설투자는 그 부작용이 매우 큽니다.

산업연관표는 경제의 동태적인 측면을 전혀 다루지 못해.

서울대 이준구 교수도 한반도대운하사업을 비판한 최근 글에서 지적했다시피 우리나라 건설투자 국책사업에 관한 보고서들이 대부분 다 산업연관표라는 분석도구를 활용하여 그 경제적 효과를 크게 과장하여 뻥튀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업연관표라는 것은 경제분석도구로서 치명적인 약점, 즉 경제의 동태적인 측면을 전혀 다루지 못하고 정태적인 측면만을 다루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도구를 다룰 때는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2003년 산업연관표에 의하면 경제주체들이 10억을 투자하면 작물농업분야에서는 60명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전기전자 산업에 10억을 투자하면 3명 정도의 고용창출만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농업과 전기전자산업의 생산유발계수는 각각 1.680,  1.714로서 유사합니다.

즉 산업연관표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이 생산유발계수이고 고용유발계수인데 농업과 전기전자산업의 경쟁력 비교에서 후자는 전자에 비해 생산유발효과에서 별다른 우위를 보이지 못하고 고용유발효과에서는 치명적인 열세를 보이는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산업연관표 자체가 경제의 동태적인 측면을 전혀 다루지 못하고 정태적인 측면만을 다루는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건설투자 국책사업에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람들은 이 도구를 무척이나 애용합니다. 건설투자에 관한 산업연관표 지표들이 그들에게 매우 우호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당선인 측근들도 산업연관표 운운하면서 경부운하 건설로 30만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고 12조의 생산유발효과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런 주장들은 전혀 근거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사업을 추진하는 추진주체들이 20조 원을 경부운하건설에 투자한 이후 충분한 수익을 남기지 못하고 아주 약소한 수익만 남기며 운하운영비 충당에 급급한다면 이들은 이 사업으로 매년 1조원씩의 적자를 떠안을 수도 있습니다. 이거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또 산업연관표의 지표들을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경부운하 건설로 30만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2003년 토목건설업 고용계수는 8.6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즉 10억 추가 투자로 8.6명의 추가고용만이 가능하기 때문에 2003년 기준으로 5년간 20조 원의 투자, 즉 매년 4조 원의 투자는 3만 4400명의 고용만을 창출하게 할 뿐입니다.

고용계수가 6.5정도로 떨어지는 2009년 경에는 2만 6000명의 추가고용이 가능하게 할 뿐이고 말입니다. 이 정도의 고용창출효과는 매년 1조원의 추가 적자를 가져 올 수도 있는 경부운하 건설사업의 천문학적 추가 비용과 비교해 볼 때 정말 미미한 수준입니다.

따라서 이명박 당선인 측근들은 1990년대 일본의 중앙정부, 지방정부가 자신들과 유사한 꿈을 꾸다가 천문학적인 빚더미에 앉았다는 사실을 깊이 새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시기적으로 보더라도 지금과 같이 부동산 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는 대운하건설과 같은 부양책을 써서 거품을 더 키워서는 곤란합니다. 지금보다 경기가 더 나빠진다면 어느 시기에 가서 부동산 거품도 붕괴될 터인데 그렇게 된다면 거품이 큰 만큼 붕괴의 충격도 더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기위축기에 경기부양책이 성공하려면 거품의 크기가 너무 커서는 곤란합니다. 경기부양책은 급속히 냉각되는 국민들의 소비심리,투자심리를 회복시켜 놓기 위하여 추진하는 것인데 만일 거품이 지나치게 커서 붕괴의 충격도 너무 크면 부양책을 써도 일본처럼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세훈 시장의 컬쳐노믹스도 부동산시장이 불안할 때는 부적절.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 추진되고 있는 이명박 당선자의 대운하건설사업과 더불어 오세훈 시장의 컬쳐노믹스(Cultunomics, 문화와 경제의 합성어)사업도 현시점에서는 매우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컬쳐노믹스는 나중에 경기위축이 본격화된 시점에서 추진해야 옳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컬쳐노믹스 자체가 도시가치를 높이는 것인데, 도시가치를 높인다는 것은 부동산 가치도 높인다는 의미이므로 현재와 같이 여전히 부동산 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는 거품을 더 부풀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어떤 정책이든 그 명분이나 목표가 옳다하여 아무 때나 아무 수단이나 함부로 써서는 곤란합니다. 때에 따라, 수단에 따라 정책의 역기능이 순기능보다 더 크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정책전문가는 항상 긴장하며 실사구시적 태도를 충실하게 견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 필자는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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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1/31 [17:5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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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애편지 2008/02/04 [15:42] 수정 | 삭제
  •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는 것 같아 감사하다는 말씀 남기고 갑니다...
    왠지 장하준씨의 반응은 다분히 예상이 됬지만.. 초큼 아쉽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자주 올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