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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정치권, 언론이 죽인 ‘반값아파트’
[논단] 홍준표식 '반값아파트'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다섯 가지 이유
 
이태경   기사입력  2007/10/18 [09:47]
이른바 '반값아파트' 실험이 실패했다고 온통 떠들썩하다. 토지임대부 및 환매조건부 주택으로 구성된 '반값아파트' 분양이 극히 저조하다는 것이 이런 분석의 주요 근거다. 여기에 청와대까지 가세하고 있다. 청와대는 '반값아파트' 정책이 참여정부 주택정책의 본류가 아니며 '반값아파트'는 정치권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등을 떠밀려 추진했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극히 저조한 청약률을 놓고 보면 반값 아파트 실험이 좌초할 위기에 빠진 건 사실인 성 싶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건 '반값아파트' 실패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 '반값아파트' 단지의 분양방식인 토지임대부-건물분양 방식 및 환매조건부 방식은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책수단들이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부터 최근 추진한 '반값아파트'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차근차근 짚어보기로 한다.
 
잘못된 명칭과 불분명한 정책 목표가 실패를 예고
 
첫째, '반값아파트'라는 이름 자체가 잘못됐다
 
주지하다시피 '반값아파트'라는 말을 유행시킨 장본인은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다. 홍준표 의원은 대지임대부 건물분양 방식을 '반값아파트'로 과대포장 해 적지 않은 인기를 누린 바 있다. 그러나 토지임대부-건물분양 방식의 원조라 할 토지정의시민연대는 홍 의원이 '반값아파트'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부터 용어 선택이 적절치 않음을 누누이 지적해왔다.
 
기실 토지임대부-건물분양 방식은 토지는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 등이 소유하고 건물만 민간에 분양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분양가 자체는 기존 분양가의 절반 수준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 '반값아파트'라고 명명하는 건 시장 참여자들로 하여금 마치 일반 분양 아파트를 반값에 공급하는 것 같은 착시현상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그런데 최근 주공이 부곡택지개발지구 내에 분양한 토지임대부 및 환매조건부 시범단지를 각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반값아파트'라고 명명하면서 시장참여자들의 기대치를 한껏 높여놓았고 그 실상이 드러나자 청약신청이 매우 저조하게 됐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반값아파트'와 같이 포퓰리즘적 성격이 짙은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옳다.
 
둘째, 정책 목표가 불분명했다
 
이번에 환매조건부 및 토지임대부 방식으로 분양된 시범단지는 추구하는 정책목표가 불분명했다. 환매조건부 아파트는 주변 시세와 별반 차이가 없고 토지임대부-건물분양 아파트의 임대료도 어떻게 책정됐는지 석연치 않다.
 
무릇 정부의 정책 수립 및 집행에는 분명한 정책목표의 설정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부곡 시범단지는 어떤 정책 목표 하에서 추진됐는지 도대체 알 길이 없다. 만약 토지의 공공성을 확보할 목적이었다면 토지임대부-건물분양 아파트의 임대료를 시장가치대로 책정해야 했고, 주거복지 차원이었다면 환매조건부 아파트 및 토지임대부-건물 분양 아파트의 분양가를 주변시세 보다 대폭 낮추고 토지임대부-건물분양 아파트의 임대료도 시장 가치를 크게 하회하는 수준에서 책정해야 했다.
 
그런데 부곡 시범단지는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정책 목표 가운데 어느 것 하나 겨냥하고 있지 않다. 달성하고자 하는 정책 목표도 없이 추진된 사업이 성공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군포 부곡 시범단지는 망망대해에 외롭게 떠 있는 섬
 
셋째, 향후 공공택지에서 분양하는 주택은 토지임대부-건물분양 및 환매조건부 방식으로 공급한다는 예고가 없었다
 
장래 공공택지에서 분양하는 주택은 토지임대부-건물분양 및 환매조건부 방식으로만 공급한다는 계획을 천명하지 않은 채 추진한 부곡 시범단지는 불로소득이라는 이름의 망망대해에 떠 있는 고도(孤島)와 같은 처지였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계획 천명도 없는 상황에서 아무런 불로소득을 기대할 수 없는 부곡 시범단지에 입주하려는 사람이 적은 건 당연하다 하겠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토지임대부-건물분양 및 환매조건부 방식이 성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앞으로 공공택지에서 분양하는 주택은 토지임대부-건물분양 및 환매조건부 방식으로만 공급한다는 정부의 의지 표명이다.
 
별 다른 실익(메리트)이 없는 군포 부곡 시범단지
 
넷째, 분양가격이 너무 높았다
 
부곡 시범단지는 '반값아파트'라는 명칭과는 다르게 분양가가 만만치 않은 수준이었다. 부곡 시범단지 내 토지임대-건물분양 방식 74㎡주택의 분양가는 층수에 따라 1억2850만원~1억3900만원이고, 84㎡주택의 분양가는 1억4700만원~1억5940만원이었다. 또한 환매조건부 분양방식 주택의 경우는 74㎡주택의 분양가가 층수에 따라 2억800만원~2억2550만원이고, 84㎡주택은 2억3790만원~2억5800만원이었다.
 
이 정도 가격수준이면 시장참여자가 차라리 급매물로 나온 일반 주택을 구매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불로소득을 거의 얻을 수 없는데다 소량만 공급되는 시범단지가 가격마저 별로 싸지 않다면 소비자들이 외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청와대를 포함한 정치권과 언론의 책임이 커
 
다섯째, 청와대 등을 포함한 정치권과 언론이 무관심했다
 
최근 '반값아파트' 분양저조에 대한 청와대의 냉소적 태도를 보면 참여정부가 토지임대부-건물분양 및 환매조건부 분양 방식이 부동산 시장에서 차지하는 함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익히 알다시피 부동산 문제의 근본원인은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이다. 따라서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차단하거나 환수해야 하며, 주택의 공급방식도 이런 방식을 지향해야 한다. 토지임대부-건물분양 방식이 정확히 이에 부합하며 환매조건부 분양방식도 유의미한 옵션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토지임대부-건물분양 및 환매조건부 분양방식의 유효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청와대가 이런 자세를 가지고 있으니 주공이 시범단지 성공에 미온적이었던 것도 이해가 간다. 지금이라도 청와대는 토지임대부-건물분양 방식 및 환매조건부 분양방식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이를 주택공급정책의 근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 구석구석을 들여다 본 이태경의 『한국사회의 속살』.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등 4개 분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학술정보, 2007
여야 정치권도 군포 부곡 시범단지 분양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들은 '반값아파트' 공급이 가능하다고 주장해 많은 인기를 누린 뒤 이를 제도화 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언론의 보도태도도 부곡 시범단지의 성공을 가로막는데 일조했다. 언론 대부분이 '반값아파트'라는 이름으로 부곡 시범단지를 희화화(戱畵化)하는데 열중했고 분양이 저조하자 반시장적 정책의 실패는 당연하다느니, 주택을 주요한 재산증식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국민들의 의식에 반한 정책이었다느니 하는 따위의 분석을 하기에 급급하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들 대다수는 주택을 가장 주요한 재테크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토지임대부-건물분양이나 환매조건부 건물분양이 일반적인 주택공급방식으로 안착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자면 이런 국민들의 잘못된 인식을 반드시 바꾸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한데, 현재 대다수의 대한민국 언론은 이런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 부곡 시범단지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와 관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부곡 시범단지 내의 '반값아파트' 실험은 성공할래야 성공할 수 없는 조건 위에서 추진된 사업이었다. 모쪼록 차기 정부는 이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토지임대부-건물분양 및 환매조건부 분양방식의 제도화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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