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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이제는 시민에게 돌려줘야
[논단] 국민에게 외면받는 국회, 담장 헐어 문화공간 열린마당 만들자
 
김영호   기사입력  2005/11/15 [00:25]

 흔히 국회의사당을 민의의 전당이라고 부른다. 국민의 대표들이 모여 나랏일을 논하니 거기에는 국민의 뜻이 배어있는 곳인가 싶다. 그런데 10만평이나 된다는 그곳은 높다란 돌담으로 둘러쳐 있다. 그 둘레 곳곳에는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전경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어 보기에도 근접하기 어려운 느낌을 준다. 그 뒤편 한가운데 웅장한 화강암 석조전이 지난 30년간 권위의 상징처럼 위용을 자랑해 왔다. 

 여의도에 자리잡은 국회의사당은 1969년 7월 17일 제헌절에 착공되어 1975년 9월 1일 준공됐다. 대의정치를 말살한 유신체제가 모순되게도 민의의 전당을 지었던 것이다. 의사당은 본관, 의원회관, 도서관, 헌정기념관 등 부속건물을 포함하여 건평이 4만2,600평에 이른다. 본관은 경회루의 석주를 본뜬 높이 32.5m의 24개 열주(列柱)가 받치고 있다. 또 지붕은 밑지름이 64m나 되는 돔으로 형성되어 있다. 통일과 양원제에 대비하여 민의원-참의원 회의장이 있다. 지금의 본회의장은 민의원 회의장이다.

 국회의사당도 숱한 정치적 풍상을 겪었다. 유신체제에서는 유정회 의원이라고 해서 정권이 임명한 사람들이 국민의 대표 노릇을 했다. 1979년 10월 궁정동에서 울린 한방의 총성이 유신체제에 종막을 고했다. 하지만 총칼을 앞세운 신군부는 국회를 해산하고 그 대신 탱크를 주둔시켰다. 1987년 6월 항쟁은 군사독재의 족쇄를 끊고 이 나라에 민주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차례로 들어섰지만 이 곳은 권위의식에 갇혀 변화의 미풍도 불지 않는다.  

 그곳에 들어가려면 외곽의 정문에서부터 전경들에 의해 제지당한다. 왜, 무엇을 하려 왔느냐고 꼬치꼬치 캐묻는다. 그리곤 의원실에 확인도 한다. 그것도 모자라 방문일지에 기록하라고 한다. 더러 재수가 좋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니 도서관을 찾거나 토론회에 갈 일이 생겨도 정말 가기가 싫다. 승용차를 타고 가면 그런 일이 없다. 택시라도 타면 일단 정지하고 어디로 간다고 묻는 말에 대답하면 그만이다. 걸어서 들어가다가는 온갖 시비를 당하기 일쑤이다

 본관이나 의원회관에 들어가려면 앞문이 아닌 뒷문으로 돌아가야 가야 한다. 본관은 뒷문으로 가려면 250m나 걸어야 한다. 입구에 설치한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그 다음 경비에게 요건을 말하고 신분증을 주면 의원실에 확인한다. 이 절차를 거쳐야 방문증을 얻어 달고 들어갈 수 있다. 국회의원의 보증이 없이는 의원회관도 본관도 출입이 불가능하다. 본관에 위치한 기자실에 호소할 일이 있어도 의원실에 부탁하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왜 외곽의 정문에서 군사정권이 일삼던 검문-검색을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11월 8일 '담장없는 국회만들기 시민사회 네트워크' 기자회견, 문화연대 지금종 사무처장이 담장없는 국회에 대한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대자보

 시민단체들이 국회를 열린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그 동안 국회경내를 개방하라고 요구했으나 들은 척을 하지 않아 공동대응하기로 했단다. 국회 경내에 국민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하자는 것이다. 건축물이 차지한 면적을 뺀 나머지 6만8000평은 광장, 도로, 공원으로 되어 있다. 이 넓은 공간은 꽃과 나무가 잘 가꿔져 어느 공원보다 훌륭하다. 이곳을 그 옆 벚꽃 길과 한강시민공원과 이으면 국민들이 찾고싶은 곳이 될 것이다. 또 자라나는 세대에게 대의정치와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훌륭한 교육장이 된다. 그런데 사무처는 아름드리 향나무를 몽땅 뽑아내고 소나무를 심겠다는 엉뚱한 짓이나 하고 있다.  

 개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보안문제를 말할지 모른다. 온갖 민원이 쏟아지고 시위로 경내가 소란스러울 거라는 이유로 말이다. 언덕 위에 자리잡은 미국 국회의사당에는 담장이 없다. 그곳은 관광객도 쉽게 드나드는 늘 열린 공간이다. 회의장도 열려있다. 비단 미국뿐이겠는가? 어느 문명국이 의사당에 높은 담장을 치고 민의의 접근을 막겠는가? 지방관서들이 담장을 허물고 주민에게 다가가고 있다. 학교도 아파트도 담장을 헐어내고 이웃을 끌어안는다.  

 국회 의사당의 담장을 헐어내고 열린공간, 문화공간으로 만들자. 그곳은 결코 국회의원 299명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민의 것이니 국민의 품에 돌려줘야 한다. 그 담장은 권위주의의 산물이다. 오랜 세월 그들은 폐쇄의 공간에서 민의를 외면한 채 탈법과 변칙을 예사로 알았다. 보는 눈이 없다고 말이다. 죽은 청계천이 살아났다고 많은 국민들이 기뻐한다. 국회의사당도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열린 마당으로 국민에게 다가가자.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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