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이맘때였다. 그러니까 2003년 10월 경, 우리 회사에 이태리 바이어가 왔었다. 미국,영국,프랑스.홍콩, 호주 바이어들은 자주 왔었지만 이탈이라 바이어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한국 아가씨 한 분과 함께 왔는데 두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약혼한 사이라고 했다. 서양인들 중에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한국 사람과 비슷한 점이 참 많다. 평균신장도 비슷하고 까만 머리에 뒷모습만 볼라치면 외양도 크게 차이가 없다. 그중에서도 같은 반도국가라서 그런지 유독 시끄럽고 또 노래를 즐겨 부른다는 점도 비슷하다.
사업에 관한 이야기가 대충 마무리되고 나서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바이어도 노래를 좋아한다고 하고 나 또한 노래라면 밥먹기보다 좋아하는 체질이라 자연스럽게 화제가 음악이 되었다. 알다시피 이탈리아는 음악중에서도 기악이 아니라 유독 성악이 발달한 국가다.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테너들을 지칭할 때 이탈리아 연주가들을 빼놓을 수 없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창법하면 이탈리아의 벨칸토 창법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엔리코 까루소, 프랑코 코렐리, 쥬쩨페 디 스테파노를 거쳐 금세기 최고의 테너라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이 모두 이탈리아 출신이고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창법이 벨칸토 창법이다.
동해로 나가 어느 한적한 해변에 차를 대놓고 밥도 안먹고 무려 7시간을 연속해서 큰 소리로 노래하며 온 몸을 땀으로 흠뻑 젹셔 본 경험이 있을 정도로 성악에 거의 미쳐본 시절이 있었다. 이런 나는 때마침 좋은 상대를 만난 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가 하는 말이 "한국에 와서 이탈리아 나폴리 민요와 비슷한 노래를 자주 들었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잠시 의아해 하고 있는 동안에 그의 한국인 약혼녀가 " 아, 한국 트로트를 말하는 거예요, 사실 한국의 트로트는 나폴리 민요랑 많이 닮았어요" 라며 거들었다.
그제서야 나폴리 민요나 오페라 아리아 등을 즐겨 불러왔던 내가 왜 노래방에서 트로트를 쉽게 또 즐겨 불러 왔는지 이해가 갔다. 사실 최근에 히트친 장윤정의 '어마나!'란 노래는 들을 때마다 나폴리 민요 '푸니쿨리 푸니쿨라'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전국적으로 사랑받는 노래 '목표의 눈물'은 나폴리 민요 중에서 '푸실레코의 어부'와 그 정조가 너무나 흡사하다.
한국의 트로트라는 장르를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이탈리아의 나폴리 민요와 비교해 보면 그 리듬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거니와 어찌보면 대부분 길게 늘여서 노래하는 스타일도 사뭇 비슷하다. 느린 곡은 느린 곡대로 리듬이 빠른 곡은 빠른 곡대로 또 비숫한 점이 많다. 과거 우리의 대중가요 중에서 가수 김완선의 '삐에로는 우리 보고 웃지'가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어 현지에서 인기를 끈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혹독한 수련을 거친 전문 성악가들이 부르는 경우와 성량에서 발생하는 차이 정도다. 생각해 보면 이것조차 우리에게 알려진 나폴리 민요가 엔리코 까루소 같은 세계적인 성악가에 의해 불려진 노래가 대부분일 것이기에 실제로 나폴리에서 일반 대중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는 성량에서도 그렇게 큰 차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대중문화는 정서와 애환을 담아주는 그릇
오랜 세월을 거쳐 한국인들의 정서를 대변해 온 트로트가 그 정조와 리듬면에서 이웃나라 일본의 엔카의 아류라는 말들이 많다. 하지만 알고보니 한국의 트로트가 먼 나라 이탈리아에서 사랑받는 나폴리 민요와 흡사하다는 느낌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나는 한국의 트로트가 일본의 엔카를 닮았든 이탈리아의 나폴리 민요를 닮았든 그게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옛날 삼국시대의 향가나 고려시대의 장가나 조선시대의 판소리가 그러했듯 이들 가락이 한국인의 고유한 정서와 애환을 닮고 있기에 모두가 소중한 문화유산의 일부다. 대중문화는 바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와 애환을 오롯이 담아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해 주는 그릇일 뿐이다.
사실 한국인들은 한국의 대중가요를 즐겨 왔으면서도 마치 조선시대의 광대를 대하듯이 그 대중가요를 부르는 사람들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를 은연중 가져왔던 게 사실이다. 프랑스의 에디뜨 피아프, 미레이유 마디유, 이브 몽땅 등을 대하는 태도나 일본의 유명 엔카가수에 대한 태도와 한국의 유명 대중가수 이미자나 남진 나훈아나 조용필 등에 대한 태도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얼마 전 일본에서 한국계 엔카 가수가 유명을 달리했을 때 일본의 모든 방송국이 조의를 표하는 등 국장(國葬)에 버금가는 행사를 하며 삼가 조의를 보였다. 이는 프랑스 등 서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의 대중가요에 대한 이중적 태도 한국에서는 외국에서의 대중문화예술인들이 가졌던 권리가 단지 클래식이 아니란 이유로 세종문화회관에서의 공연조차도 겨우 몇 년 전에야 허용되었을 정도다. 최근 일본에서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한국 배우 배용준의 욘사마 현상은 대중문화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태도와 더불어 일본 방송국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얼마전 유명한 대중가수 나훈아가 한국의 대중가요를 트로트라고 하지 말고 아리랑이라고 칭하자고 방송국의 여러 PD들에게 팩스를 보냈다고 한다. 나도 트로트란 용어 자체는 썩 마음에 안든다. 나중에 특출한 대중문화 평론가가 있어 더 적합한 용어를 만들어서 일반화 시켜 주었으면 한다. 다만 우리문화의 일부가 떳떳하게 그리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들 속에 깃든 묘한 열등감도 한 몫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는 바야흐르 문화경쟁의 시대다. 이런 와중에 우리가 가진 문화역량을 더욱 키워서 세계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도 우리가 첫째로 가져야 할 것은 우리 문화에 대한 자신감이다. / 문화비평가 * 필자는 '무위'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서 활발한 글쓰기를 하는 문화비평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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