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은 <대자보> “이드의 종교시평 : 차인표씨 탈레반은 ‘악어’가 아닙니다”라는 기사에 대해 독자이신 ‘교육평등’님의 반론입니다. <대자보>는 독자의 목소리를 소중히 여깁니다. 본문과 이드의 글에 대한 누리꾼 여러분들의 다양한 평가와 토론을 환영합니다-편집자 주.
최근에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사회에 건강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직도 자유 어쩌구 하는 시민단체(?)들이 설치는 세상에서, 이런 목소리를 낸다는 것 만해도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우리 사회가 한층 건강해지고 튼튼해 지고 있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일부 몰지각한 시민단체나 활동가들의 경우, 말라 비틀어진 가슴으로 비판 또는 비난에만 여념이 없는 것을 보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마 그들은 자신의 존재 의의를 이런식으로 밖에 드러내지 못하는 것 같다. 참으로 통탄할 만한 일이다.
여기 글을 쓴 이드씨가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의 머리가 차인표씨의 머리보다 클 수는 있겠지만 그의 심장은 차인표씨의 심장 반틈도 안될 만큼 쪼그라 들어 있을 것 같다. 그의 심장이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기를 기대한다
첫째, 이드씨는 차인표씨의 비유를 의도적으로 확대, 왜곡하고 그것을 가지고 비판하는 우(遇)를 범하고 있다. 가슴이 말라 버린 운동가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이드씨는 차인표씨가 탈레반을 악어로 비유했다고 단정을 짓고 비판을 하고 있다. 일면 그럴싸해 보인다. 그러나 그 자신도 인정했듯이 그것은 메타포의 한계이다. 차인표씨는 그 비유를 통해서 악어가 누구인지, 누가 악어를 키웠는지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차인표씨에게 누가 되겠지만 ... 차인표씨는 그런 것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차인표씨는 악어가 득실거리는 강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아프간의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인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생계, 의료, 교육, 보건 등에 있어서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 속에 놓여 있는 상황 자체를 악어가 득실거리는 강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중요하다. 그리고 차인표씨가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탈레반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면 이드씨의 비판은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차인표씨의 글은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게 아니다. 아무리 의도를 가지고 읽는다지만 글의 맥락을 보고 맥락에 맞는 비판을 했으면 좋겠다.
둘째 23명 중 어느 누가 그들을 구하러 간다고 하였나? 그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려고 간 것이지...
아마 운동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얘기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나? 그런다고 세상을 구할 수 있나? 맞다 일시에, 한꺼번에 세상을 구하거나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운동을 하는 이유는 이 일을 통해서 나아질 수 있다고, 변화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걸음씩,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23명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은 결코 아프간을 구하러 간 것이 아니다. 아프간을 사랑하기 위해서, 아프간에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래서 갔을 것이다.
예를 들어 3년간 아프간을 떠나지 않고 봉사에 전념했던 임현주씨의 활동을 보면 그렇게 짐작할 수 있다. 만약 단지 샘물교회와 한민족복지재단의 활약상을 선전하기 위해서라면 임현주씨는 이들과 동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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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주 선배님의 무사귀환을 기원합니다라는 대형걸개가 눈에 뜨일 정도로 학생들과 동문들의 임씨의 안전한 무사귀환을 바라고 있다. ©김용한 |
또 평소 박은조 목사가 이드씨가 비판하고 있는 기독교의 선교 방식(타 문화를 무시한 선교 행위 등)에 대해서 같은 비판을 해 왔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들의 아프간행을 정치인의 홍보용 사진찍기와 같은 급으로 둘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그대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그들의 동기에 대해서 정확하게 아는 바가 없어서 내 주장이 궁색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이드씨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그렇게 결론 내릴 증거가 있냐고? 홍보나 하기 위해서 간 것이라고 주장할 어떤 증거를 가지고 있냐고? 아마 나보다 훨씬 더 궁색할 것이다. 그리고 그 궁색함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가슴은 없고 머리만 큰 기형아 운동권일 뿐이다.
(나는 오히려 이드씨가 그런 자세로 운동을 하고 있지 않는가 의구심이 든다. 자기가 세상을 다 구할 수 있는 것처럼... 자기가 종교를 다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처럼...) 아서라 말아라...
셋째, 선하고 훌륭하다는 얘기에 굉장히 흥분한 것 같은데...
아마 차인표씨가 이렇게 얘기하기를 기대하고 있는게 아닐까? 아프간의 상황을 그렇게 만든 것은 당신들이니 미(제)국(주의)은 반성(회개)하고 아프간에서 물러나시오.
또는 탈레반에 합류해서 미국과 맞서 싸우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에게 있어서 착하고 훌륭한 사람일 것이다. 맞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착하고 훌륭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만 착하고 훌륭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김혜자씨같은 경우도, 한비야씨 같은 경우도 착하고 훌륭한 사람인 것이다. 비록 3세계의 현실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인 인식이 부족하더라도 그래서 그들을 미제국주의의 마수에서 구할 수 없더라도 그런 분들의 그런 행동들은 착하고 훌륭하다고 해서 잘못된 것이 없을 것이다.
내가 보기엔 그런 곳에 가서 3일도 못 있을, 에어컨 밑에서 펜대나 굴리고 있을 당신 보다는 착하고 훌륭하다. 차인표씨가 착하고 훌륭하다고 얘기한 건 그런 의미로 받아 들였음 한다
넷째 여기서 당신의 기독교에 대한 몰이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예수님을 기독교와 등치시키고 양치기를 종교 사업자에 대입하다니 양이 웃을 소리다. 당신이야말로 양치기의 정체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고민해라. 고민하기 싫으면 이런 글도 올리지 말고.
그리고 한가지 부연하면 차인표씨도 그렇고 또 많은 기독교인들도 그렇고 우리의 잘못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크게 반성하고 있다. 당신의 기독교 또는 기독교인에 대한 반감은 잘 알겠지만 함부로 일반화하지 않길 바란다.
다섯번째 나는 이 분들의 죽음이 순교라고 본다. 왜냐하면 나 역시 기독교인이고 그분들이 기독교의 가치를 실천하다가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적 관점으로 봐서 그렇다는 것이고 당신들에게 순교라고 강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리고 그 분들의 죽음을 선교 전략에 이용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샘물교회 박은조 목사가 정말 당신이 말한 그런 식의 행동을 한다면 나 역시 비판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전체의 맥락을 무시하고 글의 일부분만을 올려서 결론 짓고 비판하는 당신의 주장에 동조할 수 없다. 앞으로 차차 밝혀지리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저들이 영웅도 아니지만 죄인은 더욱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서 화려하게 들어올 것도 없지만 고개 숙일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신해철의 발언에서 옛날의 어떤 일이 생각난다. 내 친구가 농활가서 다쳤다. 그의 부모는 가지말라는 농활 같은 것 가서 다쳤다고 야단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그건 그 친구의 잘못이 아니라고.
당신이 가수 신해철의 발언을 신선하게 들었다고 내가 시비걸 수 있는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당신의 발언은 전혀 신선하지 않았음을 나 또한 밝혀둔다.
차인표의 글을 다시 한번 음미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