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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의 사람들, 어느쪽이 '악마의 사도'인가
[로사의 과학 째려보기] 기독 선교와 탈레반, 창조-진화론에 이르는 단상
 
로사   기사입력  2007/07/25 [00:49]
아프가니스탄으로 “선교활동”을 갔던 분당 샘물교회 젊은이들이 탈레반이라는 테러집단에 인질로 잡혀 있다. 시한을 계속 연기하면서도 요구 조건이 수용되지 않으면 처형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으며, 그 테러 집단에서 해 온 짓을 봐서는 분명히 인질들의 생명은 경각에 달려있다.
 
그러나 ‘무사해야 할텐데’라는 생각도 들지만, ‘뭐하러 하지 말란 짓은 해서 화를 자초하는가, 에구구’라는 생각도 없지는 않다. 일단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써서 인질들이 무사히 풀려나기를 기대해 보지만, 해결 과정에서 몸값이라도 지불하게 되면 앞으로 한국인들이 걸핏하면 납치당할 것이다. 여러 해 전, 일본이 그랬다.
 
위험하니 가지 말라는 외교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난 행동은 철딱서니 없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설마 별일 있겠느냐는 무모함의 발로인지, 하나님이 지켜주시니 아무 일 없을 것이라는 역시 무모함의 발로인지, 하나님을 위한 가치있는 순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지는 모르겠다.

▲아프가니스탄은 위험한 곳이니 여행을 자제해 달라는 경고문 앞에서 사진찍고 있는 샘물교회 신도들.     ©KBS
 
어쨌거나 저런 '미친 짓'을 “쓸데없이” 감행하게 만들 수 있는 종교적 신념이란 것이 참 무섭다. 지금 억류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테러리스트들은 “악마의 사도”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인질범들 또한 선교활동을 명목으로 자기네 나라를 방문한 자들을 “악마의 사도”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악마의 사도?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소리인데? 에구구, 요즘 읽고 있는 리차드 도킨스의 책 제목이구나. 그러고 보니 리차드 도킨스는 일부 사람들이 보기엔 아주 지독한 “악마의 사도”이겠구나!
 
맹목적인 믿음은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아주 완고한 보수적 개신교의 한 분파는 자신들이 해석한 바이블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주장과 이론을 배격한다. 때로 그들이 원하는 것은 수세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또한 과학기술 발전에 힘입은 편리함들을 포기하지는 않을 터이다.
 
그런 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격 목표는 “진화론”이다. 그 이유는 주로 자연에서의 인간의 지위와 관련된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특별한 어떤 존재”로 생각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왜 인간이 특별한 존재이어야만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하여간 인간이 우주의 중심인 지구에 거주하는 신의 형상의 본딴 하나님의 자손들이 아니라, 어쩌다 우연히 스스로를 복제하게된 물질들의 모임이 약 40억년동안 꼼지락꼼지락 변화되다 보니 만들어진 그렇고 그런 존재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나보다. 더군다나 거주지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우주의 변방에 위치한 태양이라는 보잘 것 없는 항성에 딸린 지구라는 초라한 행성에 불과하다니.
 
하여 그들은 진화론이 틀렸다고 애써 주장하며, 창조론을 진화론과 동등한 가설로 학교에서 교육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창조론은 요즘에는 지적 설계론으로 이름표를 바꿔 단 모양이더라마는. 뜻밖에도 이 황당한 주장은 몇몇 나라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진화론을 잘 모르기 때문에 진화론이나 창조론이나 그게 그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여 당분간 진화론에 관한 이야기를 이것저것 써 볼까 한다. 무지 때문에 사실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그리고 때로 무지는 생명을 위협하는 일을 위험한 줄도 모르고 저지르게 만들기도 한다. 오늘은 리차드 도킨스의 글을 일부 인용, 발췌, 요약하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창조론자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과학자들은 대체로 무시해 왔다. 별로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어디에나 까칠한 사람들, 헛소리 못 참는 사람들은 있는 법이다. 아래 인용문은 미국 캔자스 주에서 진화론 교육을 막으려던 <종교적 권리(Religious Right)>라는 단체의 시도에 대한 반론의 일부이다.

과학은 미스테리를 먹고 산다. 내 동료 매트 리들리가 말했듯이, "거의 모든 과학자들은 그들이 이미 발견한 것들을 지겨워한다. 그들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로 무지이다." 과학은 무지를 파헤친다. 우리가 아직 모르는,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미스테리는 과학자들이 탐구하는 주요한 원천이다. 신비주의자들은 미스테리를 좋아해서 그것이 계속 미스테리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과학자들은 미스테리를 아주 다른 의미로 좋아한다. 그것이 그들에게 연구할 거리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무지함과 당혹감을 인정하는 것은 좋은 과학에 필수적이다. 따라서 과학의 적들이 그러한 건설적 인정을 왜곡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는 것은, 아무리 봐도 분통 터지는 일이다. 더 나쁜 것은, 그것이 과학의 진취성 그 자체를 위협한다는 점이다. 어떤 과학자가 나중에 풀어 쓰기 위한 수사적 도구로서 일시적 의구심을 표현하는 것조차 안전하지 못하다. 뒤이어 나오는 글을 빼먹고 의구심을 표현한 부분만 인용하여 천하의 누구누구도 진화론을 의심한다고 선전을 일삼는다.

반과학적 광고를 위해 과학자들을 기만적으로 인용하는 것은 근본주의 저자들의 많은 비그리스도적 습관들 중 하나이다. 이것을 근본주의자들은 <<하느님을 위해 거짓말하기>>라고 둘러댄다. 그러나 이것이 다는 아니다.

창조론자들의 표준 방법론은 자연에서 다윈주의가 당장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현상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런 후에 과학자가 이해시켜주는 답을 즉각적으로 내놓지 못하면, 준비된 결론이 나온다. "거봐라, 그렇다면 대체 이론인 '지적 설계'가 이기는 거잖아."

한 이론이 특정 현상을 바로 설명하지 못하면 다른 이론이 자동으로 옳다는 결론은 물론 논리의 비약이다(과학에서 바로 설명하지 못하는 미스테리들은 연구의 원천이며 과학자들이 존재할 수 있게 해 준다. 그것이 없다면 과학자들이 어떻게 밥벌이를 하랴!!).

 
마찬가지 이유에서 그들은 화석 기록 상의 공백(즉, 잃어버린 고리)에 환호 작약한다.

화석 기록 상의 "공백들"에 대한 창조론자들의 애호는, 지식 전반의 공백들에 대한 애호를 은유한다. 공백들은, 기본적으로 하느님께서 채워주신다. 신경 자극이 어떻게 작동하는 지 모른다고? 좋아! 기억이 뇌 속에 어떻게 저장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훌륭해! 광합성이 좌절스럽게 복잡한 작용이라고? 멋져! 제발 그 문제에 대해 뭔가 하려 들지 말고, 그냥 포기하라, 그리고 하느님께 호소하라. 과학자들이여, 너희들의 미스테리들을 연구하지 말지어다. 우리가 써먹을 수 있게 너희들의 미스테리들을 우리에게 가져오라. 연구해 버림으로써 귀중한 무지를 헛되게 하지 말라. 무지는 하느님께서 캔자스에 내려주신 선물일지니.

어찌 되었건 납치된 사람들이 무사히 풀려나기를 바란다. 일단은 생명이 가장 소중하니까. 사람의 생명이 소중한 이유는 다음 편에서 이야기해 보겠다.

* 로사(Rosa)는 인터넷 세상에서 활약하는 과학칼럼니스트입니다.

* 비판과 대안, 새로운 상상력 <이슈아이> (www.issuei.com) / 대자보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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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7/25 [00:4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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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ero 2007/07/26 [05:01] 수정 | 삭제
  • 아프간에서 창조론Vs진화론 까지 갔답니까 ㅡ..ㅡ
    무슨 우주여행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