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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에서 대마초 배우로, 세상에 할말 많아요”
15일 저녁 EBS <시대의 초상> 배우 김부선 방영, 대마초 비범죄화 다뤄
 
김철관   기사입력  2007/05/14 [15:47]
80년대 영화 <애마부인3> 주인공 김부선. 그는 대마초 연예인으로 국민들에게 더 알려져 있다. 현재 대마초 비범죄화 운동을 벌이고 있는 김부선(본명 염해리) 씨의 굴곡의 삶의 얘기가 오는 15일 저녁 EBS(교육방송) <시대의 초상>(프로듀서 남택진)에서 전파를 탄다.
 
▲인터뷰 중인  영화배우  김부선 씨 © EBS 제공 

80년대 김부선은 스타 여배우였다. 하지만 그는 군부독재 시절 대마초 배우로서 낙인찍혀 질곡의 삶을 헤쳐 갔다. EBS <시대의 초상>에서 그는 지금까지 밝히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1980년대초부터 현재까지 스크린을 누벼온 여배우, 딸을 훌륭히 길러낸 어머니, 또한 대마초 비범죄화 운동을 주도하는 운동가라는 다양한 이름을 가진 그녀인 만큼, 5공 정권부터 지금까지 목격한 사법부와 우리 사회 지도층의 거짓과 위선, 그리고 그 추악한 면모를 생생한 에피소드와 함께 고발한다.
 
80년대 초,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은 광주민주화 운동 이후 민심수습에 혈안이 돼 있었다. 스포츠와 영화, 섹스를 무기로 대중의 눈과 귀를 가리려 했고, 에로티시즘 영화들의 무더기 제작, 상영 역시 그 일환이었다. <애마부인3>의 히로인, 염해리(김부선의 예명)로 더 유명하지만, 당시 그녀는 169센티의 훤칠한 키, 서구적인 스타일과 독특한 분위기로 급부상한 패션 모델계의 샛별이었다.
 
한 번도 연기수업을 받지 못한 채 전격 발탁된 <애마부인3>. 베드신은 커녕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고 흐느껴 우는 간단한 연기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그녀 때문에 당시 조감독이었던 강우석 감독은 마음고생이 심했다.
 
하는 수없이 정인엽 감독은 당시 인기를 끌었던 <차타레부인> 시리즈 테이프를 던져줬고 그걸 보고 따라했던 영화 <애마부인3>는 에로배우라는 별칭이 붙여진다.
 
김부선은 반문한다. "<애마부인3>의 상대역이었던 이정길, 그리고 수많은 에로티시즘 영화에 나왔던 당대의 여배우들은 그냥 '배우'로 불리는데 왜 자신에게만 '에로배우'라는 꼬리표를 붙이느냐"고.
 
사람들은 대마초 때문에 수사를 받았던 연예인들의 얼굴은 잘 기억한다. 그러나 대대적인 언론보도와 실형선고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또 그 후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질문조차 던져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한다.
 
김부선은 여배우라서 부당하게 겪어야 했던 고통, 이제까지 어둠 속에 갇혀있던 바로 그 진실에 대해 처음 입을 열었다.
 
"89년 억울하게 빼앗긴 딸을 찾기 위해 자수를 했다. 담당검사는 참기 힘든 조롱을 했다. 충격과 상처가 커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던 담당검사가 14년 후, 변호사가 돼 나를 찾아와 충격고백을 했다. 그녀와 같이 기소됐던 국회의원이 풀려났다는 말이었다."
 
그녀는 실정법을 위반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단순흡연자와 대마 소지자까지 구속, 실형을 선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반론한다. 그는 외국처럼 벌금형 정도로 처벌수위를 낮추거나 비범죄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혹한 표적수사의 단골 표적으로 수사관행의 피해자였던 그녀는 진실을 더 이상 묻어둘 수 없다고 말한다.
 
미국이 대마를 불법화 한지 50여 년, 박정희 정권의 대대적인 '대마초 연예인' 구속 이후 지난 76년 대마관리법이 제정된 지 30년 만에 처음 대마 비범죄화 투쟁에 나선 사람이 바로 김부선이다.
 
박찬욱 감독, 김동원 감독, 가수 강산에, 신해철 등 아낌없이 지지해준 동료들과 성금을 모아준 <다음>의 팬까페 '해리부선'의 회원들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대마초로 구속됐던 모 연예인은 그녀에겐 큰 실망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연예인이 최근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대마초를 끊을 수 있었던 것은 교도소 알몸조사의 수치감 때문'이었고, 대마초 비범죄화 주장에 대해 일언지하에 부정적인 의견을 밝힌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마초와 관련된 기억은 모조리 지우고 싶어하는 이도 있지만 그녀는 2004년 대마를 마약으로 규정한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심지어 소송비도 자비로 부담하고 항소이유서도 직접 썼다. 누구도 나서지 않는 거친 가시밭길에 나섰던 것이다.
 
애마부인 시절 그녀가 등장하는 씬은 100씬을 넘었다. 그러나 연이은 구속과 소송제기로 출연 씬은 두세씬까지 줄어들었다. 최근엔 출연이 확정돼 언론보도까지 나갔던 미니시리즈 드라마 두 편의 출연이 간부진의 지시로 어이없이 무산됐다.
 
생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절망 속에서도 배우이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일어섰다. 한 씬이 나와도 수 십씬 등장한 배우보다 더 강렬한 관객의 뇌리에 새겨지도록 남몰래 땀 흘리며 자신만의 연기를 창조해왔다. <말죽거리 잔혹사>와 <불새로 화려한 재기> 후에는 누드 촬영제안이 왔지만 가차없이 고사했고, 그 대신 모 대학 연극영화과 학생들의 워크샵에 무료로 나섰던 이가 김부선이다.
 
상반기 기대작 영화 <황진이>에서는 감독에게 새로운 씬을 제안해 슬픔과 기쁨이 어우러진 소름 돋는 연기로 인정받아 갈채를 받았다. 개봉전이지만, 이례적으로 스태프들을 놀라게 한 문제의 장면도 공개된다. 
 
<딴지일보>에 실린 김부선 씨 인터뷰가 네티즌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와 놀라운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번 다큐도 그녀의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직설화법과 은유법을 오가는 화법, 마치 연기를 하듯 생동감 넘치면서도 진심이 담겨있어 듣는 이를 무섭게 빨아들인다. 그리고 함께 웃고 울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스타일리스트도 없는 시절 영화배우로 데뷔해 지금껏 직접 자신을 코디해왔기에 이번 출연을 위해서 지금까지 두 번째 메이크업을 받았다는 김부선. 상처가 많다보니 오히려 깊은 연기도 가능하고 세상에 할 말도, 할 일도 많다며 활짝 웃는 그녀.
 
에로배우와 대마초 배우, 그리고 미혼모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여성으로서 가장 가혹한 굴레를 한 몸에 짊어지고도 거친 시대를 씩씩하게 걸어온 김부선. 그녀의 진실이 담긴 목소리가 오는 15일 화요일 밤 10시 50분, E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시대의 초상>에서 '굴레를 벗고 거침없이 전진하라 - 배우 김부선'이란 주제로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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