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갑자기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단다. 그 뜬금없음에 “왜?”라는 물음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는 제사 지내기 싫어서라는데, 2초 정도 당황했다가, 또 2초 정도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물었다. “아니 근데 왜?”
그렇게까지 할 만한 어떤 사건이 있어서 충동적으로 결정한 건지 아님 진지하게 가족하고 의논이 된 상태인 건지 여러 모로 궁금한 게 많았다.
내 친구는 우리 또래들에 비해 이른 20대 중반에 결혼을 했다. 신랑과 나이 차이가 제법 있는 시누이 둘은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고 신랑은 외아들로 시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자연스레 시댁으로 들어가 시어머니와 살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같이 살게 된 것이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문제는 친구가 결혼 초에는 아이들 키운다고, 어리니까 몰라서, 그냥저냥 지나쳤던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크다면 큰 문제들이 이제는 예전처럼 지나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문제가 제사였다. 제사를 지내는 것 자체가 어렵다기보다 뭔가 주객이 전도된 듯한 상황에서 갑자기 딱 하기가 싫어졌단다. 처음엔 며느리로서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누이들도 친구한테만 전적으로 맡긴 채 전화라도 오면 다행일 정도로 모른척 했고, 또 시어머니마저 팔짱끼고 참견만 할 뿐 모든게 친구 몫이 된 것이다.
그러다 동네 친한 언니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자기랑 같이 교회를 다니자고, 자기도 작년부터 교회에 나가면서 제사를 안지낸다고 그랬단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고, 나에게도 전도 아닌 전도를 하는 것이다. 나는 친구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면서도 또 ‘굳이 그렇게까지’ 싶기도 했다.
나도 시아버지 제사를 지내야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친정에 제사가 많아서 그것에 대한 부담은 크게 없었다. 물론 상에 올리는 음식부터 제사 방식까지 모든 게 달라서 결혼 후 새로 배워야 했지만, ‘까짓 거 뭐, 하면 하는 거지’ 싶기도 하고, 또 ‘1년에 한 번인데 그거 못해?’ 라는 생각도 있었다.
또 만약 먼 훗날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1년에 딱 한 번 음식을 좀 많이 해야 하고 번거로운 과정이 있지만 그날을 시어머니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날이라고 생각하면 그게 그렇게 힘들거나 부담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얼굴도 모르는 남편 조상님들 제사를 지내는 건 사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는 한다.
그래도 내 배우자에 대한 배려고 사랑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하는 것이다. 결혼을 했으니 서로의 문화에 적응해 주는 것, 그것 중에 제사가 있다면 그것도 받아들여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네처럼 시댁 어른들 제사를 지내는 것이 마치 전적으로 내 일인 것처럼 돌아간다면 왠지 김 새는 느낌이랄까? 뭐 생색내고 싶은 것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모든 게 내 몫이 된다면 조금 허무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제사를 지낸다는 건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편이 예쁘면 별 것 아닌 일도, 미울 땐 모든 게 다 힘들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특히 제사 문제에 그런 감정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다. 사실 이걸 특정 종교를 믿으면 제사를 지내니 안 지내니 하는 종교 문제로 접근하거나, 부부간 주도권 싸움으로 볼 일은 아니다. 배우자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배려들이 뒷받침되어 있지 않으니 본질에서 동떨어진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이 나오는 것이다.
배우자의 사랑과 가족들의 칭찬과 배려가 있다면 그들을 위해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기본적인 감정 없이 의무만 주어지기 때문에 ‘내가 왜? 굳이 다?’ 하며 약오르고 화가 나는 것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1년에 20번씩 제사를 지낸다는 어느 종갓댁 이야기가 나왔다. 종부의 인터뷰에서 그 큰살림을 맡아하는 막중한 책임감에 대해 얘기하는데, 고단함이나 원망보다는 오히려 뿌듯한 자부심이 엿보였다. 그 분도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가늠할 수 없이 어렵고 힘든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에 대한 사랑과 시댁에 대한 존중으로, 또 남편의 사랑과 시댁 어른들의 배려와 격려로 그 세월을 견뎌냈을 것이다. 화면 속 자상한 남편과 인자한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시간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쩌면 제사가 힘든 게 아닐지도 모른다. 서로를 향한 진심을 알아주는 것, 사실은 쉬운 그것이 더 어려운 건지도.
* 글쓴이 최수진은 창원에 거주하는 에세이 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