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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kDoo의 소름돋기] 4인용 식탁
박정희식 근대화에 해체된 중산층 가족들의 이야기
 
김정곤   기사입력  2003/09/02 [17:31]

"시원한 게 뻐근한 거고
뻐근한 게 사실은 아픈거지...”

▲영화 '4인용 식탁' 포스터   
©영화사 봄
70년대를 지나 흔히들 쌍팔년도 라고 부르는 88년까지 우리들 산동내의 기억은 수없이 얽히고 얽힌 집들과 미로와도 같은 동내 골목을 부유하는 꼬맹이들 그리고 다라이 하나 가득 지어 나르던 시커먼 연탄과 소주 대병에 가득찬 500원 어치 경유 한 병, 그리고 몇몇의 죽음들…

혼돈으로 가득찬 시대를 보내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지금 그 꼬방동내에서의 일들... 연탄 가스에 불귀의 객이 되어 상여에 실려 보내지던 친구와 어린 자식들을 어쩔 수 없이 방안에 가둬두고 일 나갔다 조그만 성냥불이 집을 뒤덮는 화염이 되어 그 어린 영혼들을 삼켜 버리던 끔찍한 사고와 삶의 터전을 잃어 버린다는 악몽 같은 사실에 시커먼 등치들에게 몽둥이 찜질을 당하면서도 단 몇 푼이나마 더 받아보려고 악다구니 쓰며 집안 기둥을 부여 잡던 그 기억들...

4인용 식탁은 그러한 고통에 관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건 사회적 고통과 더불어 그것을 감내해 나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고통에 관한 영화이지요 또한 영화가 시작되면 등장하는 4인용 식탁과 사면을 비추는 조명은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70년대의 구호와 7,80년대에 등장하는 영화들에 가장 건전한 가족 형태로 비춰지는 4인으로 구성된 가족을 상기시키며, 이제는 단지 추억으로 거론되는 가족의 형태를 각 개인으로 분열된 시선으로 봐 주기를 권하고 있지요 4개의 조명을 통해서 말이죠

▲영화 '4인용 식탁' 중 한장면     ©영화사 봄
영화의 시작, 정원은 퇴근길에 자신의 옆과 앞에 놓여졌던 어린 두 아이가 사실은 잠든 게 아니라 죽은 것임을 알게 되고 자신의 4인용 식탁에 그들이 앉아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바로 자신의 집에서 도망쳐 나오지요 사실을(그 자신이 유년기에 저질렀던 끔찍한 기억을 감당하지 못해 무의식 속에 묻어 두었던 것처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숙 역시 그 자신이 알지 못했던(죽은 자신의 어미를 먹이 삼아 살아난) 사실 때문에 점점 미쳐 가며 어린아이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체 끊임없는 공포에 시달리다 유아 살해라는 극단적인(이 부분에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중요한 건 살해 행위가 아니라 그녀가 겪고있는 원초적인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행위를 저지르고 맙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의 고통을 중계해 주는 자로서의 연도 사실을 감당할 만큼 강한 사람은 아니 였던 것이 지요 그래서 연 또한 끊임없는 고통과 공포에 조금씩 조금씩 죽어 갑니다

▲영화 '4인용 식탁' 중 한장면     ©영화사 봄
영화는 왜 7,80년대의 기억을 끌어와서 이들을 고통 속에 빠트린 체 절망하게 만들까요? 그럼 7,80년대 시절 우리의 화두는 무엇 이었을까요? 아니 7,80년대를 관통하며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지금까지 우리가, 모두가 부르짖는 것.

경부선과 경부 고속도로가 뚫리고 해를 넘길수록 무역 수출탑은 더욱 커져만 가고 새마을 운동과 경제개발계획 등등 지금까지 우리의 화두는 그 어느것 보다 경제력에 집중 되었지요 그렇게 나라의 부를 살찌우며 커져만 가는 나라의 한 켠에 소외된 체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4인용 식탁이 상징하는 중산층의 달콤한 삶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던 그래서 하루 하루의 삶이 고통이었던 그런 사람들의 지금 이야기가 4인용 식탁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영화는 두 가지 삶의 행태를 보여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연과 정원, 그리고 정숙의 악몽 같은 이야기와 지금을 사는 우리들인 정원의 애인과 연의 남편을 곁가지로 보여주고 있지요. 때문에 지금의 우리들이 곁가지로, 그럴싸한 추억으로 치부해 버리는 일들이 이 영화의 주인공들에겐 당장의 고통이며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 되지요

영화에서 그들이 보는 시선의 위치가 틀림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연과 추락하는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장면이지요 지금 실재할 순 없지만 사실은 존재했을 그 시선과의 마주침. 그래서 과거의 시선을 꿈에서 나마 계속해서 주시하는 정원이 그 두 아이의 유령을 보는 것이나 자기 출생의 비밀을 연을 통해서 알아 내려는 정숙은 현재에 부합될 수 없는 유령들이 될 수 밖에 없었지요

▲영화 '4인용 식탁' 중 한장면     ©영화사 봄
영화의 마지막 4인용 식탁을 박살 내며 우리들의 사회로 편입해 보려는 정원의 시도는 당연하게도 불발로 끝나고 환상처럼 처리된 마지막 장면처럼 배회하는 유령들 사이에 장식될 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유령으로써 끝나고 맙니다

“맛 있나요”
“아직 뜨거워요”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지금에 이르러서도 4인용 식탁은 단지 환상일 뿐이라는 이야기... 경제 개발의 대가로 끝없이 늘어선 고층 아파트들이 유령들의 도시처럼 보이는 건 그래서 이기때문이겠지요...

* 필자는 '영화평론가'를 지망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앞으로 '공포영화'와 사회적 맥락을 함께 잡는 그로우테스크하고 아라베스크한 필법(?)으로 대자보 독자들을 즐겁게 만날 것입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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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9/02 [17:3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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