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우리 영화", "심형래 감독의 무한한 가능성 확인." 인터넷에 떠 있는 영화 <디 워>의 평이다. 이런 평가들은 영화 자체에 대한 감상으로는 부적절하다. 자랑스러움을 느끼기 위해, 감독의 장래를 축복해주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사람은 없다, 이 영화를 빼고. 드디어 한국인들은 태극기 앞에서만이 아니라 한 편의 영화에도 자랑스러워하는 시대가 되었다. 알맹이가 없다는 혹평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술에 뒤지지 않는다는 특수효과 하나로 감독은 영웅이 되었다.
애국심에 꼭지 돈 사회 감독과 제작사는 미국에서 1500여개의 개봉관을 잡은 영화가 한국인의 애국심을 얼마나 자극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고, 이들의 나라 사랑 마케팅은 할리우드 콤플렉스 가득한 한국인들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물론 박수만 있지는 않았다. 인터넷에서 '애국자'들은 영화가 불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떼로 몰려가 사이트를 벌집 쑤시듯 해놓는다. 신랄한 비평을 다는 데 익숙한 그 많은 영화평론가들도 벌떼들의 공격이 무서운지 입을 열지 못한다. 한 노장 감독도 속마음은 어떤지 몰라도 영화를 칭찬하는 대세에 합류한다. 한마디로 미쳐버렸다. 어떤 영화가 맘에 안든다고 말하면 다치는 나라. 애국심에 꼭지가 돌아버린 한국 사회다.
한국인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방식은 특별하다. <디 워>가 미국의 개봉관을 잡기 전에 한국에서 먼저 뚜껑을 열었어도 이런 반응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영화 <밀양>도 칸영화제 수상이 있자 비로소 관객이 들기 시작했다. 큰 나라가 인정해줘야 비로소 자랑할 만한 것이 되고, 그 이후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을 다치지 않도록 호위해주는 게 애국이라고 생각되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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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상에서 애국심 논란을 일으킨 심형래 감독의 감독의 <디 워> ⓒ영구아트무비 |
'메이드 인 코리아'를 강조하는 영화가 휘젓고 다니는 공간은 미국이다. 배우들은 아무 역할도 없이 영화 내내 괴물에 도망 다니기 바쁘다고 한다. 그것이 영화의 흠이라고 누구나 지적하지만,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감독으로서는 국산 기술로 만든 이무기 하나만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감독은, 괴물이 미국 한복판에 출몰하고 그 나라 배우들이 한국 영화에서 볼품없는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관객들이 쾌재를 부르기를 기대했을지 모른다. 할리우드가 자신을 알아준다는 데 목숨을 걸면서도, 미국을 약 올리는 모습에서 통쾌함을 느끼는 이중적 태도가 <디 워>가 내세우는 애국심의 본모습이다. 강대국과 엮이지 않으면 애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보듯, 애국심이란 순수하고 고상한 것과 거리가 멀며, 본디 '힘'이라는 개념을 벗어나 생각할 수 없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보다 나라 사랑을 강조하는 이들이, 정작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나라가 아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건 나라가 가진 힘이다. 힘을 가진 가장 큰 단위가 국가인 이상, 애국심이란 것은 힘에 대한 승복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자기 나라가 약소국이면 큰 나라의 힘을 선망하여 의지하는 것조차 허용할 정도로 애국심은 모순적이다.
빤히 보이는 영화의 속셈 이 나라 사람들은 애국심을 당연하게 생각하도록 교육받아왔지만, 여기에는 개인이 국가를 구태여 사랑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처음부터 생략되어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가가 개인을 위해 존재할 뿐 그 거꾸로는 될 수 없다. 나라 사랑을 당연한 덕목으로 떠받드는 건 개인이 국가의 부속물로 취급되는 사회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나 개인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국가를 내가 애써 사랑하고 아껴줄 이유는 없다. 더욱이 이 나라는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니며, 언제나 나를 위하는 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국력이 커진다고 하여 내가 잘된다는 보장은 없다.
내가 마음을 놓고 있으면, 내가 준 권력을 언제든 나를 향해 써먹으려고 하는 것이 국가다. 한 편의 '애국' 영화가 개인의 입을 봉쇄하는 나라에서는,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국민교육헌장 시대의 신민(臣民)이 강요될 뿐이다.
* 본문은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 <경남도민일보> (
http://www.dominilbo.co.kr) 8월 23일자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