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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화려한 휴가’ 어떻게 봤을까
[시론] ‘군의 노고 잊지 않겠다’는 <조선>의 후안무치 수그러들 날은?
 
이태경   기사입력  2007/08/08 [11:49]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다 보면 민중항쟁에 나선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하면서 군경의 피해를 강조하는 방송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본 후 불현듯 "비상계엄군으로서 자제에 자제를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잊지 않는다"는 조선일보의 사설 한 대목이 생각났다. 
 
80년 5월 당시 광주가 고립된 섬처럼 된 데는 신군부의 압도적 무력이 가장 큰 역할을 했겠지만 언론의 왜곡보도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는데 그 중에서도 <조선>의 왜곡보도는 단연 돋보였다.
 
광주민중항쟁과 관련된 <조선>의 기사 가운데 언뜻 생각나는 것만 해도 '폐허 같은 광주... 데모 6일째'(1980년 5월 23일자 7면), "총 들고 서성대는 과격파들"(1980년 5월 25일자 7면)이 있다.
 
또한 <조선>은 “간첩에 의해 조종 받는 폭도 세력, 시위선동 간첩 1명 검거"(1980년 5월 25일자), "격앙된 군중 속에서 간첩이나 오열이 선동하고 파괴와 방화 살상의 선봉적 역할을 하는 것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 일"(1980년 5월 25일자)와 같이 광주시민들을 북한에서 남파된 간첩에 의해 부화뇌동하는 무리로 묘사한 바 있다.

▲'화려한 휴가'는 5.18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한 속죄의 영화이자 뒤늦은 만가(輓歌)이다.     ©CJ엔터테인먼트

광주민중항쟁을 ‘광주사태’로 줄곧 보도하는데 앞장 서 온 <조선>의 기사 가운데 압권은 “악몽을 씻고 일어서자”(1980년 5월 28일자)라는 제목의 사설이다.
 
<조선>은 이 사설을 통해서 "국군이 선량한 절대다수 광주 시민 곧 국민의 일부를 보호하기 위해 이번의 행동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음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비상계엄군으로서 자제에 자제를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잊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쯤되면 <조선>을 통해 광주민중항쟁을 접한 사람들이 광주민중항쟁을 ‘광주사태’로 인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싶다. 그러나 진정 놀라운 것은 <조선> 이 광주민중항쟁 당시 위와 같은 왜곡보도를 일삼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단 한 번도 그 때의 과오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조선>이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왜곡보도를 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사죄하지 않는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 가운데 하나 일 가능성이 높다.
 
하나는 <조선>의 사주와 대부분의 기자들이 여전히 광주민중항쟁을 ‘광주사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미흡하기는 하지만 광주민중항쟁의 역사적 진실이 대부분 드러났기 때문이다.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광주시민을 폭도로 규정, 군의 노고를 잊지 않겠다고 쓴 조선일보 김대중 이사기자. 반성은 커녕 아직도 서슬이 퍼렇다. 사진은 김대중 이사기자의 수상을 반대하는 언론단체들의 피켓시위 모습     © 대자보

물론 여전히 광주민중항쟁을 ‘광주사태’로 인식하는 ‘전사모’같은 파시스트 무리들도 있지만 설마 대한민국 일등신문인 <조선>의 사주와 기자들의 수준이 그렇기야 하겠나 싶다.
 
그렇다면 남은 이유는 하나다. 그건 <조선> 사주와 기자들이 자신들이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영 마뜩치 않아서다. 과거의 전비(前非)를 뉘우치고 사죄하는 것은 천하의 <조선>이 할 일이 아닌 것이다. 
 
▲필자가 대한민국 사회 구석구석을 들여다 본 한국사회의 속살』,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등 4개 분야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한국학술정보, 2007
더구나 광주민중항쟁을 ‘광주사태’로 왜곡 보도한 과거의 잘못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지 않았다고 해서 <조선>의 사세(社勢)가 기울어지지도 않았다. 
 
아니 사세가 기울어지긴 커녕 <조선>의 위세는 당당하기만 하다. 판촉의 힘이건 불공정 거래 때문이건 간에 <조선>은 신문 판매시장에서 여전히 최정상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또한 신문 판매시장에서의 위세를 바탕으로 여론시장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전철 안에서 중앙일간지를 읽는 사람 네 명 가운데 적어도 한 명은 조선일보를 읽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군사깡패들의 폭압 아래서는 숨을 죽이던 <조선>이 ‘할 말은 하는 신문’을 자처하는 풍경을 바라보는 심정은 참담하다. 
 
<조선>의 뻔뻔함이 고개를 숙일 때는 언제일까? 아마도 <조선>의 애독자들이 대거 이탈하고 그 여파로 <조선>이 가진 상징권력이 크게 약화될 때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비데와 자전거에 홀려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국민들이 도처에 있는 현실을 보면 그런 날이 금방 올 것 같지는 않다.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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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8/08 [11:4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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