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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열사, 20년 만에 49재 다시 치른다
불교추진위, 3월 3일 조계사에서 20주년 천도재 및 추모제 방침 밝혀
 
김철관   기사입력  2007/02/26 [14:35]
박종철 열사 49재 20년 추모제가 서울 종로 조계사에서 열린다.
 
6월민주항쟁20년사업 불교추진위원회(상임대표 명진, 여익구)는 26일 오전, 오는 3월 3일 오후 1시부터 박종철 열사 49재 20년 추모제 및 천도재를 열겠다고 밝혔다.

3일 행사는 풍물패 길놀이를 시작으로 박종철 열사 49재 20년 천도재 및 추모제, 추모문화제 순으로 진행된다. 특히 87년 6월 민주항쟁 사진전도 열린다.
 
▲ 당시 불교계가 나서 박종철 열사 49제를 했다. 당시의 모습.     © 민주화기념사업회 제공

박 열사 천도재 및 추모제는 각 종교 지도자, 주요 인사 추모사, 추모기도, 가족인사 등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추모문화제는 민중가수 안치환, 야단법석, 꽃다지, 대한불교 소년소녀합창단, 노래극단 희망새 등 문화예술인이 참가한다. 이날 민주화 선언문도 채택하게 된다.
 
6월민주항쟁20년사업 불교추진위원회는 지난 1월, 6월 민주항쟁 20년을 맞아 당시 참여했던 지선·청화·진관·학담·명진 스님 등과 고은·신경림·한상범·여익구 등 재가불자들이 만나 결성한 단체다.
 
한편, 87년 당시 친정권적이고 정권에 예속적인 분위기로 일관했던 불교계가 종단 차원에서 박종철 열사의 49재를 치르게 됐다. 당시 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이 87년 1월 20일 어떤 내막에선지 알 수 없지만 ‘박종철 군 49재를 조계사에서 치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당시 국민적 분노를 무마하고 열사 가족을 위무하는 차원이라는 정권의 의도가 전달됐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하지만 당시 박종철 군 49재는 서울 조계사에서 치르면 사회 불순세력에 의해 불순하게 이용될 수 있다는 정부의 논리가 먹혀 2월 23일 돌연 부산 사리암(주지 백우 스님)에서 치른다고 장소를 변경했다.
 
▲ 지난 1월 14일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현 인권보호센터)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 20주기 추모식에 걸린 열사의 영정을 아버지 박정기 씨는 회환을 느끼듯 바라보고 있다.     © 대자보 김한솔

당시 부산 사리암은 수많은 전경이 배치돼 스님들과 신분이 확인된 신도들을 제외하고는 출입이 차단됐다. 물론 조계사 주변도 군사정부에 의해 원천봉쇄 됐다. 당시 박종철 군 죽음과 시대상황을 계기로 깨어난 불교 내 민주화 세력은 지선스님을 필두로 조계사 진입을 시도했고, 결국 49재를 치렀다. 당시 지선스님은 ‘수많은 49재를 지내 봤지만 그렇게 짧은 49재는 처음이었다’며 ‘요령 몇 번 흔들고, 열사 이름 몇 차례 되뇌는 것으로 끝내고야 말았다’고 회상했다.
 
엄청난 봉쇄와 탄압 속에 거행된 20년 전의 49재였기에 제대로 된 49재는 아니었다. 이제 20년이 흘러 민주주의가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렸고, 민주세력의 이름으로 불교 종단이 앞장서 제대로 된 49재를 지내야 한다는 마음과 기타 종교계(6대 종단 초청, 기독교, 대종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천주교)와 함께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수많은 열사들을 위로하고 천도하는 화해와 상생의 기회로 이번 추모제가 기획됐다.
 
불교추진위 행사에 이어 6월 민주항쟁 20년사업은 당시 항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교수, 교사, 학생들을 비롯해 의료계, 여성계, 언론계, 노동계 등 각 부문과 부산, 광주, 인천 등의 지역으로 확산돼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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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2/26 [14:3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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