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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개방압력이 삼켜버린 ‘전매청’
[김영호 칼럼] 정부투자기업, 민영화 거쳐 국부유출, 그래도 FTA 인가
 
김영호   기사입력  2006/07/15 [22:56]

 20년 전에만 해도 담배와 인삼은 전매품이었다. 정부기관인 전매청이 담배, 인삼을 독점적으로 생산-판매했고 전매사업은 재정수입에 큰 몫을 차지했다. 그 전매청이 담배인삼공사라는 정부투자기업으로 개편되더니 다시 민영화의 과정을 거쳐 KT&G로 변신했다. 그 KT&G가 외국투기자본의 공격에 밀려 경영권이 위태로운 모습이다. 앞으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가 체결되면 많은 정부투자기업들이 그 전철을 밟는 운명에 놓인다.
 
 해방이후 이 나라에 미군이 진주하면서 양담배도 함께 상륙했다. 양담배는 미군PX에서 흘러나와 많은 애연가들이 애용했다. 그 때만해도 국산담배는 품질이 워낙 조악한 탓에 양담배를 찾는 이들이 많았다. 나라의 재정기반이 취약한데 양담배가 전매수입을 뺏어가자 방어책으로 양담배 흡연을 금지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흡연자 명단을 발표할 만큼 단속이 엄격했다. 그것이 외교마찰을 빚을 정도였다.
 
 그 즈음 미국에서는 혐연(嫌煙)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었다. 흡연이 건강을 해친다는 경고문이 담배곽에 표시되고 흡연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국 담배회사들이 통상법 301조를 창으로 무장하고 해외시장으로 돌진했다. 미국정부를 내세워 한국정부에 담배시장을 열라고 압박했던 것이다. 그래서 담배시장도 1986년 7월 1일 ‘301조 일괄타결’에 포함되어 개방됐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양담배 소지-흡연 자유화의 이유를 그 해 9월 열리는 아시안 게임에 둘러댔다. 궁색하게도 외국손님을 위해 문호를 연다고 말이다.
 
 그 때 양담배의 유통만 합법화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공격목표는 전매청의 해체였다. 정부기관이 담배를 독점적으로 생산-판매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미국회사가 한국에서 자유롭게 제조-판매할 수 있도록 경쟁체제를 도입하라는 압력이었다. 전 정권은 이 사실을 기밀로 부쳤다. 그리고서는 슬그머니 전매청을 한국전매공사로 공사화했다. ‘전매사업의 경영합리화와 품질개선’이라는 핑계를 내세우면서 말이다. 철저한 보도통제 탓에 지금도 전매청이 왜 없어졌는지 아는 이가 거의 없다.
 
 1987년 4월 한국전매공사로 개편했지만 전매라는 단어에 부담을 느꼈든지 2년 뒤 간판을 담배인삼공사로 바꾸었다. 2002년 10월 민영화 절차를 거쳐 그 해 12월에는 상호를 KT&G라는 바꿔 달았다. 국적불명의 회사이름을 달더니 담배이름도 국적불명 투성이다. 영어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여 어떻게 읽을지조차 모르겠다. 온통 알파벳을 나열한 이름뿐이다. 그 이름에 어울리듯 KT&G의 외국인 지분은 61.45%나 된다.
 
 담배시장이 개방된 지 20년이 됐지만 KT&G의 사업은 여전히 독점적이다. 연간매출액이 2조2000억원이고 순이익이 5000억원이 넘는 우량기업이다. 여기에다 인삼공사 지분전량을 소유하고 있다. 뉴스전문채널 YTN의 주식 19.9%를 갖고 있고 영진약품 지분 57%를 소유한 대주주이다. 또 편의점 체인인 바이 더 웨이의 43.7%를 소유하고 있었으나 지난 4월 매각을 결정했다.
 
 이런 KT&G가 기업사냥꾼의 먹이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투기자본인 아이칸이 스틸파트너와 손을 잡고 경영권 공략에 나섰다. 아이칸의 지분 6.72%를 합친 연합세력의 지분은 7.34%이다. 그런데 지난 3월 17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예상을 깨고 최고득표로 스틸파트너 대표를 사외이사로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이칸이 투기자본이라는 점에서 그 행보는 어렵지 않게 예상된다. KT&G는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다. 높은 배당을 노려 자산매각을 요구하고 나올 것이 틀림없다. 한국인삼공사를 공개하고 부동산이나 투자주식을 팔라고 말이다. 자산을 팔면 그 만큼 배당이 늘어나고 주가가 올라갈 터이니 또 그 만큼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다. 투기자본답게 투기수익을 최대한 챙기고 그야말로 먹고 튀면 그만이다.
 
 미국은 그 동안 광고시장 개방을 꾸준히 요구해 왔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당장 방송광고공사의 민영화를 요구하고 나설 것이 분명하다. 이어서 많은 정부투자기업들이 전매청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밟는 위기에 놓인다.
 
  결국 민영화란 절차를 거쳐 온 국민이 오랫동안 쌓아온 국부가 고스란히 국외로 유출될 판이다. 불을 보듯이 너무나 뻔한 사실을 놓고도 이 나라 지배세력은 FTA만이 살길이라고 외친다. 알고 나 떠드는지 모르겠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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