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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홍철과 숭례문 피습사태는 위험사회의 징후
[하재근 칼럼] 사회불안 해결책은 양극화 해소, 공동체 문화를 일구는 것
 
하재근   기사입력  2008/02/22 [10:48]
노홍철과 숭례문이 피습당했다. 숭례문에 불을 지른 사람도 숭례문에 원한이 없었고 노홍철을 피습한 사람도 개인적인 원한은 없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들은 화가 났던 것 같다. 그것이 주체가 안 됐다. 마음 속에 울화가 쌓이고 공격성으로 발전했다.

화가 난 사람은 공격할 대상을 찾게 된다. 이때 흔히 대상이 되는 것은 여성, 노약자 등 힘 없는 사람들이거나, 문화재, 연예인 등 주목을 받으면서 동시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경우, 그리고 ‘타자’들이다. 여기서 타자라 함은 인종적 타자인 이민족, 혼혈, 문화적 타자인 성소수자 등을 모두 일컫는다.

직접적으로 공격하진 않지만 대중이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형태의 증오로 이런 성향이 발현되기도 한다. 노조, 페미니즘, 운동권 등 시끄럽고 꼴 보기 싫은 대상을 향한 대중적 증오가 이런 경우다.

왕따 문화도 이런 경향의 한 종류다. 대중이 암묵적으로 어느 한 대상을 찍어 소외시키는 것인데, 찍히는 대상은 평소 행동거지가 재수 없거나, 유달리 약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이다. 빈부차가 큰 서울 남쪽의 한 학군에서는 가난한 동네 학생이 학교에서 사는 동네를 밝히지 못한다고 한다. 전교생으로부터 왕따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설명 됐었다.

사람들이 화가 나 있다. 불행하고 불안하고 불만스럽다.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세상이 싫고 미운 놈이 싫다.

우리나라는 OECD 자살률 1위다. 걸프전 당시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다는 미군의 자살률보다도 높다. 고등학생의 5%가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다는 충격적인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된 적도 있다. 악에 받쳤다.

어느 날 갑자기 직장에서 떨려났다. 충성을 다해 일했던 곳에서 날 짐짝 취급하며 나가라 했다. 그것이 10년 전 일이다. IMF 사태. 그후 그런 사람들은 늘어만 갔다. 거의 대부분의 직종에서 안전성이 사라졌고, 급기야는 일자리 자체가 사라져갔다. 사람 자르는 게 기업경영의 목표가 되다시피 한 세상이다. 사람들이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기 시작했다.

같은 기간 입시경쟁은 더 심해졌다. 양극화는 사상 최대 수준으로 치솟았다. 아이, 청년, 장년, 노년 할 것 없이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부자들은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있다. 럭셔리 마케팅이 기승을 부리고 명품 열풍이 분다. 왜 그럴까? 모르겠다. 하지만 화가 난다. 난 이렇게 괴로운데 어떤 놈들은 왜 다들 편히 사는가?

왜지? 왜? 왜? 왜?

정말로 화가 난다. 사회에 대한 신뢰, 정당성에 대한 믿음을 사회적 자본이라고 한다. 사회적 자본이 충만한 사회에서는 이럴 때 자기 탓을 한다. 내가 못 사는 건 내가 게으르기 때문이야. 저 사람들이 잘 사는 건 저들이 부지런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사회가 아니다. 난 못사는데 왜 저들은 잘 살까? 그건 저들이 도둑질을 했거나, 요행히 부모를 잘 만났거나, 줄을 잘 탔기 때문이야. 어쩌면 저들은 내 몫을 뺏어갔는지도 몰라. 아니 내 몫을 뺏어간 건 이 사회 자체야. 내가 이렇게 사는데 야멸차게 잘만 돌아가는 이 사회.

이렇게 사회적 증오 지수가 올라간다. 잘 사는 길에 걸리적거리는 대상이 미워진다. 노조도 보이고 외국인 노동자도 보인다. 물론 모든 개인이 다 이런 불행을 당하거나, 명시적으로 이 구조를 인지하는 것은 아니다. 토대의 변화가 진행됨에 따라 사회분위기가 변해가고 모두가 그 구조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도 각박한 세태의 영향을 받는다.

사회양극화와 계층상승기회봉쇄로 경제적 탈출구가 막힌 사회는 범죄율이 상승한다. 그리고 울화가 쌓인 사람들이 사회를 향해 화풀이를 시작한다. 그것이 화풀이범죄, 바로 증오범죄다.

정신이상자나 사이코패스의 경우도 이런 조건의 영향을 받는다. 선천적 사이코패스라 하더라도 후천적 조건에 따라 그 공격성이 발현되거나 그렇지 않거나 한다고 한다. 따뜻한 사회, 황량한 사회가 개인에게 잠재된 공격성의 발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가정과 학교도 이런 역할을 한다. 학교는 파괴된 지 이미 오래고 가정도 황폐해지고 있다.

사회의 위험도가 상승하고 있다. 그 때문에 각자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 보험산업이 부흥하고 경호산업이 발달한다. 재테크와 자기계발 열풍이 분다. 사회적 안전성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신호다.

정신적 안전도가 떨어지는 사람들부터 공격행동을 시작한다. 눈앞에 있는 만만한, 혹은 얄미운 대상을 향해.

궁극적인 해결책은 양극화를 해소하고 안전한 공동체 문화를 일구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요원한 일이다. 새 정부의 정책기조는 경쟁강화다. 경쟁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약자를 돌보지 않겠다는 뜻이다. 약자를 돌보면 승자가 갖는 이익이 작아져 경쟁유인이 소멸된다. 경쟁을 강화하기 위해선 승자와 약자의 차이가 극명히 갈려야 한다. 즉 경쟁을 강화시키겠다는 것은 양극화를 심화시키겠다는 소리가 된다.

그나마도 사라져가는 안전한 일자리를 더욱 강력하게 소멸시키겠다고 작은 정부와 대대적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영어신분제를 통해 신분세습과 기회박탈의 저신뢰 사회를 구조화하려 한다.

하다못해 사생활이라도 지켜야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인 대증요법은 보호장치라도 강구하는 것이다. 숭례문은 지키는 사람이 없어 당했다. 보호장치가 없었던 것이다. 위험사회로 진입하는 지금 안전불감증은 치명적이다. 목가적인 안전사회는 소멸중이다.

대중의 시선에 노출된 연예인은 공적으로 노출되는 것 이외의 정보가 보호돼야 한다. 노홍철을 공격한 사람은 인터넷을 통해 주소를 알았다고 한다. 이렇게 사적 정보가 흘러다니면 점점 더 위험해진다.

연예인이 대중 앞에서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건방지다고 인터넷에서 소문이 난다. 그것이 두려워 연예인은 사생활에서도 언제든 소탈한 모습을 가장해야 한다. 대중이 그들을 벼랑 끝에 몰아세우는 것이다. 사생활에서의 ‘까칠함‘도 이젠 보호돼야 한다.

얼마 전에 한 케이블TV에서 미수다 자밀라의 사생활이 본인도 모르게 찍혀 여과 없이 방송됐다. 노홍철 피습 사건 관련해서도 노홍철의 병원 차트나 병실 호수까지 보도 됐다. 심지어 가해자의 모습까지 방송됐다. 대중 앞에서 이렇게 개인 정보를 우습게 공개하는 것이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 보호의식에 대한 각별한 환기가 요구된다.

양극화가 극심한 러시아, 미국, 남미 등엔 경호산업이 발달했다. 우리도 미국, 혹은 남미식 양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그들처럼 우리도 일류 사립학교에 경호원들이 상주하는 때가 올 지도 모른다. 일단 지금은 일류 사립학교부터 만들고 보자는 추세다.

불만과 불안이 만연한 사회에서 강자들이 성채를 쌓아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면 사람들은 만만한 대상을 향해 화풀이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만만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들, 즉 약자, 문화재, 타자, 연예인 등에 대한 사회적 보호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모두가 모두를 보호해주고, 남이 자기보호 행동을 할 때 그것을 건방지다고 탓하지 않는 문화, 문화재 보호를 불편하다고 탓하지 않는 문화가 이 척박한 양극화 세상을 그나마도 따뜻하게 할 것이다. 약자나 타자를 의식적으로 지켜줘야 하는 이유다.
* 필자는 문화평론가이며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는 http://ooljiana.tistory.com, 저서에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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