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시장이 개방되자 쌀값이 폭락하는가 싶더니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됐다. 쇠고기도 그 꼴 날 판이다. 개방농정에 항의한다고 곤봉세례가 날아오더니 호남지역에는 연이은 폭설로 겨울농사를 망쳤다. 그래도 날씨가 풀리면 땅을 갈아야 할텐데 무엇을 심어야 할지 모르겠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심정인데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린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세계최대의 농축산물 수출국가다. 미국산 농축산물 거래 가격은 한국산에 비해 절반에도 못 미친다. 관세가 없어지면 시장을 싹쓸이할 게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 정부는 농민의 소리도 듣지 않고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밀어붙일 모양이다. 농업-농촌의 기반을 송두리째 들어 엎을 사태가 일어날 판인데도 말이다. 2월 16일에는 협상개시를 선언한다고 한다.
미국은 쌍둥이 적자를 해소하는 방책으로 '국경 없는 경제'를 구축한다는 전략 아래 세계화와 지역화를 동시에 추진해 왔다. 그것이 다자간 협정인 세계무역기구(WTO)이고 쌍무간 협정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미국은 1993년 12월 다자간 협상인 우루과이 라운드를 타결했다.
이어 1994년 1월 미국, 캐나다, 멕시코를 묶는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를 출범시켰다. 다음해에는 쿠바를 제외한 북미와 남미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만드는 범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마이애미에서 34개국 정상회담을 갖고 목표시한을 2005년으로 잡았다.
바로 그 해인 작년 11월 4∼5일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미주정상회담에서 미국의 그 계획은 좌절되고 말았다.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 5개국이 완강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급하는 1백91억 달러에 달하는 농업보조금의 삭감-철폐가 중요한 현안이었다. 회담장 밖에서는 2만5천명의 시위자들이 반미·반부시를 외치며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했다.
미국은 올해 다시 FTAA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나 그 전망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 사이 볼리비아와 칠레에도 좌파정권이 들어서 8개로 늘어났다. 여기에 올해 선거를 치르는 페루와 멕시코에서도 좌파정권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뒷마당에서 일어나는 정치변혁은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가 빈곤층을 양산하여 빈부격차를 더욱 벌린다는 불만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도하개발아젠다(DDA)가 뜻대로 진척되지 않자 FTA에 주력해 왔다. 현재 16개국과 FTA를 맺었다. 그런데 FTAA가 무산되자 먼저 한국을 채근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미국이 무슨 선심이나 쓰는 줄 알고 비교우위론자들이 살판났다는 듯이 갖은 궤변을 늘어놓는다. 농업-농민이 다 죽은 다음에도 미국이 농축산물을 헐값에 팔지 생각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정부는 입으로만 양극화 해소를 부르짖지 말고 남미국가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음미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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