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보조를 먹고 거대한 공룡으로 자란 미국의 기업농이 전세계 가족농을 뿌리채 뽑아내고 있다. 그 뒤에는 식량메이저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것이 미국의 국익을 극대화하려는 세계화 전략이다. 미국의 강압적인 통상정책은 이 나라의 농업-농촌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설자리를 잃은 농민들이 WTO(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가 열리는 홍콩에까지 가서 반세계화를 절규했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한 눈총뿐이다. 일그러진 농민상을 연출하는 주범은 언론이다. 농민시위의 과격성만 부풀리고 진압경찰의 폭력성은 외면하더니 홍콩시위도 예외가 아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마지막 날 과격한 모습은 부분적이었다고 한다. 빅토리아 공원에서 오후 4시부터 1500여명이 집회를 가졌고 그 뒤 가두행진에 나섰다. 그런데 그 행렬이 오후 7시 이후 집회가 허용되지 않는 구역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자 경찰이 과잉진압에 나서 최루탄, 고무총, 물대포를 쏘고 전기곤봉을 휘둘러 순간적으로 마찰이 생겼다는 것이다. 뒷줄에서도 몰랐을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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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성 중인 한국민중투쟁단들을 격려하는 홍콩시민들. © 전국농민회총연맹 제공 | 1000여명의 한국인 연행되었지만 곧 석방되었다. 단순히 경찰저지선을 넘고 집회금지구역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연행과정에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정부도 언론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영사관이 구속자 11명에 대한 신원보증을 거부했다. 제 나라 국민의 권익을 외면했지만 언론은 문제삼지 않았다. 그런데 홍콩 카톨릭 주교와 한 교포가 신원을 보증해 줘 그들이 보석으로 풀려났다. 담당판사도 불법행위가 경미하다고 밝혔다. 한국언론은 나라를 망신시켰다느니 하며 농민들을 마치 폭도처럼 힐난했다. 어떤 파괴행위도 없었는데 말이다. 막상 홍콩시민의 반응은 달랐다. 명보(明報)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민의 60%가 한국 농민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은 1999년 시애틀 각료회의에 비해 분노가 훨씬 덜했다고 전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홍콩경찰의 과잉대응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콩에는 한국농민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언론은 한국농민만이 과격해서 그곳에 몰려 간 것처럼 보도했다. 심지어 자금출처가 수상쩍다는 투로 나왔다. 한국인이 월등히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멀리 스페인, 브라질에서부터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대만 등지의 농민들도 많았다. 많은 한국농민들이 그곳에 간 것은 그만큼 사정이 절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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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보 1배가 진행되자 홍콩시민들이 깊은 관심을 보였다. © 전국농민회총연맹 제공 | 해상시위, 삼보일배, 촛불시위로 세계화의 모순을 알리는데는 홍콩시민들의 따뜻한 호의도 큰 몫을 했다. 도로변에서 호응을 보내고 시위에 동참하여 연대의 뜻을 보이기도 했다. 밤에는 춥다고 옷가지를 들고 나오고 생수도 무더기로 사왔다. 시장을 덜라고 많은 이들이 먹거리를 들고 왔다. 창피해서 못 살겠다는 교포의 말을 전한 언론이 있었다.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 몰라도 식당 문을 활짝 열고 그냥 밥을 준 교포도 있었다. 그들은 원정시위가 말하는 의미를 안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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