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김진명 씨의 장편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베스트셀러 1, 2위를 기록하는 상종가를 친 적이 있었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대광중학교에서, 교사 20여명으로 구성된 독서회 멤버들은 그 책을 '이달의 추천도서'로 선정해 함께 읽고 토론했었다.
|
▲김진명 씨의 장편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표지. 책의 내용이 남북한이 공조하여 핵개발을 하는 등 일부 극우민족주의적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본뜻은 여러가지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 해냄, 2003년 개정판 |
책의 주인공 권순범 기자는 어떤 부장검사로부터 10여년 전에 일어났던 이상한 사건을 캐보라는 부탁을 받는다. 사건을 캐 들어가던 권 기자는 이 사건이 고 박정희 대통령과 손잡고 핵 폭탄을 만들고자 했던 재미 핵 물리학자 이용후 박사에 대한 살해 사건이었음을 알게 된다.
권 기자는 사건의 내용에 깊이 접근해 들어갈수록 노벨 물리학상까지 마다하고 조국의 장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 박사를 깊이 흠모하게 되고, 이 박사의 장렬한 죽음과 이 박사의 죽음에 얽힌 국제적인 음모를 국민들에게 밝혀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된다.
결국 권 기자는 핵개발 문제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되었음을 확신하고, 유신 독재에는 철저하게 반대했으면서도 오로지 조국의 자주국방을 위해 박정희 대통령과 손을 잡았던 이용후 박사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한다.
인도와 프랑스에 가서 이용후 박사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 과학자를 만난 권순범 기자는 우리나라에 핵폭탄의 원료인 플루토늄 80kg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대통령에게 핵폭탄의 개발을 건의한다. (그 때 이미 일본은 톤 단위의 엄청난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었고, 막대한 경비를 투입하여 자위대의 군사력을 강화하며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집요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권 기자의 제안을 받아들인 대통령은 당시 안기부장을 북한 특사로 파견해서 김일성 주석과 핵의 공동 개발에 합의한다. 얼마 후, 드디어 핵개발에 성공한 남북한은 남북이 함께 참여하지 않으면 열 수 없도록 레이져 잠금 장치를 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핵폭탄은 남북이 합의하지 않으면 고철덩어리에 불과한 반쪽 폭탄이 되면서, 남북한에는 신뢰를, 외세의 침입에는 강력하고도 무서운 방어 무기가 되었다.
한편, 시베리아 개발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에 선제권을 빼앗긴 일본은 경제적으로 강력한 경쟁 상대로 떠오른 우리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독도를 무력으로 점령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한국의 반격이 시작되면 첨단 무기를 앞세워 한국의 산업 시설을 마비시키고 경제적인 속국으로 만들 시나리오를 짜놓고 기회를 엿보게 된다.
드디어 일본 해상 자위대가 독도를 침공하고 우리 공군의 비행 편대는 자위대 함정에 대한 공습에 나서지만 배에 접근도 하기 전에 궤멸당하고 만다. 일본의 슈퍼 컴퓨터 화면에 떠오른 컴퓨터 그래픽으로 우리 공군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자위대 비행기는 단말기에 설치된 컴퓨터를 통해서 마치 게임을 즐기듯이 키보드를 누르는 것으로 간단하게 우리 비행기를 격추시켰고, 우리 공군은 적의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디로부터인가 날아온 미사일에 맥없이 추락한다.
해군도 비슷하게 패퇴하고, 마비 상태에 놓인 우리나라의 방어망을 비웃으며 일본은 대규모 공습을 감행한다. 그런데, 군사 시설에 대한 공습이 아니라 포항제철과 울산 공업단지로 날아온 비행단은 무차별 폭격으로 수십년 동안 쌓아온 우리 경제를 한 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다.
잠시 후, 청와대에 북한군 장성들이 찾아와서 우리 대통령에게 경례를 하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대통령은 이미 청와대에 와서 거드름을 피고 있던 일본 대사에게 동경과 오사카, 나고야, 고오베, 교토의 다섯 도시에 히로시마급 원자탄의 다섯 배 위력을 가진 핵폭탄이 투하될 것을 본국 정부에 전하라고 말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일본 대사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본국 정부에 이 사실을 알리지만 한국에 핵폭탄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본 각료들은 만에 하나 한국이 핵미사일이나 핵을 실은 전폭기를 띄운다 해도 수퍼 컴퓨터로 무장한 일본의 전자 방어망을 결코 뚫을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태백산 중턱, 거대한 불기둥을 뿜으면서 하늘 높이 솟아 오른 핵미사일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다. 잠시 후 일본이 자랑하는 슈퍼 컴퓨터의 대공 요격 시스템 모니터에 점 하나가 파장을 일으키며 나타난다.
상황은 즉각 일본 각료회의에 보고되고, 첨단 전자 교란 장치를 가동시키며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이 비행체를 일본의 자랑스런 슈퍼컴퓨터는 계속 '처리중'이라는 자막만을 내보낼 뿐 요격 미사일을 쏘아 올릴 목표점을 찾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한다.
동경에 공습 경보가 울린다. 동경을 향해 날아오는 비행체가 핵을 탑재한 미사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일본 국민들은 경악과 공포에 휩싸여 무모한 전쟁을 벌인 정부를 원망하고, 일본 수상은 한국 정부에 전화를 걸어 완전한 피해 보상을 약속하며 미사일의 진로를 바꾸어달라고 호소한다.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인 한국 정부는 핵미사일의 진로를 살짝 바꿔 무인도에 투하시킨다. 이렇게해서 남북 정부는 침략자를 격퇴하지만 인명 피해를 없애고 거룩하게 용서하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흥미와 충격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소설로 재구성하면서 충분히 있을법한 미래 상황을 가상해서 그리고 있다는 점에 있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몇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 하는 점과 더불어 남과 북이 힘을 합치면 무엇이든 해 낼 수 있다는 민족 자긍심을 불어 넣어주었다는 점에서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은 것 같다. 저자의 생각대로 우리가 핵폭탄을 갖게 된다면 어떤 나라도 함부로 우리를 넘보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깊이 숙고해 보아야할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그 중 하나는 강대국들의 국가이기주의이다. 자기네들은 지구를 수십번 씩이나 파괴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의 핵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약소국들은 핵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논리를 펴고 있다.
반면에 약소국들은 어떻게든 핵을 가지려는 유혹을 받는다. 어차피 재래식 무기를 증강하는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핵을 가져야 주위의 강대국들이 함부로 집적거리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모든 나라가 자기 나라의 안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핵개발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강대국들 뿐 아니라 모든 약소국가들이 결국 핵폭탄을 갖게 되면 그 핵이 전쟁을 억제할 수 있을까? 아니면 언젠가 어디에선가 핵을 사용하게 되고 결국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지구의 종말로 이어지게 될까?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핵을 개발하려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초기 단계에서는 모두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도 없고, 개발할 의사도 없다고 말하는 점이다. 그리고, 더 이상 핵은 확산되어서는 안된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그리고는 자기네 나라만 몰래 핵을 개발하려고 한다. 국제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네 나라는 사정이 있어서 몰래 핵개발을 할 수 밖에 없고 다른 나라는 절대로 핵을 개발해서는 안된다는 이기적이고 모순에 찬 생각들을 많은 나라들이 하고 있다. 우리 나라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지구 마을에 더 이상 핵이 확산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통일이 되면 북한 핵이 우리 것이 되는데, 그걸 우리 손으로 없앨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은 과학을 만들었다. 과학을 통해서 무언가 유익을 얻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과학이 인간에게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과학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부분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핵이 그렇고, 환경 문제가 그렇다. 언젠가는 인류의 행복을 위해 만든 과학이 인류를 멸망시킬 지도 모른다.
인류가 만일 핵이나 환경 문제로 멸망하게 된다면 그것은 과학을 다스릴 양심과 정신을 바로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 혹은 자기 나라만을 생각하는 개인 이기주의와 국가이기주의는 요즘 우리 사회와 세계가 안고 있는 커다란 문제다.
이런 이기주의를 과학 자체가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그리고 개인 이기주의나 사회 이기주의, 국가 이기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과학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인류는 더욱 위기에 몰릴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21세기에 종교인들이 해야 할 대사회적 역할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위기상황 극복에 앞장서는데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대 종교는 과학이나 정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등과 대화하며, 때로는 동행하고 때로는 견제하면서, 인류 사회가 행복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세계 종교의 위대한 창시자들이 한결같이 가르쳐주신 큰 가르침이 무엇인가. 바로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와 그로 인한 ‘사람의 행복’에 있는 것이 아닌가. 예수의 가르침도 바로 그것이었다.
|
▲한국의 기독교는 어디로 가야하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은 류상태씨의 저서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삼인출판사,2005 |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여, 예수의 가르침의 중심이 무엇인가. 바로 '경천애인'이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이 살고, 인류를 한 가족처럼 사랑하며 사는 삶,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만 구원이 있다"는 식의 독선과 편가르기는 예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비록 그것이 성서에 기록되었다 하더라도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을 곡해하거나 배반한 교권주의자들의 가르침이다.
예수는 성서의 한 글자도 직접 쓰지 않았다. 또한 성서는 예수 사후 적어도 20년이 지난 다음부터 쓰여지기 시작했으며, 그나마 원본이 남아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사본을 베껴쓰면서 수많은 오류가 발생하였고 (인쇄술이 나오기 훨씬 전이었다) 의도적으로 본문을 수정하거나 덧붙인 수많은 흔적들이 남아있다.
기독교인들이여, 예수를 진정으로 알고 싶으면 성서 문구에 매이지 말라. 그 뜻을 찾아라. 그 분의 가르침의 중심에는 화해와 평화가 있다.
6자 회담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어 우선 한반도에, 장차 지구마을에 핵이 사라지고, 우리 민족이 공존공영의 길로 들어서기를 간절히 바라며... 또한 한국 교회가 교리적 독선과 배타성에서 벗어나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데 앞장서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