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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는 '매국노, 민족반역자' 그 이상이다
일제부역자, 천황제 파시스트, 동아패권주의자, 전범 등 친일파의 유형들
 
숨인씨   기사입력  2005/08/30 [14:49]
반민특위가 꺾이고 실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이 좌절시킨 것은 정상적 국민국가의 출범 뿐만이 아니다. 일제에 굴종한 자들은 이승만 정권과 미국의 비호 아래 특권층으로 남았다. 그중 젊은 군인들은 쿠데타의 주역으로서 개발독재국가를 지배했고, 또 일부는 야당의 핵심으로 '반독재'의 가면을 썼다. 온 국민이 반일파가 되고, 한일굴욕외교를 반대하는 민족주의적 기운이 군부독재에 맞서 첫 봉화를 지폈음에도, '친일 청산'은 총화단결과 반공반북, 산업화를 어지럽히는 일종의 내란음모로 치부되었다. 광복군 장교였던 장준하가 재야에서 투쟁하다 숨졌고, 김일성의 항일투쟁 경력은 사실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해, '친일파인명사전'을 살해하려는 음모가 펼쳐지는 동안, 독립군의 후손들이 한 국회의원에게 '괴한'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어제 라디오에서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3690명의 친일파 명단을 발표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온갖 자료와 증거를 뒤지고 쫓았을 운동가와 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인내에 고개를 숙인다. 문제는 명단을 작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아니라 그것을 발표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 지성인들은 잠깐 친일을 했다가 적잖은 기간동안 침묵으로 일관한 이들은 소극적 저항을 한 것으로 간주하여 빼는 등 여러 고뇌를 거쳤다고 한다. 그러나 박정희, 정일권, 방응모, 김성수, 김활란, 백낙준, 민복기, 홍진기에게 이런저런 세심한 배려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유력한 장애물은 한나라당, 조선일보, 동아일보, 이화여대, 중앙일보, 연세대가 아직도 누리는 생생한 기득권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뒤늦었음을 자책하는 이상으로 스스로의 대담함을 점검하고 앞장 서 노력한 분들의 용기를 기려야 마땅하다.
 
박정희, 정일권, 방응모, 김성수, 김활란, 백낙준, 민복기, 홍진기를 빼면 누가 과연 친일파인가. 반면, 단지 그들의 이름 때문에 흥분하는 치들은 저잣거리와 인터넷에 널리고 널렸다. 냄새를 맡고 달려든 '유인원의 가죽'을 쓰고 '가금류의 정치적 두뇌'를 가진 패거리들은 월북배우까지 명단에 포함되었음은 모른체하고, 이번 쾌거를 좌익모리배들의 책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아마 일본의 독도망언에 분통을 터트리고, 월드컵축구 때 붉은 곳을 입고 태극기를 흔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나로 하여금 '매국'과 '민족반역'이라는 틀에서 친일을 설명해왔던 역사를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민족주의를 정의로운 일에 동원기제로 쓰기는 쉽다. 하지만 민족주의가 역사의 주요한 진실을 생략하고 불의 앞에 구멍을 뚫어주는 것이야말로 더더욱 쉽다. 그리하여 우리는 네가지 진실을 더 알려야 한다.
 
친일은 첫째, 일제부역이다. 만일 일본 우익이 당대 조선독립을 도왔던 인사들을 추려내며 '친한 청산'을 떠든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지하에서 반나찌운동을 전개한 독일인들은 민족을 위해 참다운 봉사를 한 것인가, 어찌 됐든 민족반역을 꾀한 것인가, 가리기가 힘겹다. 한국인이 일제에 분노한 것은 일본인이 대통령 따위에라도 앉아서가 아니다. 각종 패륜과 수탈에 치를 떤 것이다. 이른바 친일파는 일본의 친구가 아니라 패륜과 수탈의, 제국주의의 부역자다. 일본인과 친해 웃고 다니고 그들에게 공부를 배웠다고 해서 친일파로 선정된 이는 아무도 없다. 
 
둘째, 친일파는 천황제 파시스트다. 박정희는 친구 황용주에게 2.26 쿠데타의 장교들을 찬양하며 '일본 국수주의자의 기백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가 18년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그의 후예들이 종으로 횡으로 온갖 인맥을 형성했다는 것은 친일이 그저 이민족의 침략에 동조한 이상의 죄를 저질렀음을 증명한다. 천황제 파시즘의 세례자들은 '자유민주주의'의 포장지 속에 본래 상했을 뿐더러 기한도 한참 지나버린 메이지 유신과 만주국의 속살을 채워 넣었다. 그 후유증으로 한국은 복지국가는커녕 시장경제의 성숙도 이루지 못했다.
 
셋째, 당대와 현대를 가리지 않고 친일 옹호의 고갱이로 '민족주의'가 역이용되고 있다. 가령 최남선과 이광수가 변절은 후진 민족의 살길을 트려 강한 민족과 일체가 될 것을 도모한 것이라는 변명이 널리 쓰인다. 아무리 그렇게 한들 민족의 번영을 이룰 수 없었겠지만, 그 이전에 그들의 '내선일체 민족주의'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원리였고, 보편적 시각에서 완전히 그른 패권주의에 불과하다. 그들이 소리높인 '귀축영미'가 영미 제국주의를 타도하여 아시아 민중의 생존권을 수호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귀축영미파는 한미혈맹파로 돌변하였고, 오늘날 냉전의 마지막, 혹은 새로운 각축장에 기름을 들이붓고 있다.
 
넷째, 현대 수구진영에서 특별한 숭배를 받는 '후기 친일파'들은 '전쟁범죄자'들이다. 흔히 후기 친일파는 작심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역모자가 아닌 극단적 억압과 민족의 미래 사이에서 갈등한 지식인들로 묘사된다. 그렇지만 그들의 친일행위가 가진 자발성은 예상보다 훨씬 크다. 상상해보라. 일제의 막바지야말로 방응모, 김성수에게는 살맛나는 시대가 아니었을까.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실린 전쟁가담의 선동에는 신바람이 담겨져 있는 듯하다. 박정희는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고 '큰 칼 차고 싶어서' 항일전투가 벌어지는 만주의 군관학교로 갔다. 백보 양보해 위협과 강압에 의해 저지른 행위일지라도, 후기 친일파는 복종과 적응을 넘어서 희생과 살육을 강요한 국제범죄자들이다.
 
연세대학교에서 열렸던 '백낙준 친일 심포지엄'에 출연한 교수들은 백낙준 선생이 비록 유감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었을지라도 그가 민족교육에 이바지한 것을 참작하자고 말했다. 국경밖으로 나가는 그 순간부터 허접쓰레기로 전락할 변명이다. 태평양전쟁에서 피해입은 동남아 민중들에게 그런 언동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닐지 생각해봐야 한다.
 
독립군 후손을 괴한으로 몰아붙이는 목소리와 친일을 청산하는 것은 어리석고 불온하다는 목소리는 사실상 한 입에서 나온다. 친일을 감싸야 한다면 우리가 굳이 독립운동가를 기릴 책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최하층의 생활을 해왔다. 일제부역, 천황제 파시즘, 동아패권주의, 전쟁범죄를 은폐하며 이념보다 국가가 우선이라던 자들은 이제 친일청산이 빨갱이공세라며 낡은 이념을 휘두르며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
 
최후의 통첩삼아 묻는다. 남한의 독재가 북한의 독재를 정당화할 수 없음은 다들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난데없이 한조전쟁과 북한의 인권상황을 근거로 친일을 미화하는 것이 옳은지 답해야 한다. 또한 친일이 불가피했다면 항일운동은 도대체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도 밝혀야 한다. 제 귀속집단 뿐이 아니라  개인의 양심과 세계의 평화까지 무너뜨린 친일파들을 감싸는 패륜아들은 꼭 "아가리를 열어"라.  
* 글쓴이는 경북 구미시 시의회 의원(무소속)입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 최연소(27세) 기초의원에 당선돼 현재 시의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2002년 <대자보> 필진으로 참여한 이래 다년간 정치칼럼 등을 연재해 왔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대자보> 독자들과 만납니다.
기초의원으로서 풀뿌리 정치 현장에서의 경험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블로그 : http://kimsoomi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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