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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행적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컬처뉴스의 눈] 올바른 역사를 세우는 것이 후손들의 일을 덜어주는 것
 
강성률   기사입력  2005/08/29 [19:55]
8월 29일 오전 10시 반,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에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예정 인사 3090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방응모, 김성수, 김활란 등 익히 알고 있는 '민족적' 인사들도 대거 포함되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선정 기준의 문제, 절차상의 문제 등을 거론하며 비판하고 있다. 심지어 '박정희 바로 알리기 자발적 국민모임'이라는, 이름도 무척이나 긴 단체의 한 회원은 친일명단 발표장에 "박정희 매도하는 주구들은 자결하라"는 무시무시한 내용의 피켓을 들고 항의까지 했다. 
 
▲명단을 발표하는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 민예총 제공
어떻게 생각하면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일제 말기, 많은 사람들이 친일의 길을 걸었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증거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들은 그렇게 협력함으로써 자신들의 안위를 보존하고 부를 축적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의 협력이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라는 데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지식인들의 친일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1937년의 중일전쟁을 계기로 이루어졌다. 적어도 1937년 중일전쟁 이전까지는 조선의 지식인이나 유력자 '일반'이 일제 당국에 적극 협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1937년 이후, 일제의 이데올로기적 선전에 넘어갔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지식인들에게는 독립의 희망이 있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났을 때, 중국이 이겨서 조선이 독립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우파 정부와 좌파 정부가 연이어 일본에 패하면서 그들의 요지였던 무한, 삼진마저 내주게 된다. 많은 이들은 이제 중국은 일본을 이길 수 없다고 받아들이면서 일본의 '동양주인'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이때 그들이 내세운 논리는 중국의 봉건 대 일본의 근대화론이었다. 즉 동양이 일본의 지배에 의해 근대화된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손문의 핵심 참모였던 왕정위가 조직에서 이탈해 남경에서 친일정부를 세우자 일본의 대동아공영론은 힘을 얻게 되었다. 만주와 대만은 이미 친일 정권이 들어서 있는 가운데, 중국에서도 친일 정권이 들어서자,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조국이 독립할 희망은 거의 없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지식인들을 유혹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일본의 동맹군인 독일에 의해 프랑스가 함락된 것이다. 문명의 원조였던 프랑스가 '일본의 우방', 독일에 의해 함락됨으로써 더 이상 서구에 기댈 것이 없다는 것을 당시 지식인들은 빠르게 깨달았다.
 
일본은 서양 중심의 구체제론에 맞서는 신체제를 주창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하와이 공습을 단행하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그야말로 동양 대 서양의 대결 구도가 된 것이다. 같은 동양인이면서 천황의 적자가 된 조선인은 일제의 편에 설 수 있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들은 내선융화에서 내선일체로 변화된 일제의 정책을 정직하게 받아들였다. 당시 신문에 실린 숱한 논설은 강압에 의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자발적 논리'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사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서구 대 동양의 구도 속에서 조선이 살 길은 내선일체를 통해 완전한 일본인이 되는 것이 그들이 바라본 정세였다.
 
이런 흐름 속에서 문화예술의 각 장르는 전쟁 동원과 천황의 무궁을 기원하는 친일단체가 득세하게 된다. 황도학회, 조선임전보국단, 국민정신총동원연맹 같은 문화예술을 포함하는 단체가 생기는가 하면, 각 장르별로 친일 단체가 생기기도 한다. 이들 단체는 근로문화인부대라는 조직을 통해 전국을 떠돌면서 전쟁동원을 위한 일을 하게 된다. 
 
이번에 발표된 명단 가운데 문화예술인들은 총 144명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이 더욱 위험한 것은 파장이 큰 문화예술을 통해 민족 말살의 정책을 지지했다는 데 있다. 해방 이후 그들이 무엇을 했던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그들은 일제의 침략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작품을 생산했다. 이것만으로도 그들은 평생을 사죄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어떠했던가.
 
우리의 역사는 제대로 서지 못했다. 만약 친일인명사전 수록의 기준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그것을 완전하게 보완하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괜히 트집잡아 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반역사적이고 반민족적인 행위이다. 이제라도 올바른 역사를 세우는 것이 후손들의 일을 덜어주는 것이다.
 
* 필자는 <컬처뉴스> 편집장입니다.
* 본 기사는 민예총 <컬처뉴스>(www.culturenews.net/)에서 제공했으며, 본문의 제목은 원제와 조금 다르게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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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8/29 [19:5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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